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초대교회 꽃 피웠던 골목길에서 ‘초심’ 다잡다

국민일보

한국 초대교회 꽃 피웠던 골목길에서 ‘초심’ 다잡다

최석호 소장 따라 나선 ‘역사 산책’… 길을 만나다

입력 2019-11-29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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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호 한국레저경영연구소장이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돈의문 박물관 마을에서 교회의 골목길 순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송지수 인턴기자

걸으면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골목길을 찾아 나선다. 서울의 한양 도성 안팎과 인천 광주 부산 목포 순천 등 개항도시들을 발로 답사한 후 책을 썼다. 모두 근대 초기 서양 선교사들이 선교부를 설치해 한국 초대교회의 꽃을 피웠던 도시들이다. 한국에서 전공한 이가 드문 여가경영학의 창시자이자 성결교 군목 출신인 최석호(55) 한국레저경영연구소장은 교회에서 성도들과 같이 이런 길을 찾아 나서자고 제안한다. 최 소장은 “전도의 문이 막혀버린 한국교회가 초심을 되찾는다는 의미로 골목길 순례를 통해 초대교회의 순수했던 신앙의 흔적을 찾아보는 일을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신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이기도 한 최 소장을 지난 19일 서울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에서 만났다. 작은 배낭에 운동화 차림으로 나선 최 소장이 출구 옆 4·19혁명기념도서관으로 이끌었다. 최 소장이 “이 도서관은 3·15 부정선거의 부통령 당선자인 이기붕의 자택 자리에 세워졌다”고 설명했다. 서울 남산 일제의 조선 신궁이 있던 자리에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의사기념관이 들어선 것처럼 터의 쓰임새를 정반대로 바꿔 역사의 물줄기를 환원한 장소이다. 도서관을 나온 최 소장이 언덕 위 돈의문 자리에 올라 설명을 이어갔다.

“서울도시건축센터가 들어선 돈의문 박물관 마을 입구 건물은 해방 직전 유한양행 사옥이었습니다. 유한양행은 기독교인인 유일한 박사가 우리나라 최초로 종업원 지주제를 시행한 기업입니다. 주식을 발행해 종업원에게 나누어 주고 종업원을 주인 되게 만든 회사입니다. 방금 지나온 경교장에서 김구 주석을 수행했던 장준하 박사가 광복군 소속으로 미군 전략사무국(OSS)의 공수부대 낙하산 침투훈련을 받았다면, 유 박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잠수함으로 한반도 수중 침투훈련을 받은 대원이었습니다. 이들이 일제 패망 이전 하늘과 바다에서 작전에 성공했다면 전쟁의 승자가 미군이 아닌 한·미 연합군이 됐을 것이고 분단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습니다.”

최 소장은 원래 부흥사를 꿈꿨다. 신학대와 신학대학원에 다니며 성령 운동에서 출발한 성결교단의 군목이 되어 공부하던 도중 진로를 레저관광사회학으로 틀었다. 고려대에서 영화, TV 드라마, 스포츠, 대중음악, 관광 등 5개 분야의 한국 여가 100년사를 집대성하는 박사 논문을 써 학위를 받았고 또다시 영국 노팅엄트렌드대에 유학을 가 유산 관광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지난해 ‘골목길 역사산책’ 서울편과 개항도시편 등 두 권의 책을 동시에 내면서 “나를 찾아 역사를 걷자”고 외치고 있다.

“서양이 그랬습니다. 경제가 일정 단계로 올라서고 해외여행도 지겨워 지면, 사람들이 걷기를 시작합니다. 걷기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산이나 들을 걷는 트레킹이 있고 그다음이 골목길 순례입니다. 도시의 골목길을 걷는다는 건 결국 나와 내가 속한 문화에 대한 재발견입니다. 우리나라에 이제 그때가 온 것입니다.”

이런 그가 아끼는 곳이 서촌이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거치며 왜와 청에게 처절하게 짓밟혔던 한반도에서 다시 조선이 문화의 중심이 되자는 조선중화의 꿈을 당시 서촌에 살던 삼연 김창흡과 노가재 김창업 등이 주창했다. 겸재 정선과 사천 이병연이 이들의 제자가 되어 진경산수화를 그리고 진경시를 썼다. 아름다운 우리 산하를 직접 걷고 순례한 뒤 예술로 발현하는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종로구립 박노수 미술관 전경.

서촌에서도 최 소장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장소는 박노수 미술관이다. 구한말 고종의 비서실장격이던 친일파 윤덕영이 나라를 판 대가로 일왕에게 거액의 은사금을 받고 조선중화의 산실인 서촌 일대에 아방궁을 건설한다. 그의 딸과 사위를 위해 지어진 집이 지금의 박노수 미술관으로 남은 2층 가옥이다. 남정 박노수 화백은 조선 도화서의 맥을 잇는 대가로 서울대 미대 교수를 역임하며 이 집을 사서 작품 활동을 했고 사후 자신의 작품과 유물 1000여 점을 사회에 무상으로 기증했다. 최 소장은 “친일의 역사가 담긴 터를 다시 조선 문화의 맥이 흐르는 곳으로 환원한 것”이라고 말했다.

청전 이상범 화백의 가옥.

이날 걷기는 구세군영천영문교회, 황학정, 서촌의 홍건익 가옥, 청전 이상범 화백의 누하동천, 박노수 미술관에 이어 체부동 생활문화센터에서 마무리됐다. 체부동 생활문화센터는 옛 체부동성결교회 건물을 서울시가 인수해 주민시설로 단장한 곳이다. 붉은 벽돌의 근대식 예배당과 전통 한옥의 사택이 그림 같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예배당은 영국식 프랑스식 한국식 벽돌쌓기를 고루 발견할 수 있고, 근대 교회의 표상과도 같은 남녀유별 두 개의 똑같은 출입문 흔적이 남아있다. 최 소장은 르네상스를 이야기하면서 골목길 순례를 마무리했다.

“서양의 문예 부흥은 그리스 문명을 재조명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문명의 기원과 원류를 되돌아본 것이죠. 한국교회도 위기를 극복하려면 원점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서울 정동과 인천 순천 목포 전주 평양 소래 등등 선교사들의 선교부가 있었고 한국의 초대교회들이 있던 곳에서 신앙 선조들에 대한 재발견과 재각성이 있어야 한국교회의 새 출발도 가능할 것입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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