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조혜련 (10) “언니, 날 위해 기도는 고맙지만 난 하나님 믿지 않아”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조혜련 (10) “언니, 날 위해 기도는 고맙지만 난 하나님 믿지 않아”

한국에서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다 오랜만에 밴쿠버에서 만난 성미 언니 매일 중보기도 드렸다고 고백

입력 2019-11-2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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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련 집사(오른쪽)가 자신을 위해 중보기도를 해준 이성미씨와 재밌는 표정을 짓고 있다.

나는 개그우먼 이성미 언니랑 개인적으로 아주 친하게 지냈다. 언니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이야기도 잘 들어주는 편한 존재였다. 우리는 집도 가까워서 자주 만나 밥을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언니와 나는 종교가 달랐다. 성미 언니는 교회를 다녔고 나는 일본 불교를 믿고 있었다. 성미 언니는 예수를 믿지 않는 나를 안타까워했다. 몇 번이나 교회에 같이 가자고 권유했다. 그때마다 나는 황소고집으로 내 종교를 지키며 거부했다.

성미 언니는 욕쟁이였다. 말끝마다 욕을 붙여서 말했다. 어릴 때부터 엄마 없이 혼자 외롭고 힘들게 자란 언니가 쓴 뿌리들을 입으로라도 풀다 보니 입버릇처럼 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친하게 지내던 성미 언니가 2002년 방송 활동을 접고 아이들과 함께 캐나다 밴쿠버로 훌쩍 떠나버렸다. 언니가 떠날 때 참 많이도 울었던 것 같다. 이제 나한테 구수하게 욕해줄 언니도, 날 챙겨줄 사람도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쪽이 너무나 허전하게 느껴졌다.

성미 언니가 떠나고 4년이 지났을 무렵 언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밴쿠버로 찾아갔다. 한참 일본 활동을 시작하고 몸도 마음도 모두 힘들었을 때였다. 현실에서 괴로워했던 내가 답을 얻을 수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언니에게 털어놓으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밴쿠버에서 오랜만에 성미 언니를 만난 나는 깜짝 놀랐다. 한국에서 봤던 욕쟁이 언니랑 달라도 너무 달랐다. 욕하는 모습은 아예 찾아볼 수도 없었고 얼굴은 마치 매일 오일로 마사지를 해서 번들번들한 것처럼 광채가 났다. 무언지 모르게 편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언니는 밴쿠버에서 믿음 생활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했다. 매일 새벽기도를 나가고 성경을 읽으며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됐다고 했다. 욕을 붙여서 말하던 언니의 입도 하나님이 개입해서 싹 고쳤다고 고백했다.

그날 밤에 언니가 나에게 이상한 고백을 했다. “나 사실 너한테 할 말이 있어. 내가 매일 새벽기도를 나가는데 네 이름을 하나님께 이야기해. 혜련이가 하나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언니가 중보기도를 하는 사람들 목록 중에 6번이 김용만, 7번이 조혜련이라고 했다.

누군가를 위해 한 번 중보기도를 하기도 쉽지 않은데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4년을 그것도 새벽에 기도해 온 것은 정말 대단한 마음이다. 그날 밤 나는 성미 언니한테 편지를 썼다. ‘언니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는 건 고맙지만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아. 미안한데 내 이름은 빼줘. 나는 내 종교 활동 열심히 할 테니까.’

7년 뒤 성미 언니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밴쿠버가 너무 편하고 좋아서 돌아오기 싫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당시 한국에서는 연예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일어났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성미 언니에게 한국으로 돌아가서 외롭고 지친 연예인들을 연합시키라는 마음을 주셨다고 했다. 하나님의 그 음성을 듣고 언니는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와서 성벽을 재건하는 마음으로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와 ‘연예인 연합예배’ 공동체를 만들었다.

성미 언니가 한국에 돌아올 때쯤 나는 너무 힘든 상황이었다. 일도 하기 싫고 삶의 아무런 의욕이 없었다.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다. 가장 큰 원인은 일본에서 활동하며 느낀 자괴감과 두려움이었다. ‘인생은 무엇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일까’를 늘 고민하던 시기였다.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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