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 풍광에 담은 도시의 흉터… 성난 파도에 두려움을 묻다

국민일보

해안 풍광에 담은 도시의 흉터… 성난 파도에 두려움을 묻다

이인성미술상 수상 공성훈

입력 2019-12-01 20:54
공성훈 작가는 풍경을 소재로 회화를 하는데, 경치의 아름다움을 그리고자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 현실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고자 한다. 사진은 ‘바닷가의 남자’, 캔버스에 유채, 2018년 작. 대구미술관 제공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공성훈(55·성균관대 교수)은 군에서 제대한 뒤 같은 대학 전자공학과에 편입하기 위해 문을 두드렸다. “뭐야, 미술로 먹고살기 어려우니 그러는 거야?” 반응은 뜨악했다. 하지만 기어코 서울산업대(현 서울과학기술대)로 옮겨 전자공학과에 편입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작가는 “당시 블라인드를 사용한 키네틱 아트를 했는데,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고 이유를 말했다.

대학 졸업장을 2개 따면서까지 키네틱 아트에 집념을 보였던 그가 지금은 회화를 한다. 그것도 진부한 소재로 느껴질 수 있는 풍경화다. 그런 풍경화로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주는 올해의작가상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근대미술가 이인성을 기려 대구시가 제정한 이인성미술상을 수상했다.


공성훈의 회화에는 어떤 독창성이 있는 걸까. 한번 보면 단박에 안다. 바다, 폭포 등 자연 풍광을 그린 것인데도 도시인의 불안과 고독, 소외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 미스매치가 주는 비현실감, 혹은 섬뜩함이 ‘공성훈 회화’의 매력이다.

2000년대 들어 그리기 시작한 제주 풍광을 보자. 파도가 부서지는 주상절리. 그 절경을 한 남자가 쪼그린 채 담배를 피우며 바라보고 있다. 등짝엔 외로움과 절망이 배어 있다. 캔버스 전체에 깔린 어두운 파란색 톤이 그런 감정을 배가시킨다.

그의 작품은 멀리서 보면 꼭 사진 같다. 작업을 할 때 사진을 참고해 그리기도 하지만 일부러 사진 같은 효과를 낸다. “풍경이라는 장치를 빌어 개인적인 생각,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사진처럼 보이는 게 좋아요. 사람들은 사진은 진짜라고 믿거든요.”

공성훈의 회화는 미대를 졸업하고 작가 생활을 시작한 1990년대라는 시대적 자장 안에서 태어났다. 80년대 미술은 모더니즘(단색화)과 민중미술의 대결이었다. 89년 동구권이 몰락하고 92년 서태지로 상징되는 개인주의가 생겨나며 미술도 다원화되기 시작했다. 미디어와 테크놀로지, 키치에 대한 관심이 분출했다. 10년 가까이 설치미술과 영상을 하던 그는 99년 무렵 회화로 돌아섰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가 말한 ‘형상의 미학’에 매료돼서다. 마침 결혼해서 경기도 고양시 벽제의 비닐하우스를 개조해 살림집과 작업실을 차렸던 무렵이었다. 퇴근 후 돌아오면 인근 농장에서 사육되던 개들이 눈에 들어왔다. 개와 밤 풍경. 외환위기 직후의 사회적 불안과 개인적 처지가 그 풍경에 투사됐다. 그것의 표현 수단은 미디어아트가 아닌 회화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일었다.

‘절벽(담배 피우는 남자)’, 캔버스에 유채, 2013년 작.

이후 회화 소재는 앞마당에서 사육되던 개에서 반경을 넓혀 벽제와 장흥, 벽제가 기생하는 도시 일산으로 확대됐다. 도시 변두리 야경은 화려해서 더 쓸쓸하다. 그는 네온사인의 색을 과장하고 형태를 왜곡함으로써 외환위기 이후 휘청거리는 도시의 비극성을 강화했다. 회화의 소재는 2000년대 들어 제주 바다 풍경으로 확장됐지만, 그의 회화에서 느껴지는 공포감과 불안감은 현재 진행형이다.

90년대만 해도 앞날이 창창한 작가들은 거의 설치미술이나 미디어아트를 했다. 그가 처음 그랬던 것처럼. 회화가 죽었다는 시대에 그는 거꾸로 회화를 했다. “우리 사회가 회화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있나요. 제대로 살아본 적도 없는데 회화가 죽었다니요?” 회화로 돌아선 이후 전시 요청도 뚝 끊겼지만 그는 뚝심으로 밀고 가 지금의 자리에 섰다. 대구 수성구 대구미술관 이인성미술상 수상전 ‘공성훈: 사건으로서의 풍경’전은 내년 1월 12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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