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오바마와 블레어의 경고

국민일보

[태원준 칼럼] 오바마와 블레어의 경고

입력 2019-11-29 04:02

미국 대선과 영국 총선 앞두고 급진적 정책·노선 나란히 비판
건조하고 흐릿해 보이지만 더 포용적인 중도적 시선 강조
‘선명함=편협함’ 돼버린 시대
우리도 진영 갈등서 탈피할 중도의 정치 언어 복원해야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며칠 전 한 포럼에서 이런 말을 했다. “세계 지도자들이 모이면 어느 나라 정치가 더 미쳐 돌아가는지 종종 얘기하곤 합니다. 지금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다들 미쳐 있지요. 내가 보기엔 그중에도 영국 정치가 단연코 가장 미쳤습니다.” 영국은 브렉시트를 놓고 몇 년째 우왕좌왕하고 있다. 총리를 갈아치워도 안 돼서 아예 총선을 다시 하게 됐다. 보수당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내년 1월 31일까지 무조건 브렉시트 완수를 공약했고,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는 매년 126조원씩 재정 지출이 늘어나는 대규모 복지 공약을 내놓았다.

블레어는 양쪽 주장을 모두 판타지라고 일축했다. 실현될 수 없고, 실현된다 해도 결코 좋은 일일 수 없다는 말이었다. 내년 1월 브렉시트는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경착륙하자는 말과 다르지 않으며, 126조원 복지 재정은 마련하기도 불가능하거니와 마련한다 해도 막대한 재정적자의 수렁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길이란 것이다. 그는 친정인 노동당을 이렇게 비판했다. “코빈 대표는 지금 혁명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혁명에서 주목할 점은 어떻게 시작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끝났느냐인데, 문제는 혁명이 언제나 나쁘게 끝난다는 것입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최근 공개석상에서 이런 말을 했다. “민주당 대선주자들이 순도 시험(purity test) 하듯이 진보 경쟁을 해선 안 됩니다. 그런 경쟁은 대중의 생각과 멀리 떨어진 것입니다. 평범한 미국인은 기존 체계의 완전한 해체를 원치 않습니다.” 버니 샌더스나 엘리자베스 워런 같은 후보들을 겨냥하고 있었다. 이들은 부유세 신설, 전면 무상교육, IT 공룡기업의 강제 분할, 증세 없는 전 국민 의료보험 등 급진적 공약을 앞다퉈 제시해 왔다. 20명 가까운 후보가 난립했지만 누구도 이렇다 할 지지를 얻지 못해서 진영의 힘에 기대려고 자꾸 왼쪽으로 가는 중이다.

오바마의 경고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스펙트럼의 오른쪽 끝에서 미치광이 짓을 한다고 민주당 후보가 왼쪽 끝으로 달려간다면 똑같은 미치광이가 될 수 있다는 뜻이었는데, 이 말을 이렇게 하지 않았다. “목표는 담대해야 하지만 그것은 현실에 뿌리를 둬야 합니다. 과감한 목소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은 더 과감하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는 복잡하고 모호해서 타협을 거부하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진보 운동가는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데서 역할이 끝나지만, 대통령 후보의 임무는 모든 계층에서 경쟁력을 가져 당선되는 것입니다.”

블레어와 오바마의 말은 다 같이 건조했다. 혁명적 변화를 부르짖는 사람 앞에서 혁명의 부작용을 얘기하고, 바꾸자는 말을 하면서 타협을 먼저 꺼내며, 실현 가능성과 현실의 문제와 대중의 생각을 앞세웠다. 이런 말은 색깔로 치면 무채색에 가깝고, 소금 간을 하지 않은 닭 가슴살처럼 퍽퍽하게 들린다.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아서 공자 말씀마냥 하나마나한 듯하지만, 이 사람들은 그래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블레어는 이런 언어로 역대 노동당 대표 중 유일하게 총선에서 3연승하며 10년간 영국 총리를 지냈다. 오바마는 이런 언어로 공화당에서 정권을 빼앗아 8년간 미국 대통령을 역임했고, 지금도 정치전문지에 ‘오바마를 기다리며’란 제목의 기사가 실릴 만큼 영향력을 갖고 있다.

두 사람은 진보 진영에 속하면서 중도 노선을 추구했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지금 존슨의 영국과 트럼프의 미국에선 블레어나 오바마가 사용했던 중도의 언어와 전혀 다른 정치적 언어가 통용되고 있다. 영국은 무조건 브렉시트를 하자는 진영과 무조건 복지를 확대하자는 진영의 극단적 주장이 맞서서 접점을 찾지 못한다. 의회주의 종주국이란 나라가 의회에서 문제를 풀지 못해 국민에게 되묻는 선거판을 벌여 놨다. 미국은 이익과 손해만 따지는 트럼프의 일방주의와 자국우선주의 탓에 세계 경제 질서와 오랜 동맹관계를 망치는 주범으로 전락했다. 이를 환호하는 쪽과 혐오하는 쪽이 극명하게 갈려 대통령 탄핵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트럼프와 샌더스, 존슨과 코빈의 주장은 아주 선명하다. 선명한 언어는 그것에 동의하는 사람에겐 더 강한 호소력을 갖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견딜 수 없는 거부감을 준다. 블레어와 오바마의 건조한 말은 경계가 흐릿해서 더 많은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 열렬한 지지를 얻어내진 못할지언정 폭넓은 수긍을 끌어내는 데 유리하다. 미국과 영국이 지금 겪고 있는 분열과 혼란은 이렇게 흐릿한 언어를 잃었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의 언어는 어떠한가. 보수와 진보의 진영으로 나뉘어 선명한 주장만 메아리 없이 되풀이한 지 너무 오래 됐다. 조국 사태의 진영 전쟁에서 선명함의 다른 말이 편협함임을 확인했고, 20대 국회가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경직된 주장의 충돌만 거듭하고 있다. 중도의 언어를 복원하지 못하면 아마 계속 그럴 것이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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