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고세욱] ‘이승우 놀이’에 대한 단상

국민일보

[돋을새김-고세욱] ‘이승우 놀이’에 대한 단상

입력 2019-12-03 04:01

‘한국에 바르샤(FC바르셀로나)에서 뛸 뻔한 선수가 있었다.’ 게스트들 ‘에이, 말도 안돼.’ ‘난 알지, 우리 나이대는 알거야.’ ‘진짜라고요?’ MC ‘화면으로 만나 보시죠.’ (중략) 서울 강동구의 기사식당. 거기서 돼지불백을 나르고 있는 한 남자를 만날 수 있었는데….

한두 달 전부터 온라인에서 떠도는 화제의 댓글이다. 미래의 한 TV 교양프로에서 과거 축구스타였다가 식당에서 일하는 선수를 찾는다는 내용이다. 그는 ‘코리안 메시’로 불린 이승우(21·신트트라위던). 가상 글의 위력은 대단했다. 포털에서 ‘이승우’를 검색하면 돼지불백이 연관 검색어로 가장 먼저 뜬다.

이후 ‘골목식당’ ‘한끼줍쇼’ 등 각종 TV 프로를 패러디한 짝퉁 버전이 쏟아졌다. 이승우가 뛰었던 바르셀로나 유스팀 ‘후베닐’에서만 레전드라는 뜻의 ‘후전드’, 이승우의 형이 남긴 글을 비꼰 ‘king is back’ 등도 댓글에 꼬리표처럼 따라 온다. 이승우에 대한 조롱이 네티즌의 놀이처럼 됐다. 이런 현상은 8월 말 이탈리아에서 벨기에 리그로 이적한 이승우가 계속 출전하지 못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근 이승우가 자신에 대한 악플과 허위사실을 퍼뜨린 네티즌들을 고소하기로 했다 한다. 어떤 글을 명예훼손으로 봤는지 모르지만 이승우가 힐난조의 반응에 예민해졌음은 분명한 듯하다. 연예인들의 잇따른 자살로 악플에 대한 경종이 울린 시점이어서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다만 스포츠 스타가 실력이나 태도에 논란이 있을 때 비난에 노출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그래서 선수가 팬을 곧바로 고소하는 예는 거의 없다. 오히려 성공한 선수 중 상당수는 악플을 딛고 일어섰다.

프로축구 K리그의 전설 이동국은 과거 ‘게으른 공격수’라는 비난을 받았다. 2002 부산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에 그치며 이동국의 병역 혜택이 좌절됐을 때 일부는 환호할 정도였다. 경기장에 ‘개동국 당신의 군 입대를 축하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리기도 했다. 이승우에 대한 악플은 이동국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이동국은 절치부심했고 불혹의 나이에도 건재한 채 K리그 최다골, 최다포인트 기록을 쓰며 이제는 박수를 받고 있다.

국가대표 수비수 김영권은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 예선전에서 “관중 응원 소리로 동료들과 소통하기 힘들었다”고 말한 뒤 악플의 진수를 맛봤다. 관중 모독이란 죗값을 월드컵 개막 전까지 치렀다. 이를 악물었다. 본선에서 멋진 수비를 선보였고 독일전에서 골도 넣으며 기적의 승리를 이끌자 여론은 돌아섰다. 대표팀 원톱 황의조는 지난해 아시안게임에서 감독과의 인연으로 뽑혔다며 네티즌으로부터 융단폭격을 당했다. 그의 대표팀 퇴출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까지 나왔다. 황의조는 아시안게임 득점왕에 오르며 수모를 조용히 갚았다. 악플은 사라졌다.

선배들도 그랬으니 그냥 참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네티즌들이 이런 반응을 하게 된 이유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유럽축구 리그에서 뛰는 한국 선수는 20여명. 손흥민, 황의조, 황희찬, 이강인 정도를 제외하면 무명 선수들이 많다. 이들이 경기에 나오는지, 골을 넣는지도 많은 이들은 모른다. 반면 이적 후 석 달이 넘도록 경기장을 못 밟고도 이승우의 일거수일투족은 화제다. 그만큼 이승우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뜻이다.

결국 이승우 악플은 한국축구의 미래이자 천재로 불린 선수에게 건 기대감이 실망으로 바뀌면서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간혹 보도된 이승우의 일부 언행도 화를 불렀다.

연예인과 달리 선수들은 악플 탈출의 해법이 뚜렷하다. 바로 성적이다. 이승우는 이적 후 13경기째인 지난 1일이 돼서야 경기 출전 명단에 올랐다(출전은 못했다). 신인이라는 자세로 경기에 뛰려는 노력부터 기울여야 한다. 고소는 성적을 낸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악플러들도 내심 천재의 부활을 바랄 것이다. 모든 것은 이승우 하기에 달렸다.

고세욱 스포츠레저부장 swkoh@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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