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도 아니면서 옷 빼입고”… 설교 중 지적 당하고 교회 옮길까 고민

국민일보

“신부도 아니면서 옷 빼입고”… 설교 중 지적 당하고 교회 옮길까 고민

이경은 목사의 ‘아스팔트에 핀 부흥의 꽃’ <4>

입력 2019-11-2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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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은 순복음진주초대교회 목사(오른쪽)가 1987년 5월 평신도 시절 경남 사천 삼천포교회에서 목회자 및 성도들과 함께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6~7)

1980년 교회에 출석하면서 주님의 성전에 물질을 채우는 일뿐만 아니라 주의 종을 섬기는 일에도 최선을 다했다. 말씀을 떠나서라도 목사님과 사모님을 뵈면서 종종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내가 가야 할 길을 저 두 분이 가시는구나. 나는 새벽 기도 한 번 나오는 것도 힘든데….’

매일 같이 새벽기도를 나오시는 것 하나만으로도 정말 대단해 보였다. 그래서 목사님 가정에 필요한 것을 공급해 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늘 세심히 살피며 다른 사람에게 드러나지 않게 채워드렸다. 급기야는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실 정도였다. “집사님, 인제 그만 가져오세요.”

그렇게 섬기면서도 부담스럽지 않도록 조심했다. 가끔 주의 종에게 좋은 것으로 섬기고, 그것이 자기 생각과 다른 곳에 쓰이면 불평하고 간섭하는 이들이 있었다. ‘아, 저런 모습은 차라리 드리지 않음보다 더 못한 행동이다. 오히려 주의 종을 힘들게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목사님께 무엇을 드린 후로는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시든 절대 간섭하지 않았다.

그런 내게 한차례 고비가 왔다. 다름 아니라 그렇게 섬기던 목사님으로 인해 시험에 든 것이다. 1983년 어느 날 교회에서 결혼식이 열렸다.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들의 차림을 보면 혼주의 수준과 형편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우리 교회 성도들의 평소 차림새로는 도무지 혼주의 면도 서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라. 질질 끌리는 플라스틱 슬리퍼에, 알록달록 월남치마가 과연 결혼식에 어울리겠는가. 그날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열심히 단장했다. 일부러 미장원에 가서 올림머리도 하고 화장도 곱게 하고 최대한 멋 부린 차림새로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였다. 결혼식 다음 날인 주일, 설교 중에 목사님의 말씀이 예사롭지 않았다.

“결혼식에, 자기가 신부도 아니면서 신부처럼 머리에 힘을 주고, 옷을 빼입고….” 누구라고 지칭은 하지 않지만 분명 나를 콕 집어하시는 말씀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고 목덜미로 식은땀이 났다. 그런데 한 번이 아니었다. 목사님은 또다시 강조해서 같은 말씀을 반복했다. 짧은 순간 별별 생각이 오고 갔다.

‘목사님, 너무하세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목사님이 어떻게 저한테 이러실 수 있어요. 그거 제 이야기잖아요. 제가 왜 그랬는지도 모르시면서. 그렇게 두 번이나 강조하시지 않아도 다 알아들었어요. 아, 이 교회는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어디로 갈까. 장로교로 가볼까, 침례교로 가볼까. 삼천포에 이 교회 말고 교회가 없겠어?’

그렇게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데, 순간 어머니께서 들려주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도적을 피하려다 강도를 만난다.” 그랬다. 내가 지금 이 순간 마음이 상해 교회를 옮기면 다른 곳에서도 이런 일을 또 만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그때마다 교회를 옮기면 나는 결국 교회 옮겨 다니는 사람으로 남지 않겠는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예배가 끝난 후, 곧장 목사님께 달려가 인사를 드렸다.

