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천종호] 호의는 공동체의 꽃이다

국민일보

[국민논단-천종호] 호의는 공동체의 꽃이다

입력 2019-12-03 04:01

호의는 법의 영역은 물론 정의의 영역 바깥에 존재하며 그 한계는 자기희생이다
호의 베풀 경우 상대의 인간적 존엄성을 해치지 않도록신중해야 하고,
호의 빌미로 사람을 지배하려 해선 안 돼


인간의 공동체적 삶은 ‘법’과 ‘정의’와 ‘호의’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최저임금제의 예를 가지고 설명해 보자. 대한민국헌법 제32조 제1항은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이 규정을 근거로 ‘최저임금법’이 제정되었다. 최저임금법 제8조 제1항은 “고용노동부 장관은 매년 8월 5일까지 최저임금을 결정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규정에 따라 정해진 시간당 최저임금은 2015년에 5580원이었고, 2019년에는 8350원이었으며, 2020년엔 8590원이 된다. 매년 정해지는 최저임금 수준은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 ‘관계의 준칙’인 최저임금법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므로 법적 강제성을 띠게 된다. 사용자는 임금을 최저임금 이하로 낮출 수가 없고, 반대로 근로자는 그 이상으로 임금에 관한 계약을 체결할 수가 있다. 결국 최저임금 선에서 강제의 영역인 ‘법의 영역’이 형성된다.

그런데 최저임금은 매년 인상되고 있다. 그러면 최저임금의 인상은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 다시 말해 법으로 강제할 수 있는 최저임금의 상한은 얼마인가. 이에 관한 확정된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대와 공동체에 따라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시간당 최저임금을 100만원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아마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시간당 10만원은 어떤가. 그것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시간당 3만원은 어떤가. 이렇게 사유실험을 해 가다 보면 공동체 구성원 대다수가 수긍할 만한 최저임금의 선이 정해질 것이다. 이렇게 공적 추론을 통해서 정해질 수 있는 선이 바로 최저임금의 상한이고, 각자에게 정당한 몫을 나누어주는 ‘정의의 영역’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사용자가 특정 근로자에 대해 그의 딱한 가정형편을 감안하여 일시적으로 시간당 10만원으로 계산한 임금을 추가 지급하였다고 하자. 이것이 바로 호의다. ‘호의의 영역’은 정의의 영역 바깥에 존재하며, 그 한계는 ‘자기희생’이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최저임금의 상한에서 현재의 최저임금을 뺀 부분은 법의 영역이 아니라 ‘정의의 영역’으로 남게 된다. 남은 정의의 영역으로 법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을 둘러싸고 갈등이 발생한다. 인류 역사를 보면 최저임금이 상승해 나가듯이 공동체 구성원 간의 갈등 조정을 통해 법의 영역은 정의의 영역으로 확대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법의 영역에서는 법적 권리·의무 관계가 성립되므로 권리자는 법의 힘을 빌려 권리를 실현할 수 있고, 정의의 영역은 도덕적 권리·의무 관계가 성립될 뿐이므로 잠재적 강제 가능성은 있을지 몰라도 법으로 포섭되기 전까지는 강제는 안 된다. 하지만 호의는 현실적으로든 잠재적으로든 강제할 수 없는 영역이므로 강제가 가능한 ‘법과 정의의 영역’을 ‘호의의 영역’으로 확장시킬 수는 없다.

비강제의 영역, 다시 말해 법으로 포섭되지 못한 정의의 영역과 법으로 포섭될 수 없는 호의의 영역에서 어떤 사람으로부터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길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약속’을 받아내는 것이다. 약속의 대표적 형태인 ‘계약’이 성립되면 권리자는 계약한 바를 강제를 통해 성취할 수 있다. 이처럼 약속은 강제될 수 없는 행위를 법적으로 강제 가능하게 만든다. 예컨대 사용자와 근로자가 시간당 5만원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하였고 계약을 이행함에 있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약속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두 번째는 대가가 따르지 않는 자선이나 기부와 같은 자발적 행위다. 호의의 영역에서 대부분의 행위들은 두 번째 경우이다.

법과 정의가 할 수 없는 일은 호의에 맡겨진다. ‘기부는 습관이다’는 말도 있듯이 호의를 베푼다는 것은 어지간한 마음자세가 아니면 하기 어렵다. 법적 의무가 없다고 하더라도 인류애를 바탕으로 하든 신앙에 근거하든 아무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면 호의를 베푸는 것이 조금은 쉬워질 것이다. 그런데 호의를 베풀 경우 상대방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하고, 호의를 빌미로 사람을 지배해서도 안 된다. 법과 정의의 도움을 받지 못해 공동체 구성원의 호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 궁박 상태에 놓인 사람들은 비굴함을 감수하고 호의를 요청할 수도 있고, 품위 훼손에 대한 염려나 수치심에 호의를 베풀어 달라는 요청을 포기할 수도 있다. 극단적인 경우 자신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 비극적인 선택도 감행한다. 예수는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고 가르쳤다. 이는 명예욕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은밀하게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는 뜻도 있지만, 도움을 받는 사람이 수치심을 느끼거나 지배당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도록 배려의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뜻도 있다. 참된 호의는 공동체에 바치는 꽃이고, 공동체의 품격을 일깨우는 향기다.

천종호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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