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정승훈] 제 눈의 들보 못 보는 이웃

국민일보

[데스크시각-정승훈] 제 눈의 들보 못 보는 이웃

입력 2019-11-20 04:04

지난주 방한한 중국 작가 옌롄커가 들려준 중국 대학의 연구 프로젝트는 황당하다. ‘인류는 아프리카가 아닌 중국에서 시작됐다’는 정도는 다른 주제에 비하면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주제는 어떤가. ‘예수의 고향은 동북지역이다’ 혹은 ‘영어는 후난성에서 기원했다’. 어린아이조차 코웃음 칠 만한 주제인데 이런 내용을 주요 대학이 연구하고 있다니. 문제는 그냥 웃고 넘길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5년 전 미국의 한 대학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지낼 때 다국적기업 직원이라는 중국인 수강생과 논쟁을 벌였다. 비영어권 출신 교환학생·방문연구원 등이 한데 모여 듣는 영어 수업시간에 강사가 평원(plain)을 주제로 던졌다. 강사는 로키산맥 동쪽의 ‘대평원(Great Plains)’을 언급했고, 남미 출신 수강생들은 ‘팜파스(Pampas)’를 주로 얘기했다. 논쟁은 갑자기 중국 수강생이 “단일 국가 내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평원이 중국의 몽골평원”이라고 말하면서 벌어졌다. 그가 말한 몽골평원은 독립국가인 몽골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몽골은 더 이상 과거 청나라에 복속돼 있던 ‘외몽골’이 아니라고 설명했고 다른 수강생들과 강사가 모두 동조했지만 그는 끝까지 몽골은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한동안 기억 속에 묻혀 있던 그들의 아집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주한 중국대사관이 지난 15일 내놓은 대변인 담화를 읽고는 혀를 찼다. 한국 대학 캠퍼스에 걸린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를 일부 중국인 유학생들이 찢고 훼손하는 상황에 대해 “중국의 청년 학생들이 중국의 주권을 해치고 사실을 왜곡하는 언행에 분노와 반대를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18일 정례브리핑에서 이에 대해 “국가를 분열하고 중국의 이미지를 손상하는 언행에 분개와 반대를 표시하는 것은 당연하며 사리에 맞는 일”이라고 했다. 중국 국민의 합법 활동을 존중하고 보장하라는 요구까지 했다.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아닌 한 국가의 외교부 대변인이 어떻게 자국의 입장과 다른 주장을 하는 글은 찢어도 된다는 식으로 얘기할 수 있는지 말문이 막혔다. 대자보를 찢거나 말다툼을 벌이는 수준이 아니라 의견이 다르다고 폭행하거나 더 심한 행동을 해도 별일 아니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주 브라질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 기간 중 “세상의 일은 모두가 상의해 처리해야 하지 어느 한 나라 또는 소수의 몇 개 국가가 무어라 말한다고 해서 바로 그렇게 되는 건 아니다”라는 얘기를 했다. 더 강한 미국을 향해서는 이렇게 주장하는 그들이 다른 나라가 중국을 향해 비슷한 주장을 할 때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홍콩 사태를 볼 때 시위대의 폭력성도 변명이 어렵지만 더 큰 문제는 이를 방조하는 홍콩 행정당국과 중국 정부의 태도다. ‘일국양제’를 내세우고, 의회에는 야당도 있지만 협상은 없다. 실탄을 쏴가며 그저 진압할 뿐이다. 의회에서 토론과 타협을 통해 송환법 조항을 조정했으면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을 대화의 여지조차 주지 않고 밀어붙인 것이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가장 큰 원인이다.

중국의 입법부인 전국인민대표회의는 19일 “(홍콩의 대법원 격인) 홍콩 고등법원은 복면금지법에 위헌 결정을 내릴 권한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국 본토의 입법부가 전날 내린 홍콩의 사법부 판결을 대놓고 무시하는, 허울만 남은 일국양제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현실을 다시 깨닫는다. 오른쪽 왼쪽을 둘러봐도 위를 올려 봐도, 바다 건너 멀리 쳐다봐도 제 입장만 강요하는 이들뿐이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이는 그저 성경 구절을 되뇐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태복음 7장 3절)

정승훈 국제부장 shjung@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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