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마라톤 굴기’… 스포츠 정신·운영 수준은 엉망

국민일보

중국의 ‘마라톤 굴기’… 스포츠 정신·운영 수준은 엉망

관광 파급 효과 커 지방서 적극 유치… 지난해 하루 평균 4개꼴 대회 열려

입력 2019-11-09 04:05 수정 2019-11-10 15:01
지난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베이징 마라톤대회 참가자들이 천안문 광장을 달리고 있다. 이 대회 등록자 수는 16만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는데 실제 참가 가능 인원은 3만명 정도여서 참가 경쟁률만 5대 1을 넘었다. 최근 중국에서는 마라톤 열풍이 불면서 대회 숫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관련 산업 역시 고속 성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보스턴마라톤은 세계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마라톤대회다. 보스턴마라톤에 참가하는 것은 세계 모든 마라토너의 로망이다. 그런 명성의 보스턴마라톤에 지난 4월 오점이 찍혔다. 중국인 참가자 중 10분의 1이 공인 완주기록을 조작해 출전권을 얻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보스턴 마라톤대회에 참가한 중국인은 951명이었다. 실제 한 중국인 여성은 3시간35분 기록을 제시했지만 올해 대회에서는 6시간11분에 결승선을 통과했다. 중국의 한 여행사가 참가자들의 기록을 조작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최근 중국의 마라톤 인구가 급증하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최근 중국은 마라톤 열기에 휩싸여 있다. 대회 수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중국 육상협회 등에 따르면 2018년 전국에서 800명 이상 참가한 마라톤대회는 모두 1581개였다. 2017년(1102개)에 비해 43.46%(479개) 증가했다. 여기에는 하프마라톤, 크로스컨트리, 수직마라톤 등 다양한 마라톤 유형이 포함된다.


마라톤대회 수는 2011년 22개에 불과했으나 2013년 39개, 2014년 51개로 비교적 완만한 증가세를 보였다. 그러다 2015년 134개로 늘어나더니 2016년 993개로 폭증했다. 2015~2016년 중국의 마라톤 ‘굴기’가 시작된 셈이다.

중국 매체 신경보는 2018년 중국에서 하루 평균 4개의 마라톤대회가 열려 매일 5만6000명가량이 코스에서 뛰었다고 전했다. 날씨가 화창한 10월에는 특히 대회 수가 많아 지난달 27일 하루에만 육상협회에 등록된 마라톤대회가 24개나 열렸다. 그 주말에만 최소 30만명이 길 위에서 뛰었다.

마라톤 열풍은 지역을 홍보해 관광산업을 발전시키려는 중국 지방정부들이 주도하고 있다. 마라톤 코스를 통해 도시의 관광자원이나 자연경관을 자연스럽게 소개해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정부 사이에서 마라톤을 ‘황금알 낳는 거위’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올해 마라톤대회를 개최한 성·시는 285곳에 달했다.

마라톤 열풍은 여행스포츠 용품뿐 아니라 항공, 숙박, 보험, 스마트 웨어러블기기, 드론 등 다양한 산업에 대한 파급효과도 있다. 특히 관광·여행업에 대한 파급효과는 지방정부들이 가장 주목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지역마다 풀코스보다는 하프마라톤이나 크로스컨트리, 단축마라톤 등 아마추어들도 취미로 참여할 수 있는 대회가 급증하고 있다. 하프마라톤은 2017년 243개에서 2018년 394개로 증가했고, 단축마라톤은 같은 기간 123개에서 371개로 늘어 200% 이상 증가세를 보였다.

중국에서 마라톤대회 하나가 유발하는 경제효과는 2억9100만 위안(480억원)으로 추산된다. 2018년 중국의 연간 마라톤 총소비액은 178억 위안(약 2조9300억원)에 이르고, 마라톤 관련 연간 산업총생산은 746억 위안(12조3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7% 증가했다.

마라톤이 돈 되는 산업으로 인식되면서 기업들도 대회 후원에 적극적이다. 마라톤 동호인들의 구매력이 높기 때문이다. 2015년 ‘중국의 마라톤 조사보고’에 따르면 중국 마라톤 참가자의 70% 이상이 대학교 이상 학력 보유자였고, 중국인 평균 연봉을 넘는 수입을 얻고 있었다. 주요 직종은 정보기술(IT), 인터넷, 금융 등이었다.

2018년 A급 대회의 평균 스폰서 수입은 432만 위안(7억1000만원)에 달했다. 현대자동차도 2011년부터 6년간 베이징마라톤 타이틀 스폰서를 하다 지난해부터 일반 후원자 자격으로 행사를 지원하고 있다. 1981년 시작된 베이징마라톤은 현재 중국 신도시 개발업체 화샤싱푸가 현대차의 바통을 이어 타이틀 스폰서를 하고 있다. 하지만 마라톤대회는 의료, 교통, 식품, 의류 등 다양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기업 스폰서 자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지방정부들은 부수적인 경제효과 때문에 대회 개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엔 대회 참가와 여행을 함께하는 ‘마라톤 여행’이 신풍속도로 자리잡고 있다. 전형적인 관광도시 샤먼의 경우 2018년 국제마라톤 개최로 얻은 직접적인 경제효과는 1억1600만 위안(181억원), 연관 산업에 미치는 영향까지 감안한 총 경제효과는 2억900만 위안(478억원)으로 추산됐다.

3만명가량 참가하는 장쑤성 우시 국제마라톤은 외지인 20만명이 대회 구경이나 여행 명목으로 방문한다. 2016년 마라톤대회가 우시에 가져다준 직접적인 경제효과는 1억4300만 위안(235억원)으로 분석됐다.

중국의 마라톤이 단기간 급성장했지만 그에 걸맞은 스포츠 정신과 경기운영 능력이 부족해 온갖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쑤저우 국제마라톤에서는 자원봉사자가 우승 경쟁을 벌이던 중국 선수에게 국기를 억지로 건네 우승을 놓치게 한 일이 있었다. 대회 주최 측은 1~3위로 들어오는 중국인 선수에게 반드시 중국 국기를 걸치도록 한다는 방침이었다. 또 같은 달 선전마라톤에서는 258명의 참가자들이 지름길로 가거나 대타 참가 또는 가짜 번호표를 달고 뛰는 등 부정행위를 하다 적발됐다. 관영 신화통신도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마라톤과 스포츠 정신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설을 게재했다.

올 초 장쑤성 쉬저우 국제마라톤에서는 여성 참가자가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적발됐고, 시민들이 마라톤 선수들을 위해 코스에 마련된 물과 바나나를 먹어치우고 심지어 의자와 테이블까지 훔쳐가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초 난닝 국제마라톤에서는 진행요원이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선수와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팔을 잡아끌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마라톤대회는 아니지만 지난달 18~27일 후베이성 우한에서 열린 세계군인체육대회의 오리엔터링 경기에서는 중국군이 미리 목표지점으로 가는 길을 표시하고 이동하는 부정행위를 벌였다가 들통나 실격처분을 받았다. 중국은 1995년 시작해 4년마다 열리는 세계군인체육대회를 위해 1만명의 각국 군인선수단을 수용하는 선수촌까지 건설했으나 스스로 부정행위를 해 대회 수준을 깎아내렸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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