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사] “계층이동 유일한 통로”… 부동산에 미래 맡긴 30~40대

국민일보

[이슈&탐사] “계층이동 유일한 통로”… 부동산에 미래 맡긴 30~40대

[부동산 가격 상승 추적기] ③·끝 부동산 광풍에 올인하는 사회

입력 2019-11-19 04:07
66㎡(20평) 정도 되는 강의실이 빼곡 찼다. 강의실 뒤편에 보조의자까지 가져다 놨지만 자리가 없어 서서 듣는 사람들도 있었다. 애초 신청자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몰렸다고 한다. 30~40대 젊은 층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지난 주말 서울에서 열린 유명 스타 컨설턴트의 부동산 강연 현장이다.

“지금 여기 오신 분들은 제 강의를 듣고 난 뒤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있어야 합니다.” 강연자가 부동산 투자 필요성을 강조하면 참석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초소형 주택 갭 투자’가 답”이라는 결론이 나오자 받아 적는 손이 분주했다. “아직도 부동산 투자를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힐책에 반성하듯 ‘아’ 하는 탄식도 나왔다. 강사는 “정 모르겠으면 수수료를 내고 상담을 받아서라도 투자하라”고 권유했다. 수수료는 100만원이다.


주말 전국에서 출발하는 임장 버스

부동산 투자 열풍은 세대를 가리지 않고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서울에서 초소형 갭 투자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부산에서는 대출 레버리지를 이용한 월세 투자 기법 강의가 열렸다. 같은 시각 서울 강동구에서는 한 부동산 카페 모임 임장팀이 모였다. 경매물건을 직접 본 뒤 언제 들어가고 빠질지 논의하는 자리였다. 인천에서도 부동산 카페에서 만난 부동산 투자 스터디 회원들이 서구와 검단 지역에 나온 아파트 매물들을 직접 돌아본 뒤 각자의 평가를 공유하는 오프라인 모임을 가졌다.

이런 식으로 각 지역에서 진행된 부동산 임장행렬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18일 “요새는 규제가 느슨하거나 풀린 주요 부동산 급등 지역을 향해 주말마다 전국에서 임장 버스가 출발한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실제 포털 사이트에 ‘임장 후기’ 검색어를 넣으면 지난 9~16일 올라온 부동산 투자 스터디 카페 게시글이 400건 넘게 뜬다. 임장 후기는 대체로 지난 8일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된 부산 관련 글이 많았다. 아예 부동산 임장 후기 과정을 찍은 유튜브 영상도 올라온다. 한 부동산 강사는 “부산 부동산 임장을 갔다가 중개업자들로부터 냉대를 받았다. 중개업자 수첩에 수십 페이지가 넘을 정도로 매수 대기자가 많았고, 프리미엄도 5000만~1억원 정도 더 붙었다”며 “불과 몇 달 전 괜찮다고 해도 억지로 물건들을 보여주던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됐다”고 현장 상황을 전달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부동산 투자열풍이 30~40대 젊은 계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주택도시연구실장은 “최근 몇 년간 진행된 집값 상승기에 가장 소외돼 있던 층이 집을 가지지 못한 30~40대 젊은 층”이라며 “지금이 아니면 영영 내 집을 마련하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자신의 미래소득을 담보 삼아 막차에 올라타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은 계층이동 사다리’ 인식

문제는 이들이 중장년층보다 자산을 축적하지 못한 상태라는 점이다. 허 실장은 “젊은 층의 부동산 투자 진입은 굉장히 불안한 부분이다. 경기침체 장기화로 소득이 줄거나 현재 낮은 금리가 다시 오르기 시작하면 모아둔 자산이 없는 젊은 층은 무리해서 낸 빚을 감당하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에게 부동산은 계층 이동의 거의 유일한 사다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젊은 사람들이 인생 목표를 부동산 투자로 설정하는 현상 자체가 한국 사회의 활력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방증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윤상 경북대 행정학부 석좌교수는 “너도나도 부동산 투자에 달려드는 현상은 굉장히 위험하다. 자금이 생산 분야로 돌지 않고 투기로만 쏠리면서 경제가 돌지 않는다”며 “이런 상황의 끝은 과거 일본 부동산의 버블붕괴다. 투기수요로 형성된 거품이 터지면 경제 전반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방 내 ‘소(小)강남’과 나머지 외곽지역 간의 격차가 벌어지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것도 문제다. 허 실장은 “부산만 봐도 해운대구 동래구 수영구만 오르고, 대구는 수성구만 오른다.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외곽지역은 상황이 여전히 나쁘다”며 “서울 내에서 벌어졌던 강남 집중 현상이 전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지방 내 핵심지역과 외곽지역에 사는 사람들 간 자산격차가 더 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책 내성 생긴 부동산 투자

정부는 최근 일부 지방의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정상적이진 않다고 판단한다면서도 구체적으로 대책을 내놓는 데는 신중한 모습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과열되고 있는 지방 부동산 추이를 살펴보고 있는 단계”라며 “아직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한 상태에서 구체적인 규제정책을 언급하면 시장에 쓸데없는 교란만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정부의 이런 입장에 대해 “특정 지역을 규제하고 나서면 또 다른 지역이 튀어 오르는 풍선효과를 우려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낮은 금리로 시중에 워낙 많은 돈이 풀려 있는데, 부동산을 대체할 만한 투자처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며 “정부의 단기적인 규제정책이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권 리서치팀장은 “모든 정권이 서로 다른 부동산 관련 정책들을 쏟아냈지만 결과적으로 부동산 가격은 올랐다”며 “내성이 생긴 투자자들이 정부 정책을 무서워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정부 규제보다 더 발빠르게 움직이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석좌교수는 “부동산 매입가격에 대한 이자 정도를 뺀 나머지 수익에 세금을 더 물리는 등 강력한 세금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허 실장은 “그동안 정부는 부동산 시장 대책을 사안별로 자주 내놓으면서 오히려 변동성을 키운 측면이 있다. 좀 더 장기적 안목에서 포괄적인 부동산 정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정현수 임주언 김유나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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