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조혜련 (4) 개그맨 시험에 떨어진 후 낙심… 과자 공장으로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조혜련 (4) 개그맨 시험에 떨어진 후 낙심… 과자 공장으로

결선서 한 팀이었던 김국진 오빠만 합격… 상실감에 휴학하고 집 나와 공장에 취직

입력 2019-11-1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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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한양대 연극영화과 졸업식에서 아버지 조용도씨(왼쪽)와 함께 찍은 사진.

나는 개그맨이 되기 위해 콘테스트에 나갔다. 우여곡절 끝에 경기대학교를 다니는 김국진 오빠를 만나게 됐다. 우리는 한 팀이 돼 KBS 개그콘테스트를 준비했다. 국진 오빠는 싱거운 개그스타일을, 나는 조금 과장된 연기를 각각 준비했다.

우리는 1차 시험을 무사히 통과했다. 욕심이 난 나는 2차 예선에서 1차 때보다 더 과장해서 연기했다. 결과는 한 팀임에도 불구하고 국진 오빠만 합격하고 나는 떨어졌다. 삶의 의욕이 사라졌다. 학교 가는 것도 싫고 집에 들어가기도 싫었다. TV에 나오는 국진 오빠의 모습은 더더욱 볼 수 없었다.

개그맨 시험에 떨어지고 큰 상실감에 학교를 휴학했다. 집을 나온 뒤 과자 공장에 취직했다. 가족들 눈치 보느라 그동안 못 먹어본 과자라도 실컷 먹어보자는 심산이었다. 고되고 힘든 단순한 노동이었다. 열두 시간 동안 서서 과자를 포장해야 했다. 좋아하는 과자를 먹으며 버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밤샘 작업은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잘못하면 깜빡 졸다가 컨베이어벨트에 손이 끼는 사고를 당할 수도 있었다.

야간 근무를 하는 어느 날이었다. 기숙사 로비에 TV가 켜져 있었다. 코미디 프로그램 ‘봉숭아학당’이 방영되고 있었다. 맹구와 오서방의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보고 있는 동료들이 밝게 웃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기숙사 로비의 풍경은 커다란 충격을 줬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웃음을 주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했다. 공장 생활 8개월 만에 짐을 싸서 한양대 연극영화과로 복학했다.

1992년 KBS ‘청춘스케치’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휘트니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를 충청도 버전으로 코믹하게 불러 1등을 했다. 그 후 송은이 김생민 등과 함께 ‘코미디 외인극단’이라는 팀에 합류해 콩트로 데뷔했다. 시간이 지나고 국진 오빠랑도 재회했다.

“나는 네가 언젠가 될 줄 알았어. 넌 어디서도 못 본 캐릭터야. 열심히 하자.”

MBC 코미디프로 ‘울엄마’라는 코너에서는 서경석과 콤비로 연기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팝송에 재미있는 발음을 붙여 재구성한 ‘아나까나’라는 노래를 할 때면 사람들은 웃어댔다. 영화 ‘반지의 제왕’의 캐릭터인 ‘골룸’도 연기했다. 골룸을 연기할 때면 머리카락 몇 가닥만 남겨둔 채 눈썹은 다 밀고 이빨은 다 썩은 분장을 해야 했다. 나뭇잎 하나 거칠 정도의 옷을 입은 뒤 “마이프레셔스 골룸, 골룸!”만 계속 외치며 마치 천식에 걸린 듯이 기침을 해야 했다.

사람들은 박장대소했다. 공장에서 피곤한 동료들이 봉숭아학당을 보며 배꼽 잡고 웃었던 그 웃음을 드디어 나도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게 된 것이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경험도 여러 번 있었다. SBS 쇼예능 ‘스포츠 대 탐험’이라는 프로에서 혼자 패러글라이딩으로 산에서 뛰어내려야 했다. 비행 도중 조교와의 무선이 끊겼다. 뒤늦게 쫓아온 조교의 도움을 받아 착지를 시도했지만 얼음 바닥에 머리가 먼저 착지돼 큰일 날 뻔했다.

또 한번은 스쿠버다이빙에 도전하던 중 25m 바닷속에서 수경에 물이 찬 것을 빼내려고 벗었다가 바닷물을 들이마셔 버렸다. 그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고 동공이 풀리며 패닉 상태에 들어갔다. 조교의 도움으로 나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살아날 수 있었다. 이렇게 위험했던 순간을 돌이켜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때 죽지 않고 지금 살아있는 이유가 있구나!’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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