[시온의 소리] 어메이징 그레이스: 한 위대한 노래 이야기

국민일보

[시온의 소리] 어메이징 그레이스: 한 위대한 노래 이야기

입력 2019-11-07 00:01 수정 2019-11-0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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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말 시드니 폴락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국의 전설적 소울(soul) 보컬 명인 어리사 프랭클린이 부른 한 노래의 제작 과정을 담아냈다고 한다. 이 노래가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다. 영화를 아직 보진 못했지만, 음반에 실린 소리만으로도 그 현장을 느낄 수 있다. 간절한 허밍으로 시작해 10분간 지속하는 그녀의 음성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를 영적 신비에 빠져들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캬! 이게 바로 ‘소울’이지.”

현대 음악사에서 이 노래는 종교성을 넘어 매우 중요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포크 싱어 주디 콜린스의 영롱한 아카펠라 버전도 유명한데, 어리사의 노래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감동을 전한다. 이 버전은 놀랍게도 1970년 빌보드 차트 톱 10에 올랐다. 2011년 U2의 ‘360도 투어’ 콘서트에서 불린 로큰롤 버전도 멋지고, 흑인 여성 성악가 캐서린 배틀이 부른 클래식 버전도 참 좋다. 지금까지 발표된 수많은 어메이징 그레이스 가운데 대중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마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낮은 목소리로 어설프게 불렀던 버전일 것이다.

2015년 6월 17일 백인 청년 딜런 루프는 미국 찰스턴의 흑인교회에 난입해 총기를 난사했다. 클레멘타 핑크니 목사를 비롯해 9명의 성도가 끔찍하게 희생됐다. 찰스턴에서 열린 추도식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 도중 한동안 침묵에 빠졌다 갑자기 이 노래를 불렀다. 청중은 뜻밖의 노래에 당황하면서도 이내 다 함께 노래하며 눈물을 흘렸다. 오바마는 희생자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하나님께서 미국에도 은혜를 내려주시길”이라고 기원하고는 추도사를 마쳤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장면을 “역대 최고의 사회 통합 메시지”라고 평가했다. 세계적 화제가 됐다.

이 노래는 잘 알려진 대로 전직 노예상이었지만 하나님 은총을 체험하고 회심해 목사가 된 존 뉴턴이 1747년 작사했다. 존 뉴턴은 처음 믿기 시작한 그 시간엔 신앙과 노예를 팔아넘기는 행위 사이의 모순을 인식하진 못했다. 회심 이후 30여년의 시간이 지나서야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나는 선한 양심에 사로잡혔다. 이렇게 내 부끄러움을 고백한다. 이제라도 내가 범한 잘못과 관습을 바로잡고자 한다.” 그의 고백과 노래는 영국 내에서 노예제 폐지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 노래는 곧 미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멜로디를 입고 영국보다 훨씬 더 큰 호응을 얻으면서 미국의 ‘영적 국가’로 불리게 된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이 노래의 곡조는 그 기원이 정확하지 않다. 유력한 학설은 미국에 건너간 후 ‘흑인영가’(Negro Spiritual)의 곡조에서 유래됐다는 것이다.

이 학설이 맞는다면 비록 노예상이었지만 회심 후 노예 해방에 앞장선 백인 목사가 작사하고, 억울하게 노예로 끌려온 흑인 음악인이 작곡한 곡이 된다. 완벽한 은총의 콜라보인 셈이다. 이 노래는 흑인과 백인뿐 아니라 체로키 인디언 회중에도 사랑받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찬송이 됐다. 이 노래를 사랑한 사람은 결코 동질적인 그룹이 아니다. 이 노래는 민권 운동 현장과 해방신학자의 투쟁 장소나 보수적인 복음주의 부흥회에서도 회중을 사로잡으며 이들을 하나님 은혜의 자리로 초청한다.

올해 한국 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화두는 ‘갈등’과 ‘분열’이다. 수많은 논쟁거리로 서로 나눠 상대를 비방하고 저주하고 조롱한다. 이 가운데 우리 영혼이 파괴되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 모두가 이 갈등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현실 속에 옳고 그름을 넘어 지금 가장 필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오늘 이 땅의 교회가 잃어버린 가장 소중한 복음은 무엇인가. ‘값싼 은혜’가 자칫 교회와 사회의 부조리를 용인하는 수단이 될까 경계하는 시선이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손가락질하는 모든 사람에게 향한 하나님 마음을 기억하면 좋겠다. 기독교의 본질은 ‘응보’(Karma)가 아니라 ‘놀라운 은혜’다. “놀라운 은혜, 얼마나 달콤한 말인가! 그 은혜, 나 같은 죄인을 구했네. 잃었던 생명을 찾았고, 눈멀었던 나 이제 눈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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