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배병우] 트럼프의 한국 ‘불링’

국민일보

[한마당-배병우] 트럼프의 한국 ‘불링’

입력 2019-12-02 04:05

아동심리학 용어인 ‘불링(bullying)’은 주로 ‘약자 괴롭히기’로 번역된다. 집단 내 한 명에 대해 부정적 별명 붙이기, 놀리기, 협박하기, 희롱하기, 폭행하기, 따돌리기 등 신체적·심리적인 폭력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을 가리킨다. 교육계에선 ‘집단 따돌림’ ‘왕따’로 많이 해석하는데, 이는 불링으로 인한 관계적 소외에만 치우친 측면이 있다. 미국의 사이버불링조사센터에 따르면 어떤 형태든 불링은 가해자의 피해자에 대한 권력의 시현(示現)이다. 약자를 지배하려는 욕구 표출이라는 것이다. 심리학계에서는 또한 가해자인 자신은 특출하며, 특권을 타고났다는 나르시시즘이 불링의 주요한 심리적 배경이라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이민자, 무슬림과 라티노(미국의 중남미계 주민) 등을 비하하는 발언을 거듭했다. 정적에 대해서도 인신공격성 별명을 붙였다. 대선 맞수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부정직한 힐러리(Crooked Hillary)”, 테드 크루즈(텍사스·공화) 상원의원은 “거짓말쟁이 테드(Lying Ted)”라고 했다. 미국 뉴욕주립대 업스테이트의과대학 로널드 파이스 정신의학과 석좌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자가 불링의 전형을 보여주는 건 매우 걱정스럽다”고 했다.

트럼프의 가해 행동과 나르시시즘은 국내에만 멈추지 않는다. 2017년 북한과의 핵 대치 국면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로켓맨(rocket man)”으로 폄하했다. 하지만 내년 대선을 위해 북·미 핵 협상 성과가 필요해지자 김 위원장은 친애하는 친구로 격상됐다. 북한의 빈자리를 채운 게 한국이다. 맨해튼의 아파트 월세를 받는 것보다 한국에서 방위비를 받는 게 쉬웠다고 했고, 경제가 번창하는 한국의 방위비를 왜 미국이 부담해야 하느냐고 한다. 상식과 논리로 설명하기 어려운 트럼프의 언행은 불링으로 바라볼 때 잘 이해된다. 일본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과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앞두고 약자로 보이는 한국 괴롭히기로 기선을 잡겠다는 계산이다.

최근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주요 언론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둘러싼 트럼프의 동맹 폄하를 매섭게 비난하고 나선 건 다행이다. 미국 시민사회에 한·미동맹에 대한 한국의 기여를 정확히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트럼프의 심리적 기제를 꿰뚫어보고 차분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국민의 대응일 것이다.

배병우 논설위원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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