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흥호 총장의 성경과 선교] 성도는 죄의 길에서 벗어나 변화된 삶을 드러내야

국민일보

[정흥호 총장의 성경과 선교] 성도는 죄의 길에서 벗어나 변화된 삶을 드러내야

<30> 복음의 삶

입력 2019-11-29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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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외국인 학생 기수단이 2017년 10월 경기도 양평 캠퍼스에서 개최된 ‘ACTS 선교대회’에서 자국 국기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성경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를 구세주로 믿어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을 ‘성도들’, 즉 ‘거룩한 무리’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 ‘거룩하다’는 말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며 세상에서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첫째, 성경에서 ‘거룩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떤 것에서 분리해, 영원히 거하시며 지존하신 하나님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을 말한다. 구약에 있어서 ‘카도쉬’(qadosh)라는 의미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물건을 거룩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신성하게 분리하거나 거룩한 것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신약에서 ‘하기아조’(hagiaso)라는 단어는 ‘거룩케 함’ ‘신성케 함’ ‘거룩한 것으로 구분함’ 등의 의미로 쓰인다. 사도 바울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롬 6:19)고 당부할 때라든가, 고린도에 있는 교인을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고전 1:2) 등에 이 단어가 사용됐다.

이렇게 볼 때 성경에서 거룩함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세상적이고 죄악 된 모든 것에서부터 분리됨을 뜻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은 전적으로 세상적인 것과는 다르게 사는 것을 말한다.

비록 같은 공동체 안에서, 같은 문화권 안에 살고 있을지라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한다면, 다른 문화관과 세계관과 삶의 양식을 갖고 살아야 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한 나라’(벧전 2:9)라고 불렸다. 이는 그 나라가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분리됐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현대를 사는 하나님의 백성도 어떤 문화권에 살든지, 어떠한 종족에 속하든지 이 말씀에 대한 적용은 다르지 않다. 그리스도와 이 세상의 신이 함께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처럼, 의와 불법이 함께 하지 못하며 빛과 어두움이 사귈 수 없다.

믿는 자들의 삶은 이 세상 것으로부터 분리된 영역 안에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세상과 동떨어져 살라는 소극적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 속에서 적극적으로 살면서 세상의 것과 사악한 영향으로부터 구분돼야 한다는 말씀이다. 세상 속에서 살고 있으나 세상과는 다르게 구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성화에는 죄로부터 자유함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히 죄로부터 자유로운 분이셨으며 참 빛이셨고 그 안에는 어두움이 없으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죄의 지배 아래 있었고 죄의 종이였다. 예수님도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셨다.(요 8:34) 이는 곧 죄가 믿지 않는 자의 삶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며 죄가 그를 조정하게 되고 그의 주인이 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죄는 정결치 못한 것이기 때문에 죄를 지닌 채,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죄의 종이 되어있는 자가 그의 신분에 변화가 없이는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의심할 나위 없이, 믿는 자들은 더 이상 죄의 권세 아래 있지 않음을 성경은 선언하고 있다.(롬 6:14)

은혜의 영역 안에 있는 자에게는 더 이상 죄가 지배할 수 없다.(롬 6:18) 그것은 구세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루신 완전하시며 ‘단 한 번에 모두를 위한’(once and for all) 사건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죄의 통치와 지배에 대해 죽은 자들이다.(골 3:3) 이런 점에서 세례(침례)는 죽음과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했다는 것의 상징이다.

하지만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실제적으로 삶 가운데서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믿는 자가 더 이상 죄의 지배 아래 있지 않고 영적인 죄의 실재에 대해선 죽었을지라도 아직은 육체적 죄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갈 5:17)

즉, 믿는 자들도 이 세상에 살 동안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있으므로 죄를 짓게 되고, 갈등과 긴장 속에 살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죄로부터 자유로움을 얻었다고 했음에도, 계속 일상생활 속에서 짓고 있는 죄에 대해 성화의 차원은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문제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믿어 다시 태어나는 중생을 경험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았다 할지라도, 육신의 몸을 입고 있는 한 그 내면에는 아직도 죄악의 뿌리가 남아있다.

우리가 육신의 장막을 벗고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는 죄악의 문제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할지라도, 구약에서 거룩함으로 나아가기 위한 속죄의 피가 드려지듯이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피에 힘입어 끊임없이 ‘회개의 제사’가 드려져야 한다.

선교의 진정한 신학적 의미는 예수 믿고 구원받아, 죄의 길에서 벗어나 변화된 삶을 이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다. 변화된 모습을 통해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진정한 선교다.

정흥호 아신대 총장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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