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직·든든·신비… 사람에게 인형이란?

국민일보

충직·든든·신비… 사람에게 인형이란?

[책과 길] 인형의 시간들/김진경 지음/바다출판사/192쪽/1만8000원

입력 2019-11-09 04:05

사진 속 저 인형은 ‘탑시 터비 인형’으로 불린다. ‘탑시 터비(Topsy Turvy)’는 뒤죽박죽이라는 뜻의 영어인데 인형의 생김새를 보면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인형은 그리스 신화 속 메두사처럼 하나의 몸통에 머리 두 개가 달렸다. 괴상한 형태이지만 치마를 완전히 뒤집으면 평범한 인형으로 변신한다. 저 인형은 미국에서 한때 인종차별 문제를 드러내는 상징처럼 여겨졌다. 인형의 형태에서 백인에게 종속된 흑인의 신세를 느낄 수 있어서였다.

‘인형의 시간들’에는 이렇듯 인형을 통해 인류의 문화사를 살핀 이야기가 한가득 실려 있다. 인형의 기원을 따지자면 구석기 시대인 기원전 2만5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그리고 이후 오랫동안 인형은 지금과는 쓰임새가 많이 달랐다. 신전에 제물로 바치거나, 저승 가는 길에 동반자나 하인으로 삼던 의례용(儀禮用) 도구였다. 인형이 지금처럼 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으로 ‘대중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건 불과 200~300년 전부터다. 인형은 “아이에게도 아이 같은 존재”가 됐고, “돌봄을 받는 존재지만 거꾸로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사람을 돌봐주기도” 하는 희한한 물건으로 거듭났다.


저자는 2015년 5월 경기도 파주 헤이리에 들어선 세계인형박물관의 부관장인 김진경씨다. 그는 인형을 만들고 수집하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인형을 매개로 한 관계는 순수함을 담보한다”는 사실을 느꼈다고 한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유한성 때문에 불가능한 일도 인형에게는 가능하게 여겨진다. 인형은 그렇게 충직하고 든든하면서 신비로운 존재로 옆에 있다.”

인상적인 인형이 한두 개가 아니다. 가령 과테말라에는 ‘걱정 인형’이 있다. 황당한 미신처럼 여겨지는 인형이지만 자녀를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인형이다. 걱정 인형은 고작 2~3㎝ 길이의 나뭇가지에 천이나 실을 칭칭 감아 만든다. 과테말라 사람들은 잠 못 드는 아이들에게 걱정 인형을 안겨주며 지금도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걱정은 인형한테 말하고 베개 밑에 넣어두렴. 그러면 인형이 네 걱정을 모두 가지고 사라진단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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