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1월 22일] 예수님을 따르는 자세

국민일보

[가정예배 365-11월 22일] 예수님을 따르는 자세

입력 2019-11-22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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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십자가를 질 수 있나’ 461장(통 519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요한복음 18장 15~18절


말씀 : 예수님 당시의 랍비와 제자 사이의 관계는 우리 시대보다도 더 긴밀했습니다. 사제 간의 가르침이 교실이라든가, 어떤 준비된 교육 환경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생활하면서 삶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거의 운명 공동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예고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장담하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서로 신뢰하는 관계였고, 애정이 있는 관계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새벽 시간에 느닷없이 예수님의 대적들이 들이닥쳤을 때 제자들의 민낯이 드러납니다. 앞다퉈 도망하여 그들의 목숨을 부지하려 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예수를 따랐던 제자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예외라고 외쳤던 베드로입니다. 그는 주님이 스스로 잡혀가실 때 어디에 있었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니까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요 18:15)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래도 다른 제자들과 달리 의리를 지킨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마태복음에는 이 장면을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마 26:58)라고 묘사합니다. 그는 두려움을 숨기며 가까스로 따라온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의 안위가 궁금했고 걱정이 되었지만 그보다 더 자신의 안전을 확보한 모습입니다. 애써 그의 두려움을 억누르고 용기를 냈지만 대제사장의 집 문을 지키고 있던 여종의 질문에 그 현실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눈썰미 좋은 여종이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고 할 때 그는 ‘나는 아니라’고 답합니다.

죽기까지 예수를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그는 첫 번째 관문에서 넘어졌습니다.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인 것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까. 그의 예수를 따르는 자세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예수님과 가까이 붙어서 늘 동행했지만 지금 위기 앞에서는 예수를 따르되 멀찍이 따르고 있습니다. 자신의 정체를 확인하려는 질문에 단칼에 예수님과의 관계까지 부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를 따를 때의 자세는 어때야 합니까.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까. 예수를 부인해도 현장에만 있으면 봐줄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를 따르되 ‘동행’하는 자세여야 합니다. 내 분량의 십자가는 내가 지겠다는 ‘결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동안 주님이 나를 위해 베푸신 것에 비하면 나의 헌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각’도 필요합니다. 주님과 함께 복을 받았으면 고난도 함께 당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리’가 있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되 늘 ‘안전거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의 헌신의 한계는 여기까지이니 더 많은 것을 요구하지 말라며 방어막을 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열심을 내다가도 작은 문제만 있으면 뒷걸음치는 분들도 있습니다. 주님은 무리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제자를 원하십니다. 멀찍이 따라오는 자가 아니라 동행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내가 스스로 친 한계를 뛰어넘어 주께로 더 가까이 나가는 믿음의 가족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 : 주님을 따르겠노라 결단했지만 늘 성장하지 못하는 모습임을 인정합니다. 내 힘으로 해보려 했지만 늘 실패하는 모습임을 자인합니다. 성령님께서 도와주셔서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헌신과 결단, 성장이 있는 신앙이 되도록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이성준 목사(인천 수정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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