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김윤관] 도식화된 경험은 위험하다

국민일보

[혜윰노트-김윤관] 도식화된 경험은 위험하다

경험이 얻어진 상황은 무시하고 교조적으로 적용하면 큰 낭패 보는 독이 되기 때문

입력 2019-11-08 04:07

“자신의 경험을 진리 삼지 마세요. 끝!”

새벽 한 시. 동네 편의점 앞 파라솔. 2년 만의 개인전 중이었고 전시장을 찾은 지인들과 술을 마셨고 내가 취하니 술을 못 마시는 동료 목수 한 분이 나를 집까지 태워다주게 되었고 긴 운전에 지친 그와 헤어지기 전 편의점 앞에 앉아 하루의 마지막 담배를 피우게 된, 그런 일상적인 시간과 장소.

나에게 목수일을 배운 후 이제는 동료가 된 그가 “맨날 농담만 하지 마시고, 무언가 좋은 말 한마디 해보세요”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취기 때문인지 갑자기 용기가 생긴 나는 나도 모르는 새 정색을 하며 말했다. “나무에 대한 지식이든 목공기술이든 하여튼 뭐든 자신의 경험을 진리 삼지 마세요. 그건 기껏해야 작은 참고자료 정도예요. 자신의 경험을 믿고 성경 삼으면 망해요.” 무언가 부끄러워진 나는 “이상 끝!”을 외친 후 후다닥 담배를 끄고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도망치듯 집으로 들어갔다.

취기에 나온 말이지만, 그것은 내가 목수라는 직업에서 배운 절실한 깨달음 중의 하나이다. 북미산 오크로 테이블을 만들고 그 다음 작업으로 다시 오크로 책장을 만든다. 이미 오크로 가구를 만들었으니 그 경험치를 반복하며 오크를 다룬다. 대개의 경우, 망한다. 테이블을 만들 때 모서리가 깨졌다. 필러를 으깨 접착제와 섞어 넣으니 깨끗이 보강이 되었다. 그 후 책장을 만들다가 접합부가 깨졌다. 당연하다는 듯 다시 필러를 으깬다. 대개의 경우, 망한다. 애쉬탄화목으로 작업한 서랍장에 월넛스테인이 몹시 어울렸다고 다음 서랍장에 다시 월넛스테인을 쓴다. 대개의 경우 칠을 벗겨내는 중노동을 하며 투덜대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경험을 관성적으로 적용한다면 이전 작업과는 ‘다른’ 실수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실수는 경험이 없을 때보다 더 크고 심각해 때로는 복구불능 상태가 되기도 한다.

목공 교육을 시작한 후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은 교육을 받는 분들에게 나의 경험과 지식이 교조적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경험과 지식이 만들어진 배경과 동떨어진 채 단지 구체적인 기능으로서의 경험과 지식만을 받아가게 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낭패를 볼 것이 분명하다. 자신들에게 가르친 방법과 다른 방법으로 작업을 하는 나를 보며 신뢰를 잃기도 할 것이다. 결국 선생으로서의 나를 부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배움의 기간이 반면교사로 남는, 최악의 경우가 된다.

경험이란 그 경험이 얻어진 상황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와 함께 고려될 때만 유용하다. 경험이 유의미한 것은 상황에 대처하는 반응의 과정에 대한 이해이지 데이터처럼 도식화된 경험 그 자체가 아니다. 상황이란 비슷해 보여도 깊게 들여다보면 늘 다르기 때문이다. 도식화된 경험은 상황의 이질성을 파악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도올 김용옥이 “퍽 깊이 있는 사상가다”라고 감탄했던 무술가 이소룡. 그는 가혹할 정도로 무술을 연마하면서도 막상 실전에 들어가면 자신이 수련했던 기술들을 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 ‘정무문’에서 그는 다리로 자신의 목을 조르는 서양 무술가의 허벅지를 꽉 물어버리는 방법을 통해 위기에서 벗어난다. 그 장면은 ‘형’을 중시하는 당대의 무술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며, 근대무술의 시작을 상징하는 장면이 되었다. 당연히 그의 수련시간에 ‘상대의 다리물기’가 있었을 리 없다. 이소룡은 경험과 실전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차이를 ‘탄력성의 결여’라고 말한다. 탄력을 위한 기초, 혹은 유용한 길잡이에 불과한 경험의 외형을 고착된 진리처럼 받아들인다면, 경험은 독이 된다. 내가 목공수업 동안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일부러 외우지 마세요”와 “메모하지 마세요”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문득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유행어를 남긴 대통령이 떠오른다. 그는 자신의 유행어를 남발하며 수많은 조언과 정책을 내세웠다. 하지만 그가 ‘해봐서 잘 안다’며 했던 말들은 당시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상처가 되었으며, 그가 내세운 정책 역시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자신의 경험을 진리화하는 사람은 좋은 무술가도, 좋은 조언자도, 좋은 정치가도 될 수 없는 모양이다. 적어도 좋은 목수가 되기를 꿈꾼다면, 내가 해봐서 아는데, 자신의 경험을 지나치게 확신하면 안 되는 것은 분명하다.

김윤관 김윤관목가구공방 대표목수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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