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 입은 공주·달라진 패러다임… 극장가 휩쓴 여성 서사

국민일보

바지 입은 공주·달라진 패러다임… 극장가 휩쓴 여성 서사

‘겨울왕국2’ 연출자 제니퍼 리 감독 “여성 캐릭터 영화에 확신 얻어”

입력 2019-12-03 04:05
여성 중심의 서사가 국내외 영화계의 한 흐름으로 자리매김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에서는 주인공 엘사가 바지를 입은 채 모험을 펼치고 있다. 월트디즈니 제공

“엘사를 향한 전 세계적인 사랑을 통해 여성 캐릭터의 힘으로 영화가 진행돼도 된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최초의 여성 감독이면서 영화 ‘겨울왕국2’의 연출자이기도 한 제니퍼 리 감독은 최근 열린 내한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겨울왕국’의 엘사와 안나는 기존 디즈니 공주들과 완전히 차별화된다. 왕자로 대변되는 남성 캐릭터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들의 힘만으로 서로 연대해 고난을 헤쳐 나간다. 심지어 이번 2편에서는 치렁치렁한 드레스가 아닌 간편한 바지 차림으로 거친 모험에 나서기도 한다.

온라인에서는 “‘겨울왕국’의 진정한 성취는 소녀들에게 파란색을 되돌려줬다는 것”이라는 의견이 큰 공감을 얻기도 했다. 이제는 여자아이들도 ‘분홍’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엘사의 푸른 드레스를 맘껏 입게 됐다는 것이다. 성역할의 패러다임을 바꾼 작품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여성 중심의 서사는 이제 전 세계 영화계의 한 흐름으로 보인다. 올해는 특히 그 기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변화의 양상이 두드러지면서 한동안 국내 극장가도 여성의 소리로 채워졌다. 눈 씻고 봐도 여성 영화를 찾기 어렵다는 영화계의 푸념은 이제 옛말이 됐다.

여성주의적 시각의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경력 단절 여성의 삶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봄바람영화사 제공

여성 감독과 여성 주연 배우가 여성 서사를 보여주는 영화들이 잇달아 주목을 받았다. 특히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30대 전업주부의 평범한 삶을 그린 ‘82년생 김지영’은 원작 소설에 이어 또 한 번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여성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에 힘입어 364만 관객을 동원했다.

김보라 감독의 장편 데뷔작 ‘벌새’는 베를린영화제, 시애틀영화제 등 전 세계 영화제 34관왕을 휩쓰는 진기록을 세웠다. 중2 소녀의 성장담을 차분하게 담아내며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낸 것이다. 재기발랄한 스토리와 연출이 돋보이는 이옥섭 감독의 ‘메기’도 국내외 호평을 얻었다.

신작들을 살펴봐도 여성 서사가 돋보인다. 이영애 주연의 ‘나를 찾아줘’는 실종된 아이를 찾아 나선 엄마의 처절한 모성을 그리고, 이유영이 주연한 ‘집 이야기’는 사이가 소원한 부녀를 통해 가족애를 이야기하며, 나문희와 아역배우 김수안이 호흡을 맞춘 ‘감쪽같은 그녀’는 할머니와 손녀 간의 애틋한 정을 전한다.

5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이태원’은 가볍지 않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1970년대부터 이태원에서 유흥업소 웨이트리스 등으로 일하며 살아온 세 여성의 굴곡진 삶과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태원’을 연출한 강유가람 감독은 “여성들의 이야기, 여성들의 목소리를 계속 카메라에 담는 이유는 기록되지 않으면 잊히기 마련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적극적으로 여성 이야기를 소비하는 관객들이 많이 늘었다. ‘N차 관람’이라는 새로운 응원 방식도 생겼다”면서 “여성 관객층이 늘고, 여성 서사가 늘어난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덧붙였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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