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범죄만 쫓지 않는다… ‘공익 대표자’로 약자 보호 한몫

국민일보

檢, 범죄만 쫓지 않는다… ‘공익 대표자’로 약자 보호 한몫

잘 안 알려진 ‘검사의 직무’

입력 2019-11-09 04:03 수정 2019-11-12 13:17

“제가 죽었다고요?”

경기도 안양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A씨(63)는 한때 ‘사망자’였다. 10년 넘게 노숙생활을 한 그는 IMF를 겪고 사업에 실패하면서 가족과 연을 끊은 채 살았다. 신용불량자로 거리에 나온 뒤엔 은행도, 동사무소도 갈 일이 없었다. 운 좋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었지만 월급은 현금으로만 받았다. 그래도 멀쩡히 살아 있는 자신이 죽은 사람이 됐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A씨 가족은 2013년 생사를 알 수 없는 A씨에 대해 실종신고를 했다. 신고 후 5년간 당사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실종자는 사망자로 간주된다. A씨는 최근 행정법규 위반으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으면서 그제야 자신의 처지를 알게 됐다. 법원에 실종선고 취소를 청구하려면 가족이나 보증인 2명이 필요하다. A씨에겐 두 가지 모두 어려운 조건이었다. “이제 와서 가족에게 연락할 면목이 없습니다. 보증인으로 세울 만한 사람도 없고요.”

막막해하던 A씨를 도운 건 그를 조사하던 검사였다. 민법상 검사는 실종선고 및 취소를 청구할 권한이 있다. 안양지청 형사1부(부장검사 우남준)는 해결책을 찾다가 해당 규정을 활용해 직접 실종선고 취소를 청구하기로 했다. 사망자 신분의 피의자는 검찰 측에서도 생소한 일이었다.

법원은 A씨의 상황을 고려해 빠르게 인용 결정을 내렸다. 행정법규 위반 범죄는 죄질이 비교적 중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검찰시민위원회 의결을 거쳐 기소유예 처분됐다. A씨는 거리 생활을 접고 지하 원룸에 새 살림을 꾸렸다.



“60년간 그저 방치돼 있었다”

B씨(61)는 2017년 겨울 전북 정읍의 비닐하우스에서 발견됐다. 작물을 심어둔 곳 한켠에 휴게실로 만들어둔 공간이었다. 이곳저곳을 떠돌다 추위를 피해 들어온 듯했다. 의사소통이 어려웠고, 당장 갈 곳도 없어 보였다. 농장주 부부는 B씨를 임시로 돌보며 B씨의 친척을 수소문했다.

사연은 기구했다. 중증 지적장애를 갖고 있던 B씨는 장애인 등록조차 돼 있지 않았다. 부모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친동생 한 명만 유일하게 연락이 닿았다. B씨가 간단한 농장 일을 하며 받은 전 재산은 이 동생에게 입금돼 있었다. B씨가 받는 기초생활수급비 통장 역시 동생이 관리했다. 그러나 B씨를 책임지겠다는 말은 없었다. “우리가 임시 보호하는 걸 아는데도 방치하고, B씨 돈도 마음대로 쓴 것 같아요.” 부부는 답답함에 B씨 동생 등을 고발했고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다.

B씨의 지적 수준은 네 살배기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글자를 모르는데다 ‘밥 먹자’ ‘씻자’ ‘가자’ 정도의 말만 알아들었다. 피해자 진술이 없는 상황에서 동생을 처벌하려면 B씨의 성년후견인이 필요했다. 장애·질병·노령 등으로 도움이 필요한 성인에게 재산 관리 등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제도다. 민법상 검사는 이러한 후견인 개시를 청구하는 권한을 갖는다.

B씨의 발달장애 감정을 진행하고, 지자체 교육을 받은 성년후견인을 찾고, 법원의 허가를 받고, 다시 후견인으로부터 고소장을 제출토록 하는 등 지난한 과정이 이어졌다. 지난달에야 B씨는 판결을 확정받고 재산을 돌려받았다. 검찰이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였다. 전주지검 정읍지청 고현욱 검사는 “어떤 정부기관이든 한번쯤은 B씨의 삶에 최소한의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남은 생을 후견인이 완전히 책임질 수 없는 것은 또다른 숙제”라고 말했다.


법이 정한 ‘공익의 대표자’

검찰청법 제4조는 검사의 직무를 정하면서 ‘공익의 대표자’로 직무를 수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A씨나 B씨 사례처럼 수사와 공소제기 외에도 검찰이 공익의 대표자로서 여러 분야의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실제 검사의 공익적 기능은 형사법, 민법, 상법, 행정법까지 광범위하다. 민법 안에선 부재자의 재산 관리나 실종선고 청구, 당사자가 없는 가사소송 청구, 후견 개시나 친권상실 청구 등의 권한을 들 수 있다.

이 중 친권상실 청구는 비교적 보편적으로 이뤄진다. 아동학대나 친족에 의한 아동·청소년 성폭행의 경우 피해자가 지속적으로 위험에 노출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지난 9월에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형사2부(부장검사 정우식)는 15세 친딸을 수차례 강간한 혐의로 박모(59)씨를 구속 기소하고 친권상실 심판을 청구했다.

같은 달 대전지검이 한국산 화장품 등을 베껴 판매한 업체에 대해 해산명령 결정을 이끌어낸 사례도 눈에 띈다. 이는 검사에게 회사의 해산명령 청구 권한이 있다는 상법상 규정을 따른 조치다.

법조계에선 이렇듯 형사법 외 분야에서도 검사의 공익적 기능이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온다. 대검은 2010년 용역 보고서를 발주해 관련 법률과 실태 등을 분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형사사건에 주력하는 검찰 분위기, 검사의 업무부담 등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지적이다. 검사가 공익적 기능을 얼마나 어떻게 수행했는지 평가할 수 있는 통계 자료 역시 찾기 어렵다.

한 부장검사는 “미국에선 형사법상 업무를 수행하는 검사와 민법상 업무를 수행하는 검사가 나뉘어 있다”며 “우리나라는 우선 형사사건으로 접수된 후에 문제를 인지하고, 검사가 부가적으로 민법상 조치를 취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검 관계자는 “민법이나 상법상 검사의 공익적 역할 수행이 사회적 약자 보호, 인권 보호와 관련이 있는 만큼 더욱 관심을 기울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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