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홍규의 문학스케치] 소설가를 키운 이야기

국민일보

[손홍규의 문학스케치] 소설가를 키운 이야기

시골 아주머니들이 모여 앉아 저마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에 감탄했던 기억이 생생해

입력 2019-11-16 04:09

왜 소설을 쓰게 되었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런저런 대답을 했는데 돌아보니 그때마다 내 대답은 조금씩 달랐다. 그 이유는 나조차 왜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 확신할 수 없어서였다. 다른 일들처럼 글쓰기의 개인적 기원 역시 모호할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다양한 계기가 있었고 그중 어떤 경험이 결정적이었는지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미처 의식하지 못한 내밀한 계기가 따로 있을지도 모를 테니까. 그럼에도 내가 꼭 언급할 수밖에 없는 기억 가운데 하나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었다.

그 시절에는 저녁 밥상을 물리면 밤마실을 다니곤 했는데 여름날이면 죄다 마을 정자에 모여 밤이 이슥토록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날이 쌀쌀해지면 끼리끼리 어울리는 곳을 찾아가게 마련이었다. 마을 아주머니들이 주로 모이던 곳이 우리 집이었다. 아버지가 밤마실을 나가면 아주머니들이 하나둘 우리 집으로 모여들었다. 그 좁은 방에 주전부리를 두고 둘러앉아 저마다 바구니를 짜거나 구슬을 꿰거나 바느질을 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는데, 나는 입을 삐죽 내민 채 아주머니들의 엉덩이께에 엎드려 숙제를 할 수밖에 없었다. 왁자하게 웃음이 터져 나오면 그 튼실한 엉덩이들로 자꾸 나를 벽 쪽으로 밀어붙이는 통에 제대로 할 수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때는 귀찮기만 해서 저 아주머니들이 언제 돌아가시려나 시계만 보았으나 지금 돌아보면 당신들이 나누던 이야기를 감탄하며 듣던 그 시간들이 내게 소설에 대한 열망을 불어넣어줬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처럼 오랫동안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당신들에게는 당신들만의 이야기 방식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중 한 가지는 이렇다. 모두 모여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뒤늦게 도착한 아주머니가 있다고 치자. 그러면 왜 이렇게 늦었냐고 묻게 되는데 으레 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할 수밖에 없었다. 저녁밥을 늦게 먹어서. 밥은 일찍 먹었지만 할 일이 있어서 등등. 그러나 뒤늦게 도착한 아주머니는 이렇게 서두를 뗀다. 한 달 전에 우리 친정아버지 생신이었거든.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면 구구절절 지난 한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풀어내야 끝이 난다. 친정 식구들에게 무심한 남정네 탓에 서러웠던 일과 남정네와 신경전을 벌이게 된 시시콜콜한 일상들이며 제 아비 편만 드는 아이들에 대한 서운함까지 토로하고서야 그날 저녁 밥상머리에서 반찬 투정하는 아이를 혼내줬는데 아이가 울면서 떼를 쓰는 바람에 남정네와 대판 싸우게 되었고 그냥 박차고 일찌감치 마실이나 나오려다 설거지통에 처박아둔 그릇들을 보며 저걸 지금 안 치우면 내일 아침이 힘들어지겠지 싶어 겨우겨우 뒷갈망하고 나오느라 늦을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마무리되는 거였다. 밤마실에 늦은 이유는 한 달 전 친정아버지 생신에 남편이 무심했던 탓이라는 거였는데 나로서는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설명이었음에도 그 자리에 모인 아주머니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맞장구를 치고 함께 욕을 해주면서 후련해하는 거였다.

나는 그런 이야기 방식이 소설에서 인과관계를 중시한 서술방식을 뜻하는 이른바 플롯이라고 일컫는 것과 동일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플롯은 무의미한 혼돈을 정돈하여 의미를 생성해내고 무질서에 질서를 부여해 불가해한 세상을 이해 가능한 세상으로 제시해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사내들 틈에서 자란 나는 왜 늦었냐는 질문에 이처럼 삶의 비밀을 요약해서 대답할 수도 있다는 걸 몰랐고 그렇기에 아주머니들의 이야기 방식에 감탄했다.

물론 이밖에도 아주머니들의 이야기 방식에는 사내들은 꿈도 꾸지 못할 특별한 점이 많았다. 그걸 일일이 거론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밤마실 자리에서 당신들이 나누던 이야기와 그런 이야기를 풀어내던 방식이 결국 내게 소설은 무엇이 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다가왔고 그 질문의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소설을 쓰는 과정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내가 한사코 소설의 형식은 인간의 형식임을 믿는 이유도 그래서이다. 그러니 잊어서는 안 되는 게 있다면, 왜 소설을 쓰게 되었냐는 질문에 매번 허둥거린다 해도, 한 송이 꽃이 피어나기 위해서는 해와 달과 별이 바람과 구름이 비와 눈이 그리고 뿌리 내릴 대지가 아니 온 세상이 필요하듯이 한 사람이 소설가로 자랄 수 있으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그 사람의 가슴속으로 스며들어야 했는가일 것이다.

손홍규(소설가)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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