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정현수] 두더지 잡기

국민일보

[가리사니-정현수] 두더지 잡기

규제하면 피해가고 풀면 또 튀어오르는 부동산 광풍을 정상으로 되돌릴 묘안 없나

입력 2019-11-18 04:06

마치 거대한 ‘부르마블’ 게임을 보는 것 같다. 최근 부동산 투자 열풍을 취재하면서 든 생각이다. 그동안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국한돼 있던 게임판은 전국의 광역도시까지 범위를 넓혔다. 게임 참가자들은 부지런히 말을 움직여 ‘갭(매매가격과 전셋값의 차이)’이 작은 주택(특히 아파트)을 선점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진행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이 게임을 취재하는 내내 참가자들이 얼마나 앞서 있는지 가늠하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올해 집값이 가장 많이 올랐다는 대전에 갔더니 “이미 먹을 만큼 먹은 사람들은 그 돈 들고 다 울산으로 갔다”고 했다. 그래서 울산을 찾아가면 “울산도 다 끝났고, 부산으로 넘어가는 중”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구, 광주는 이미 대전이 뜨기도 전에 게임이 마무리돼 있었다.

게임의 메커니즘은 간단하다. 싼값에 집을 사들여 뒤따르는 진입자들에게 비싸게 팔아 수익을 남긴다. 부르마블 게임에서 전 세계 유명 도시에 먼저 도착한 사람이 땅을 사고, 그 땅에 뒤늦게 도착한 사람에게 이용료를 받아 자산을 늘려가는 방식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쏠쏠하게 재미를 본 사례들을 추적하다 보니 1년에 1억~2억원씩 벌어들인 사람들이 숱하게 보였다. 선점에 실패한 후기 진입자들은 저보다 더 늦은 추격 매수자에게 웃돈을 얹어 집을 팔고 있었다. 그렇게 부동산 투자 광풍이 전국을 휩쓰는 중이다.

문제는 지금 진행되는 부동산 투자가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부동산 투자는 방치되거나 제 역할을 못 하는 땅 위에 공장이나 상가, 주택 같은 시설을 들여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이다. 하지만 지금 너도나도 뛰어드는 갭투자는 이런 부동산 투자의 순기능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갭투자에 나서는 사람들은 전세 세입자를 끼고 적은 돈을 들여 주택을 산 뒤 1~2년 들고 있다가 집을 판다. 더 비싼 값을 부르는 매수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일 외에 갭투자자들이 딱히 더 하는 일은 없어 보인다. 세입자를 받기 위한 싸구려 인테리어를 하는 정도다. 집이 주는 효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는데, 가격만 오르는 셈이다. 물론 집값이 오르면 기존 소유자들이 그 집을 담보로 대출을 더 많이 받아 생산적인 활동에 나설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장은 그렇게 순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 듯하다. 되레 늘어난 대출 여력으로 또 다른 갭투자에 뛰어드는 게 현실이다. 그렇게 서로서로 가격만 띄우는 ‘폭탄 돌리기’가 반복되고 있다.

이 게임을 적절한 수준에서 관리해야 할 정부라는 심판은 무력해 보인다. 물론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실수요자 부담을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무수히 많은 정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게임 참가자들은 귀신같이 허점을 찾아냈다. 세종을 잡으니 대전이 뜨고, 대구·부산을 잡으니 광주·울산으로 몰려갔다. 지난 8일부로 조정대상지역에서 풀린 부산 ‘해·수·동(해운대·수영·동래)’을 보라. 집을 팔려고 내놨던 매도자들이 매수자들에게 계약금을 물어가면서까지 다시 매물을 거둬들이면서 다시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규제로 묶어도 피해가고, 규제를 풀면 다시 뛴다. 아무리 잡아도 튀어 오르는 두더지 잡기 게임을 방불케 한다.

어쩌면 이런 상황을 유발한 건 정부다. 그간 경험해 본 적 없는 저금리 기조가 수년째 지속되고 있다. 그만큼 시중에는 많은 돈이 풀렸다. 하지만 이 돈은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침체기로 빠져든 제조업, 공급과잉이라는 자영업….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마땅한 투자처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그나마 발 디딜 수 있는 부동산으로 쏠린다. 결국 정부가 경제적으로 부동산을 대체할 만한 어떤 비전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게임의 끝은 어디일까. 부르마블에선 1명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참가자가 파산해야 게임이 끝난다. 현실에서 이 파산자가 누가 될지 너무 뻔하다. 갭 투자자들이 가격을 튀겨놓은 집에 실제 들어가 살아야 할 사람들이다. 꼬박꼬박 저축해 저 살집 한 채 마련해 보려는 사람들과 세입자들이 그 부담을 감당해야 할 테다. 그 파국이 오기 전에 이 게임을 정상으로 되돌릴 정부의 묘안은 무엇인가. 아무리 봐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으름장으로 진정시키기엔 현장이 너무 살벌하다.

정현수 이슈&탐사팀 기자 jukebox@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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