“할렐루야, 목사님. 오늘 말씀에 정말 은혜받았습니다.”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공손히 인사까지 하자 목사님의 얼굴이 벌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마음은 가라앉지 않고, 은혜는커녕 시험만 잔뜩 들었지만 빨리 추슬러야 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무리 잊으려 해도 목사님 말씀이 머리에서 맴돌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목사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맛있는 음식이며 과일 같은 것을 들고 더 열심히 찾아뵀다. 목사님은 내게 미안하셨던지 처음에는 얼굴도 내비치지 않으셨다. 하지만 그런 날이 계속 이어지자, 어느 순간 목사님과 관계가 예전처럼 회복됐었다. 아마도 내가 그 말씀을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그렇게 신앙생활에 찾아온 시험에 거뜬히 합격했다. 주의 종으로 인한 그 시험을 통과한 후, 더욱더 목사님을 섬기는 일에 힘을 다했다. 신명기 28장의 축복을 다 받아 누리고 싶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대로 신앙생활 하기 위해 애썼고, 해가 거듭될수록 하나님은 육적인 복을 넘치도록 부어 주셨다.

88년 어느 날, 목사님께서 지나치는 말로 한마디 하셨다. “이 집사, 이제 복 좀 그만 받으소!” 목사님 말씀은 예언의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고 믿던 나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10여분을 따라 다니며 애원했다. “목사님, 그 말씀은 제발 취소해 주세요.” 그랬더니 목사님께서 한 말씀 하셨다. “그럼, 이제 무슨 복 받고 싶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저희는 육적인 복이란 복은 다 받았습니다. 이제 영적인 복을 받고 싶습니다.” 그러자 목사님께서 대수롭지 않게 한 마디 툭 던지셨다. “그러면 이제 영적인 복 받으소!” 그다지 진중한 말씀은 아니었지만, 그 말씀도 ‘아멘’으로 받았다. 그리고 머잖아 우리 가정에 영적인 복을 허락하시려는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됐다.

▒ 순복음진주초대교회 ‘아바드리더시스템’은
어떻게 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대적과 대신 싸워 주실까


우리 앞에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이 있다면 그 계단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방법은 없다. 첫 번째 계단부터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것이다. 한꺼번에 여러 계단을 성급히 오르려다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면 어쩔 수 없이 처음부터 다시 올라야 한다.

우리 신앙 여정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천국에 이를 그날까지 한 계단 한 계단 끊임없이 전진해야 한다. 이런 신앙 여정을 방해하는 존재가 있다. 신앙생활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악한 영들과의 전쟁이다.(엡 6:12) 그러므로 우리 힘으로는 절대 싸워 이길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출애굽 후 광야 길을 걷던 이스라엘 백성은 르비딤에서 호전적인 아말렉 군과 싸워야 하는 어려움을 만난다.(출 17:8)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아말렉 군과 전쟁을 하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의 신앙생활이 대적 아말렉, 곧 마귀와의 영적 전쟁임을 교훈하시기 위함이다.

이때 하나님은 ‘여호와’라는 자신의 이름으로 우리의 대적 아말렉과 대대로 싸워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출 17:16) 하지만 하나님은 여호와, 곧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 약속은 하나님이 정하신 언약대로 행할 때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그 언약은 무엇일까. 어떻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대적과 대신 싸워 주심으로 승리할 수 있을까.

첫째, 강한 기도를 할 때 우리를 대신해 싸워 주신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출 17:10~11) 모세가 손을 들어 기도했을 때, 즉 강한 기도를 했을 때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승리했다. ‘강한 기도’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부르짖어 간구하는 기도다.

둘째,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를 대신해 싸워 주신다. “네가 그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내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출 23:22) 오늘날 우리 신앙생활의 대적은 사단 곧 마귀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마귀에게 원수가 돼 주시고 대적이 돼 주신다.

셋째, 찬양할 때 우리를 대신해 싸워 주신다.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저희가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 죽였더라 유다 사람이 들 망대에 이르러 그 무리를 본즉 땅에 엎드러진 시체들뿐이요 한 사람도 피한 자가 없는지라.”(대하 20:22~24)

모압과 암몬 족속이 남유다를 치러왔을 때 유다 왕 여호사밧은 백성에게 금식을 공포하고 여호와께 간구한다. 여호사밧 왕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선지자의 말을 신뢰했다.(대하 20:15) 이에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예복을 입히고 군대에 앞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한다.

노래와 찬송이 시작되자 여호와께서는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온 암몬과 모압 자손이 세일산 거민을 쳐서 진멸하게 하신다. 그 후에 저희가 피차에 살육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그 전쟁을 남유다의 승리로 이끄신다.

전쟁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행할 때 모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꼭 기억하자.

이경은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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