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림의 명화로 여는 성경 묵상]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신을 벗으라”

국민일보

[전창림의 명화로 여는 성경 묵상]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신을 벗으라”

도메니코 페티의 ‘불타는 떨기나무와 모세’

입력 2019-11-29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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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유채, 168x112㎝,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박물관 소장

모세는 히브리인이었으나 이집트 왕궁에서 공주의 양자가 돼 왕자 신분으로 자랐다. 모세의 탄생은 신약의 크리스마스, 즉 예수의 탄생과 관련이 있다. 아브라함의 아들 야곱이 열두 아들을 얻어 각각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된 후, 야곱이 편애하던 요셉은 형제들의 질투로 이집트로 팔려갔으나 하나님의 인도로 이집트의 총리가 됐다.(창 37)

온 세상이 기근으로 어려울 때, 요셉의 현명한 치세로 식량이 풍족한 이집트로 요셉의 식구들이 이주해 고센 땅에 살게 됐다.(창 47) 이집트의 왕이 바뀌어 요셉의 치적을 잊고 이집트는 히브리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히브리인들이 건강한 아이를 많이 낳아 민족의 숫자가 커지자 이집트 바로왕은 히브리 여인이 애를 낳을 때 딸이면 살려 두지만, 아들이면 죽이라는 칙령까지 내렸다.(출 1)

이 이야기는 신약에서 예수 탄생과 비슷하다. 예수가 탄생하자 동방의 박사들이 예루살렘의 새 왕이 탄생했다고 경배드리러 오자 당시 예루살렘을 다스리던 헤롯왕이 그 무렵 태어난 아들을 모두 죽이라고 해서 예수의 가족들이 이집트로 피신했다.(마 2)

모든 아들을 죽이라는 유아학살은 구약의 모세와 신약의 예수에서 대칭을 이룬다. 모세는 유아학살 중에 태어나 죽을 운명이었으나 그 어머니가 몰래 바구니에 담아 나일강으로 흘려보냈고 그 바구니는 이집트 공주의 눈에 띄어 이집트 왕자의 신분으로 자랐다. 어느 날 모세는 자기 동족인 히브리인이 이집트인 관원에게 매를 맞는 것을 보고 격분해 이집트인을 죽인 뒤 미디안 광야로 도망했다. 모세는 그곳 제사장의 사위가 돼 양을 치며 40년을 살았다. 어느 날 호렙산에 간 모세는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것을 봤는데, 이상하게도 나무가 타지 않았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

그림을 보면, 모세가 앉아서 신을 벗고 있다. 그의 옆에 양 한 마리가 앉아서 쉬고 있다. 그런데 오른쪽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 있다. 불은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의미하는 데, 그림 전체 화면에 생명을 불어넣는 효과를 자아낸다. 모세는 40년 전 자기 뜻으로, 자신의 힘으로 동족의 지도자인 양 행동했던 상처가 있다.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교육은 자신을 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40년이 흐른 뒤 모세 앞에 나타나신 하나님이 처음 하신 말씀은 “일하러 가라”가 아니고 “네 신을 벗어라”이다.

신을 벗는다는 것은 자신을 버리고 자기가 가진 모든 권리를 포기한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지금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의 자아를 부인하고서야 하나님께로 갈 수 있다고 하셨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너도나도 앞에 나서기만 한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승리, 경쟁, 부흥, 리더십 같은 세속의 논리를 강조한다. 누구도 자기를 부인하거나 가진 힘이나 재물을 버리려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한 나라의 왕자였던 능력자를 그대로 쓰지 않으시고, 40년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훈련하셨다. 민족을 이끌 대업을 맡기시는 순간에 내리신 첫 명령은 ‘신을 벗으라’는 말씀이셨다. 버리면 그제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세상을 얻을 수 있을 텐데 버릴 줄을 모른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도메니코 페티(Domenico Fetti, 1589~1623)=이탈리아의 화가로 고향 만토바에서 곤차가 가문의 궁정화가로 재직하면서 명성을 쌓아 만토바를 대표하는 화가가 됐다. 만토바는 예술의 도시답게 많은 화가가 여행길에 잠시 머무르는 곳으로 유명했는데,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벤스도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곤차가 가문과 친분이 있었던 루벤스는 자연스럽게 도메니코 페티와도 친분을 쌓았다. 페티의 풍성한 색채감을 자아내는 붓터치는 루벤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미술사는 기록하고 있다. 페티는 말년에 만토바를 떠나 베네치아로 옮겨와 베로네세, 틴토레토와 같은 베네치아파 화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색상이야말로 회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깨달았다. 끊임없이 연구하는 예술가였던 페티는, 마치 구도자와 같은 자세로 성경의 여러 장면을 화폭에 담아내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가르침을 전파했다.

전창림<홍익대 바이오화학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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