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우 칼럼] 유승준의 삶, 스티브 유의 삶

국민일보

[이흥우 칼럼] 유승준의 삶, 스티브 유의 삶

입력 2019-11-20 04:01

군에 가기 싫어 미국적 택한 가수 유승준, 군 기피 풍조 그만의 문제 아냐

병역 의무 이행에 따른 보상 받지는 못할 망정 불이익이라 생각하면 자발적으로 입대할 사람 없어


지난주 서울고등법원은 가수 유승준에 대한 정부의 비자 발급 거부는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정부의 비자 발급 거부가 적법했다는 하급심 판단이 대법원에서 뒤집히면서 내려진 파기 환송 판결이다. 유승준은 유승준을 포기하고 스티브 유의 삶을 선택했다. 군에 가기 싫어서.

검은 머리 외국인이 되기로 한 그는 저울질했을 것이다. 욕은 좀 먹겠지만 미국적을 택해도 한국에서 가수생활 하는 데 별 지장은 없을 거라고. 그리고 자신의 결정이 이렇게까지 한국 사회에 파장을 몰고 올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는 병역을 이행함으로써 포기해야 할 수입의 손실을 감내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기회비용으로 따지면 족히 수십억원에 달하지 않을까 싶다. 십수억원을 주고라도 병역을 대신하는 길이 있었다면 그는 기끼어 그 길을 택했을 거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의 라이프사이클은 일반인과 다르다. 예외도 있으나 나이에 비례해 수입이 느는 대개의 월급쟁이와 달리 20대 때가 최전성기다. 아이돌 가수, 프로 스포츠 선수가 그렇다. 병역을 이행하는 시기와 겹친다. 이들에게 병역이 신성한 의무일 리 없다.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족쇄일 뿐이다. 사실상 20대에 인생의 모든 게 결정되니 없는 병을 만들어서라도 군에 안 가려고 기를 쓴다.

손흥민은 주급 14만 파운드(약 2억원)를 받는다. 류현진의 연봉은 1790만 달러(약 207억원)다. 손흥민과 류현진이 아시안게임,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기에 망정이지 군 미필자 신분이었으면 마음 편히 선수생활을 지속하기는 어려웠을 테다. 설사 병역 혜택을 못 받았더라도 이들이 군에 가는 게 국가적으로 득인지 생각해볼 문제다.

요즘 ‘아미’들 사이에 BTS 병역 문제가 관심사라고 한다. 이들도 한국인인 이상 언젠간 군에 가야 한다. 이들에겐 병역특례제도가 그림의 떡이다. 국위를 선양한 사람 등에게 병역 혜택을 주는 병역특례제도는 1973년 처음 도입됐다. 예술인과 체육인이 대상이다. 운동선수의 경우 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 유니버시아드대회, 아시아선수권대회 3위 이상 입상자는 물론 심지어 한국체대 졸업 성적 상위 10% 이내 학생에게도 특례를 인정했다.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여론에 따라 조정을 거쳐 지난 90년부터 현행 규정대로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 입상자로 대상이 축소됐다.

그러나 예외 없는 법칙은 없는 법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사상 처음 16강에 진출하자 월드컵 16강 이상도 병역특례 대상이 됐고, 2006년 야구 대표팀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에 진출하자 WBC 4위 이상도 군에 가지 않게 됐다(이 조항은 타 종목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2007년 삭제됐다). 바둑의 조치훈은 규정이 없는데도 80년 병역을 면제 받았다. 같은 시기 일본 기원에서 활약한 조훈현에게도 병역 혜택을 줘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지만 조훈현은 그러지 못했다.

예술 분야의 경우 국제예술경연대회 2위 이내, 국악 등 국제대회가 없는 분야의 국내 예술경연대회 1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분야에서 5년 이상 국가무형문화재 전수교육을 받은 자에게 병역 특례를 인정한다. 아미들의 불만은 ‘클래식, 국악은 되는데 왜 BTS는 안 되느냐’로 모아진다. 국위선양으로 따지면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한 BTS가 손흥민이나 류현진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데 이들에게 병역의무를 지우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누가 BTS 같은 세계적 그룹이 나올 줄 예상했겠나. 이제라도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대중 연예인에게도 병역 특례를 인정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모병제를 채택하면 불필요한 논란이다.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이나 지금은 시기상조라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누구든지 병역의무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는다고 쓰여 있다.

과연 그런가. 사회에는 ‘군에 간 사람만 손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나와 똑같은데 군에 안 간 사람이 주변에 의외로 많아서다. 병역의무를 이행한 데 대해 보상을 받진 못할 망정 불이익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자발적으로 입대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나마 있던 군 가산점제도는 위헌 결정으로 없어졌다. 군 가산점제가 공정경쟁 원칙에 위배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하다못해 군복무 기간만큼 정년을 연장하는 등 최소한의 유인책은 있어야 한다. 대체복무 영역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하겠지만 BTS나 프로 스포츠 선수처럼 20대에 병역의무 이행이 쉽지 않은 사람은 적절한 시기에 대체복무 등의 방법으로 국방의 의무를 지우는 방안도 논의해볼 가치가 있다. 국방의 개념 확대가 필요하다. 입대해서 총을 드는 것만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는 소극적, 전통적 사고 틀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논설위원 hwlee@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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