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조혜련 (5) 일본 고급 커피숍 바닥 기며 “마이프레셔스, 골룸!”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조혜련 (5) 일본 고급 커피숍 바닥 기며 “마이프레셔스, 골룸!”

여행 중 우연히 현지 예능 방송 보고 무작정 일본에서 신인으로 도전 결심

입력 2019-11-20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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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서울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에서 열린 개그맨 전유성 데뷔 50주년 기념 공연에서 골룸으로 분장한 조혜련씨가 밝게 웃고 있다.

1992년에 데뷔했으니 연예인으로 활동한지도 27년째 접어들었다. 가장 힘들었을 때를 꼽으라면 일본에서 도전장을 내고 활동했던 7년간의 시기였던 것 같다.

내 나이 30대 중반, 딸 윤아가 여덟 살, 아들 우주가 여섯 살 때이다. 방송 활동으로 늘 바빠서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했다. 어린 딸은 엄마를 너무도 좋아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제일 먼저 하는 말은 이거였다.

“엄마 오늘은 안 나가요? 나랑 놀아줄 수 있어요?”

“엄마 오늘 일 있어!”

“내일은요?”

아이들은 엄마의 자리를 원했지만 나의 삶은 늘 분주했다. 일이 없으면 일을 만들고 그걸 이루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불도저 같은 삶을 사는 나였다. 더 나아가 일에 대한 욕심은 한국 활동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바쁜 방송 활동 중간에 잠시 짬을 내어서 일본으로 여행 갈 기회가 있었다. 그때 호텔에서 우연히 일본방송을 보게 됐다.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일본 예능프로그램 분위기가 한국방송과 상당히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일본어를 할 수 있다면 일본방송에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국으로 돌아와 무작정 서점에 가서 일본어책을 산 다음 ‘히라가나’부터 하나씩 익혀나갔다. 두 달 정도 공부한 후 먼저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던 탤런트 윤손하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왕래도 없었던 그녀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무턱대고 부탁했다. 손하 도움으로 나는 일본 매니저와 만나게 됐다.

일본의 유명 대형기획사의 매니저를 하라주쿠에 있는 고급커피숍에서 만났다. 일본 매니저는 나한테 할 수 있는 개그를 한번 보여달라고 했다. 그때는 일본어를 잘하지 못해 몸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고급스러운 커피숍의 바닥을 기어 다니며 나는 “마이프레셔스, 골룸!”을 외쳤다. 물구나무도 섰다. 너무 긴장한 탓에 그만 바닥에 ‘꽈당’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나의 행동에 많은 사람이 당황해했다. 매니저는 통역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나이가 적은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는 스타라고 하는데 신인으로 도전하겠다는 당신의 열정을 높이 삽니다. 그러나 일본어를 할 수 있어야 활동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6개월 동안 열심히 일본어를 공부해서 그땐 통역 없이 만납시다.”

한국에 돌아와 집 근처에 사는 일본인 선생님과 매일 세 시간씩 수업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늘 바빠서 같이 놀아주지 않는 엄마를 보며 속상해했던 딸은 이제 일본어 공부까지 하는 엄마를 보며 입이 삐쭉 나와 있었다. 하루에 100개씩, 6개월 동안 1만개의 단어를 외웠던 것 같다.

나는 다시 매니저를 만나러 일본으로 향했다. 호텔 로비에서 통역 없이 나와 매니저 두 사람만 만나기로 약속했다. 인사를 나누고 2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매니저가 하는 말을 내가 알아듣고 내가 하는 말을 그 매니저가 알아듣는 것이 아닌가.

“6개월 전에 골룸만 외치던 그 혜련이 맞아요? 어떻게 이렇게 빨리 일본어로 말할 수 있게 되었죠?”

그는 황급히 자기 차에 나를 태우고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그날 나는 일본 기획사와 계약했다. 드디어 일본방송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그 도전에 어떤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신인으로 열심히 하겠다며 무식하게 “도전”을 외쳤다.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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