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北 주민 추방, 나쁜 선례 남겼다

국민일보

[김진홍 칼럼] 北 주민 추방, 나쁜 선례 남겼다

입력 2019-11-11 04:01

증거도 없이 엽기적 살인 사건 범인이라고 단정한 뒤
부랴부랴 추방한 일련의 과정 납득하기 어려워
군 보고체계 허문 JSA 대대장·靑 국가안보실 1차장 문책해야
국방부 장관은 ‘대북 저자세’란 비판 새겨듣길


지난 7일, 북한 주민 2명이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됐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첫 사례다. 희한한 사건이라는 의미다. 게다가 추방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께름칙한 부분이 적지 않다. 며칠 새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 그 전모는 시간이 흘러야 명확하게 밝혀질 것 같다.

정부는 추방한 두 사람이 우리 국민을 위해(危害)할 가능성이 있는, 보호할 가치가 없는 흉악범이라고 단정했다. 배 안에서 선장을 포함해 무려 16명을 살해한 범인이라는 것이다. 선장의 가혹행위에 대한 앙갚음이었고, 다른 선원들을 살해한 건 범행을 숨기기 위해서였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그러면서 범행 도구와 살해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추방된 이들의 진술과 국가정보원이 북측으로부터 받은 정보, 선박에서 발견된 혈흔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추론일 뿐 확인된 사실(事實)은 아니다. 정부 관계자 누구도 시신은 물론 살해 도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이 15m밖에 안 되는 소형 목선에서 16명이나 차례로 때려 숨지게 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라는 기본적인 의문을 해소하기에도 역부족이다. 북한 사정에 밝은 이들은 소형 목선에 10명 이상이 타는 경우는 없다고 전한다. 정부가 강조하는 ‘엽기적 살인 사건’의 근거가 희박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추방 조치는 신속했다. 엄청난 사건을 저질렀다고 했지만 조사 기간은 지난 2일부터 5일까지 나흘뿐이었다. 이어 북한에 송환하겠다고 통보했고, 이튿날 북한으로부터 수용한다는 답변을 받았고, 추방했다.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대대 한국군 대대장의 문자메시지 내용처럼 ‘송환 관련해 국정원과 통일부 간 입장 정리가 안 되어 추가 검토할 예정’인 상태였지만, 속전속결로 일을 처리한 셈이다. 또 정부 해명대로라면 북한이 요구하기 전에 북송 방침을 통보한 셈인데, 이 역시 이례적인 장면이다. 통상 북한의 요구가 북송에 앞선다. 정부는 명백한 살인사건 범인이어서 그랬다는 입장이나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북한의 조속한 송환 요구가 의외로 강했던 것 아닐까, 각종 미사일 도발에다 금강산 남측 시설을 철거하겠다고 나선 북한을 다독이기 위해 추방을 서두른 건 아닐까라는 등의 의문이 드는 지점이다. 더욱이 북한 땅에 들어가자마자 처형당할 가능성이 농후한데도 철저한 조사 절차 없이 부랴부랴 추방한 점은 인권과 정의를 도외시한 처사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북한이 범죄자라고 주장하면 해당 탈북민을 추방할 것인지 우려스럽다.

그리고 JSA 대대장은 문자메시지에서 ‘북한 주민 2명이 자해 위험이 있어 경찰이 에스코트할 예정’이라고 했다. 통일부 장관은 ‘귀순의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북한 주민들이 죽더라도 돌아가겠다는 진술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다소 엇갈리는 말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북한 주민 추방 사실이 알려진 계기는 정말 의외였다. JSA 대대장이 7일 오전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언론에 우연히 노출되자 정부가 긴급 브리핑에 나선 것이다. 북송 절차가 마무리되면 공개할 계획이었다는 게 정부 해명이나 석연찮다. 나포해서 추방하기까지 5일 동안 숨겨야 했던 이유가 뭘까. 이런 물음들에 정부가 정직하게 답하길 기대한다.

이 와중에 불거진 ‘국방장관 패싱’은 심각한 문제다. 지난 7일 국회에 출석해 있던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북송 계획을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JSA 대대장이 김 차장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알았다’고 했다. 국방부가 아닌 청와대에 먼저 보고한 대대장, 그리고 대대장으로부터 직보를 받은 김 차장의 행태가 어처구니없다. 현역 장교가 무슨 까닭인지 청와대 고위 관계자와 ‘직거래’를 했고, 군 보고체계의 엄중함을 잘 알고 있을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현역 장교의 직보를 즐긴 정황이 역력하다. 둘 다 문책해야 한다. 김 차장의 경우 지난 6월 북한 목선의 ‘해상판 노크 귀순 사건’ 때 벌어진 은폐·축소 논란으로 엄중 경고 조치를 받은 바 있다.

JSA 대대장의 문자메시지 논란에 대한 진상조사를 지시한 정 장관 역시 자성해야 한다. 국방부는 부인하지만, 정 장관 리더십이 군 내에서조차 확고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 것 아닌가 싶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함박도의 북한 군사시설에 대해 정 장관과 이승도 해병대 사령관이 사뭇 다른 평가를 한 것도 마찬가지다. 정 장관의 대북 발언들을 보면 조만간 실전 배치될 것으로 보이는 북한의 신형 단거리 무기들에 대해 “안보 위협이 아니다”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발언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정 장관이 북한에 저자세인 청와대와 계속 코드를 맞추려 한다면 리더십 회복은 불가능할 것 같다.

편집인 jhkim@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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