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조정민] 적폐의 덫에 빠지다

국민일보

[바이블시론-조정민] 적폐의 덫에 빠지다

입력 2019-11-29 04:02

가정이 망하는 지름길이 있습니다. 부부가 매일같이 싸우는 길입니다. 서로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가정을 이루고 나서 함께 하는 일이 날마다 다투는 일이 전부라면 그 가정이 무너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길입니다. 회사는 어떻고 국가는 어떻습니까? 밖에서 몰아치는 먹장구름을 외면한 채 날마다 서로를 비방하고 다투고 싸우는 일로 날을 지샌다면 무슨 일이 있을지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부모가 다투면 자녀들은 갈 곳이 없고, 여야가 정쟁에 휘말려 생사를 걸고 싸우면 국민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싸웁니까? 싸움은 어디서 시작된 일입니까? 잘잘못을 가리는 데서 시작된 일입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다가 시작된 일입니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것을 주장하고 고집하고 입증하다가 생긴 일입니다. 그 일에 갖다 붙인 명칭이 ‘과거청산’이고 ‘적폐청산’입니다. 힘 없을 때 힘 있는 자들에게 당한 일을 힘이 생기면서 되갚자고 시작하는 일이 바로 그런 일입니다. 어디까지 거슬러올라갑니까? 5년, 10년이 아닙니다. 20년, 30년도 부족합니다. 100년 전쟁을 치러도 분을 가라앉히기가 쉽지 않습니다.

과거청산, 적폐청산의 명분은 강력한 회오리바람과 같습니다. 누구도 이 바람에 맞서지 못합니다. 누구도 이 바람을 멈추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바람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비록 단번에 나무 뿌리가 뽑히고 멀쩡한 집 지붕이 날아가고 심지어 차들이 나뒹굴어 순식간에 폐허를 만들지만, 광풍과 같은 회오리바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입니다.

역사에 회오리바람이 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를 아무리 바로잡으려 해도 현재의 역사는 과거의 역사를 바로잡을 수 없습니다. 과거의 역사가 바로잡히기보다는 현재의 역사가 폐허로 변할 뿐입니다.

그러면 과거사 청산은 불가능한 일입니까? 아닙니다. 가능합니다. 그러나 오직 한 길이 있을 뿐입니다. 과거사의 주역들이 저지른 비리를 되풀이하지 않는 길입니다. 과거사의 주역들이 철옹성처럼 틀어쥐었던 기득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길입니다. 역사에 대한 복수는 역사를 뒤엎는 일이 아니라 역사와 화해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대한 복수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과거사의 인물들을 용서하되 과거사의 제도들을 개혁하는 것입니다. 사람과 싸우는 대신 정책과 싸우는 것입니다.

현 정권이 출범과 동시에 기치를 올렸던 적폐청산의 동력이 힘을 잃고 있습니다. 주된 이유는 스스로 적폐의 덫에 빠진 까닭입니다. 그야말로 적폐를 들추어내는 사람들이 적폐의 프레임에 고스란히 갇힌 것입니다. 국민 다수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적폐청산이란 자신의 들보는 감추고 남의 티를 빼겠다고 달려든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더구나 국가권력과 재정의 사유화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감춰지는 부정과 비리는 없습니다. 문제는 이 어둠의 자락을 깔고서는 적폐의 프레임을 더 이상 작동시킬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적폐의 덫에 빠진 자들을 향한 새로운 사자성어가 등장했습니다. ‘내로남불’입니다. 비웃고 지나칠 얘기가 아닙니다. 어느 누가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성경은 내로남불 세력을 율법주의자라고 지칭합니다. 예수님은 그들 눈에서 비늘을 벗겨주셨습니다. 적폐를 외치다가 적폐세력이 된 종교인들을 절도요 강도라고 일러주시고 경각심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내로남불의 길이 넓은 길, 편한 길이지만 죽음의 길, 파멸의 길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시고 내 안의 적폐를 먼저 청산하는 좁은 길, 험한 길이 생명의 길, 소성의 길이라는 것을 가리켜주셨습니다. 더 심각한 얘기를 덧붙이십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조정민 베이직교회 목사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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