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영상 통해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

국민일보

다양한 영상 통해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

비디오 아트 거장 게리 힐 전시회

입력 2019-12-02 21:13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받은 바 있는 미국의 비디오 아티스트 게리 힐 개인전 ‘게리 힐: 찰나의 흔적’전이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손으로 듣는(HanD HearD)’ 설치 전경. 수원시립미술관 제공

전시실의 한 벽면을 꽉 채운 영상. 웨하스 과자처럼 긴 화면 안에 노동자 17명이 줄지어 서 있다. 대체로 후줄근한 점퍼나 맨투맨 티셔츠 차림이다. 정지된 화면인가 했는데, 좀 더 지켜보니 몸을 꼼지락거린다.


미국의 비디오 아티스트 게리 힐(68·사진)의 이 작품 제목은 ‘관람자(Viewer)’다. 영상 속 인물들이 눈을 깜빡거리기도 해 흠칫 놀라게 된다. 내가 그들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이 나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다.

연말,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면 수원 팔달구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게리 힐: 찰나의 흔적’전은 어떨까. 1980년대부터 2019년 신작까지 아우르는 회고전 성격으로 아시아 최대 규모 전시다. 게리 힐은 조각가로 활동하다 1970년대 초 비디오 아트로 전향한 뒤 영상과 텍스트를 활용한 작품을 선보이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카셀 도큐멘타(1992, 2017) 등의 국제전에 참가했으며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전시에는 언어와 이미지, 신체와 테크놀로지, 가상과 실재공간에 대해 고찰하는 대표작 24점이 나왔는데, 공통적인 특징으로 성찰적 요소를 뽑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관람자’를 우리 사회와 대입시켜 보면, 이주 노동자를 바라보는 내 관점에 편견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손으로 듣는(HanD HearD)’(1995~96)은 손바닥을 들여다보는 각기 다른 얼굴을 찍은 벽 크기의 영상 5편을 한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영상 속 인물들은 한 번씩 머리를 약간 돌릴 뿐 하나같이 제 손바닥을 집중해 들여다볼 뿐이다. 제목 그대로 손이 말을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입방체 전시장에 영상 4편이 아닌 5편을 보여주다 보니 가벽을 세웠고, 그래서 전시 방식이 건축적이고 드라마틱하다.

전시의 백미는 그의 대표작인 ‘벽면 작품(Wall Piece, 2000)’이다. 지난해 12월 전주 팔복예술공장 등 한국에서도 두 차례 소개된 적 있는 이 작품은 작가가 직접 등장해 알아듣기 힘든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며 벽에 자신의 몸을 부딪치는 퍼포먼스 영상이다. 그가 벽에 부딪힐 때마다 플래시 라이트가 터지며 작가의 몸짓을 부각시키곤 이내 꺼진다. 그가 아내를 향해 다가가며 전자 기타로 에드가 바레스가 작곡한 ‘검은 죽음’을 연주하는 영상 작품 ‘폭뢰(Depth Charge)’도 시선을 끈다. 아내를 마치 성모 마리아처럼 처리한 이 영상은 향정신성의약품을 복용한 그를 찍은 작품의 배경으로 나왔다.

텍스트와 소리, 이미지를 이용한 다양한 실험적인 작품이 나오는데, 하나같이 명쾌한 답을 주기보다 생각에 침잠하게끔 이끈다. 내년 3월 8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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