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명호] 국회의장이 나서야 한다

국민일보

[시론-박명호] 국회의장이 나서야 한다

타협과 선거법 합의 처리를 대통령에 요청·관철시켜 국회가 정치 중심임을 증명해야

입력 2019-12-03 04:02

강(强) 대(對) 강(强)의 정치다. 여당은 “한국당 없이 간다”하고 제1야당은 ‘삭발과 단식, 필리버스터’로 맞선다.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 파행과 올스톱이다. ‘강 대 강 정치’의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부의된 선거법 개정안과 곧 부의될 검찰 개혁 관련 법안이다. 법과 절차만 남은 정치 실종이다. 꽉 막힌 정국, 어떻게 풀어야 할까.

첫째, 정치하는 게, 정치하려는 게 출발이다. ‘정치를 가능성의 예술’로 바꾸는 건 대통령과 야당 지도자들의 몫이다. 대통령이 먼저다. 대통령은 정치적 자원과 수단을 가진 ‘최고의 정치인’이다. “지혜를 모아 달라”거나 “힘을 모아 달라”거나 “합의안을 기대한다”는 건 평론가의 일이다. 대통령이 ‘지혜와 힘과 합의’를 앞장서서 끌어내야 한다.

둘째, 선거법은 합의처리다. 선거제도는 게임의 룰이다. 선거제도는 현재의 권력관계를 반영하지만 미래의 권력관계를 바꾼다. 이해 당사자들의 합의나 암묵적 동의가 필요한 이유다. 선거제도의 비례성 강화를 목표로 여러 대안을 여야가 함께 모색할 수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과 설치 반대의 이분법적 접근도 마찬가지다. 여야가 바라는 것이 검찰 권력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라면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도모하는 방식과 제도는 다양하다. 비례성 강화와 정치적 중립의 견제와 균형은 순차적으로 진행할 수도 있다.

셋째, 타협안 도출이다. 민주당 일부의 선거법 합의처리 의견과 한국당 일각의 타협 필요성 인식이 출발점이다. 다양하고 상반되는 정치적 이해관계의 고차방정식이다. 민주당은 공수처 설치를 우선으로 하면서도 바뀐 선거제도에 따른 범진보연합 구성 가능성도 기대한다. ‘범여권 군소정당과 함께 의석 나눠 먹기 시도’라고 비판받는 이유다. 한국당은 지역구 축소 가능성과 의석손실을 우려한다. 사실상 협상하지 않겠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의석 손실은 양당 모두의 고민거리다.

민평당이나 대안정당,바른정당 당권파는 호남 의석이 줄어드는 게 걱정이다. 연동률이 높을수록 수혜 폭이 커지는 정의당은 비례대표 비중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 민주당이 정의당엔 연동률과 비례의석 수의 절충점을, 호남 군소정당들엔 지역구 축소 최소화나 석패율제의 두 번째 기회 보장을 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4+1 회의체’를 중심으로 ‘240+60안’ 또는 ‘250+50안’과 연동률 (하향)조정이 대안으로 부상하는 이유다.

넷째, 선거제도의 비례성 제고는 우리의 정부 형태와 정당 민주주의의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부분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다당제 경향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때 국회와 정부 또는 국회 내 협치나 연합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우리에겐 없다. 민주당 일부의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면 국정과 국회의 기능이 정지될 것이라는 걱정이나, 내각제나 이원집정제 등을 전제로 할 때의 선거제도라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총리 선임 방식을 정치적 타협의 계기로 삼아 출발하여 장기적으로 제도화하는 걸 모색해야 한다.

진입장벽을 높이지 않으면 이익집단형 정당의 난립도 가능하다. 얇지만 넓은 지지를 받는 정당과 정치적 지지가 지역적, 부분적으로 집중된 정당이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적은 의석수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는 정당이 많아져 특수이익이 국익에 앞설 수 있다는 말이다. 연동형제도가 독일에서 가능한 건 정당 민주주의의 오랜 전통과 투명하고 민주적인 공천 때문이다.

다섯째, 선이후난(先易後難)이다. 장단기 과제의 구분이다. 비례성 강화의 선거제도와 권력구조의 개헌은 장기과제다. 코앞에 선거를 두고 바뀐 제도를 적용하기보다 다음다음 선거부터 실시할 수 있다.

여섯째, 대통령과 야당 지도자들이 정치적 타협을 이루는 단초는 국회의장이 만든다. 정치적 타협과 선거법 합의처리 원칙을 국회의장이 대통령에게 요청하고 관철시켜야 한다. 합의가 안 되면 국회법 절차에 따라 처리하는 게 아니라, 협상정치 종료가 아니라, 국회가 민주주의의 끝이자 최후의 보루라는 걸 그가 보여줘야 한다. ‘사심을 버리면 천하가 넓어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여야를 넘어 입법부 수장으로서 국회가 정치의 중심임을 그는 증명해야 한다. 정계은퇴를 앞둔 원로의 멋진 모습을 기대한다. 국회의장이 나서야 한다.

박명호(동국대 교수·정치외교학과)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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