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웜비어 부모처럼 北에 법적 대응을

국민일보

[김진홍 칼럼] 웜비어 부모처럼 北에 법적 대응을

입력 2019-11-25 04:01

아들 살해한 북한 정권 상대로 5억 달러 배상 판결 받고 북한 화물선 소유권 확보
금강산 남측 시설물 철거하면 해외의 북한 자산들을 압류·매각하겠다고 명확하게 밝혔으면
북한이 억류 중인 한국인 6명은 무사귀환할 수 있을까


2년5개월여 전, 세계는 오토 웜비어군 사망 사건으로 경악했다. 개요는 이렇다. 미국 버지니아 대학 경영학부 3학년 학생이던 그는 2015년 말 중국을 기반으로 한 관광회사가 주최한 5일간의 새해맞이 북한 관광에 참여했다가 억류됐다. 체제 선전물을 훔쳤다는 이유로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2017년 6월 식물인간 상태로 들것에 실려 미국으로 송환됐으나 6일 후에 숨을 거뒀다. 북한은 웜비어군이 미 CIA와 간접적으로 연루돼 있다거나, 식중독의 일종인 보툴리누스 중독 상태에서 수면제를 복용한 탓이라고 주장했으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하나도 없었다. 미 의료진은 전기충격, 물고문, 치아꺾기 등으로 인해 뇌조직이 심각하게 손상돼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밝혔다. 당시 23살의 웜비어군은 북한 정권의 잔혹성을 새삼 일깨워준 채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의 부모는 아들의 죽음을 헛되이 해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일어섰다. ‘북한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북한의 본질을 알려야겠다’고 마음 먹고 각 국에서 열리는 북한 인권관련 집회나 행사에 참석하는 등 실천에 옮기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 22일 한국을 찾았다. “북한 정권의 인권유린을 방치해선 안 된다”는 그들의 외침은 비장했다.

동시에 응징 방법이 주목됐다. 요약하면 법적 대응이다. 북한을 상대로 아들을 살해한 책임을 묻기 위해 미 정부와 의회를 설득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받게 하고, 이를 근거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해 워싱턴 DC 연방지방법원으로부터 5억113만 달러의 배상 판결을 받았으며, 결국 미국 정부가 압류한 북한 선박 와이즈 어니스트호의 소유권을 인정받기에 이른 것이다. 와이즈 어니스트호 매각대금을 받으면 웜비어재단을 설립해 납북 피해자들을 돕겠다는 구상이다. 부부는 이 외에도 북한이 독일과 폴란드 등에서 운영 중인 호스텔 폐쇄를 해당 국가에 요구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 산재돼 있는 북한 정권의 돈줄을 틀어막겠다는 것이다. 법을 통해 아들을 살해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하겠다는 결기가 느껴진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의 남측 관광시설물을 ‘싹 쓸어버리겠다’고 발언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일방적으로 철거하겠다는 ‘최후 통첩’까지 보냈다. 남측이 제안한 실무회담, 공동점검단 방북에는 묵묵부답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유엔의 대북 제재 대상이 아닌 개별관광 등을 모색하고 있다. 북한을 다독여 자세 변화를 유도하려는 의도다. 북한이 호응하면 다행이지만, 현재로선 가능성이 희박하다. 체면만 구길 소지가 크다.

그래서 웜비어 부모의 방식에 눈길이 간다. 북한이 남측 시설을 일방적으로 철거하면 국제법을 이용해 해외의 북한 자산을 압류하거나 동결한 뒤 매각하는 법적 대응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정부가 분명히 밝히자는 뜻이다. 그래야 북한의 오판을 막고, 건전한 남북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김정은 정권의 심기 살피기에 급급해선 잘못된 행동을 바로 잡을 수 없다.

아울러 북한에 억류돼 있는 한국인들의 무사 귀환에도 적극적이길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은 웜비어군 사망 즈음한 시기에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억류 중인 우리 국민과 미국 시민을 가족에게 돌려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에게 직접 한국인 억류자 6명의 송환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해 5월 한국계 미국인 억류자 3명이 미국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미·북 간 물밑 협상의 결과다. 반면 한국인들은 여전히 억류 상태다.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전혀 모른다. 정부는 말로만 ‘보내 달라’고 할 게 아니라 미국 정부처럼 송환을 위해 다각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정부가 극도의 공포 속에 빠져 있는 자국민들을 방기한다는 느낌을 주면 되겠는가.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 해결도 신경 써야 한다. 북핵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거론한다는 입장이나 가족들 속은 지금도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북한 주민 인권도 마찬가지다. 북한 정권의 인권 탄압은 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이다. 그만큼 만성적이고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정부는 너무 관대하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북한의 인권 침해를 비판하고 즉각적인 개선을 촉구하는 북한인권결의안이 유엔 총회 산하 제3위원회(인권담당)에서 채택됐을 때 우리나라는 11년 만에 공동제안국에 불참하기도 했다. 주유엔 한국대표부는 “북한 주민의 실질적인 인권 증진을 위해 노력한다는 기본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미덥지 못하다. 조국 사태 와중에도 인권을 강조한 문재인정부이지만, 북한 주민 인권은 외면하는 모양새다. 자유를 갈망하는 북한 주민들이 절망감과 배신감을 갖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폐쇄국가이지만, 남측 정부를 지켜보는 북한 주민들이 적지 않다.

편집인 jhkim@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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