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만 보는 초딩, 차라리 TV봤으면...” 속 끓는 부모들

국민일보

“유튜브만 보는 초딩, 차라리 TV봤으면...” 속 끓는 부모들

“보지마” 막는 시대 끝... 미디어 리터러시 먼저 길러줘야

입력 2019-12-10 04:07 수정 2019-12-10 10:01
고사리 같은 손에 스마트폰이 들린 것은 집뿐만 아니라 식당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아이들은 영상을 주로 본다. 한국인이 2018~2019년 스마트폰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앱은 영상 서비스인 유튜브. 폭발적인 인기에 부모들의 걱정도 함께 커졌다. 게티이미지뱅크

유튜브 공화국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스마트폰 사용량이 늘면서 남녀노소할 것 없이 TV보다 유튜브를 찾는다. 동치미 담그기 같은 요리 정보부터 지지 정당 대표의 단식 현장까지 유튜브로 본다는 70대 할머니는 8살 손자에게 ‘좋은걸’ 배웠다고 기자에게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어르신도 즐겨 찾는 유튜브, 아이 일상에 좀 더 깊숙하게 배어 있다. 자녀의 눈이 빨간색 유튜브 로고에 꽂힐수록 부모 걱정은 높아 간다.

폐가 인증 영상 찍는 6학년 딸

5세, 2세 남매 엄마인 30대 김하연(이하 가명)씨는 지난여름 첫째 딸이 유튜브를 보다가 소변을 실수한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동생을 돌보다가 첫째를 미처 챙기지 못하던 때 벌어진 일이었다. 김씨는 둘째가 태어나기 전까지 첫째에게 휴대전화나 태블릿PC로 유튜브를 보도록 허용한 적이 없었다. 그는 “첫째 아이를 혼자 두는 시간을 줄이려고 학원 하나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초등 2학년생 아들 아빠인 40대 김경덕씨는 아이가 휴대전화로 유튜브를 접속할 때 성인 콘텐츠를 볼 수 없도록 설정했지만 규제가 미흡하다고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느 날 차를 운전해 가는데 아이가 보는 영상에서 “야동은 언제 봤냐”는 식의 질문이 나와 깜짝 놀랐다. 김씨는 “늦은 시간 몰래 유튜브를 보다 걸려서 ‘폰 금지’ 당한 친구들이 많다더라”며 “그 얘기를 듣고 아이가 휴대전화로 뭘 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감시 앱을 깔았다”고 귀띔했다.

40대 엄마 김세연씨는 초등 6학년 딸의 유튜브 통제에 애를 먹고 있다. 딸이 친구들과 폐가를 찾아가는 영상을 그대로 따라 한 것을 우연히 알게 돼 크게 혼낸 적이 있다. 동네 폐가에 가서 인증 사진까지 찍었다는 말에 기가 찼다. 김씨는 이후 아이 휴대전화를 수시로 들여다보고 있다.

“일단 보지마” 막아보는 부모들

초등 1학년 아들을 둔 30대 신혜수씨는 식당 등 통제가 필요한 장소에서만 영상을 정해 보여주고 집에서는 유튜브를 허용하지 않는다. 어린이 채널에 나오는 장난감을 사 달라고 떼쓰는 일이 많아져 그렇게 결정했다. 신씨는 “어린이 채널만 본다 해도 자동 추천 기능으로 낚시성 콘텐츠나 아이가 보기에 부적절한 영상이 나오기도 하더라”며 “더 크면 부모 눈을 피해서 볼 것이 뻔한데 그 전에 최대한 막아보려 한다”고 했다.

30대 박세미씨는 초등 2학년 아들에게 유튜브 금지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가 ‘왜 나만 못 보냐’고 속상해하는 일이 많아져 ‘허용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며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초등 1학년생 아들 아빠인 40대 최민식씨는 시간만 나면 리모컨을 찾는 아이가 걱정돼 TV를 아예 없앴다. 유튜브로 접속할 수 있는 TV를 들이고 나서부터 아이는 EBS를 켜는 대신 유튜브에 접속했다. 최씨는 “엄마가 출근하는 주말에는 거짓말을 조금 보태 종일 유튜브를 보는 것 같다”며 “넋 놓고 보는 아이를 그냥 둘 수 없었다”고 말했다.


막기만 하는 시대 끝났다

유튜브는 사용자 특성을 분석해 다음으로 볼 추천 영상을 개인별로 띄운다. 치밀하게 짜인 알고리즘에 따라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유튜브의 세계에 푹 빠지게 된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뉴미디어 앞에서 올드미디어를 보며 자란 부모는 대처 방법을 몰라 갈피를 잡지 못한다. 자녀들에게 미디어를 제대로 받아들이고 해석해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를 길러줘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시청자미디어재단의 미디어교육부 최종숙 부장은 “영상 미디어 교육이 TV에서 유튜브로 완전히 넘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보지 못하게 전기 코드를 뽑거나 ‘유튜브는 나쁘다’고 터부시하는 것은 반발심만 일으킬 뿐”이라고 조언했다. 아이가 즐겨보는 유튜브를 함께 시청하면서 수시로 토론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유튜브 등 모든 미디어가 연출, 즉 제작자 의도대로 꾸며진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가는 ‘거리 두기’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IT기업전문학교의 홍성관 교수는 “유튜브를 ‘정서적 재미’로 활용하되 새로운 것을 알아갈 때 맛보는 ‘인지적 재미’로 이어지도록 어른이 지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봐도 좋을 유튜브 채널을 아이와 함께 선정하는 것을 제1과제로 제시했다. 자녀가 보는 유튜브 채널 내 인기 영상, 댓글 반응, 유튜버(유튜브 운영자) 평판을 살펴보면 비교적 손쉽게 이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 홍 교수는 “유튜브는 호기심 해소 도구로 활용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플랫폼”이라며 시청자미디어재단이나 한국정보화진흥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등 정부 산하 기관에서 제공하는 미디어 교육 프로그램 도움을 받는 것도 추천했다.

그러나 미디어 교육기관은 전국 60여곳에 그치는 등 수적인 면에서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현장 목소리다. 공교육에서도 인터넷 예절이나 저작권 등 미디어 교육을 여러 과목에 녹여 소화하지만 이를 집중해 다룰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경인교육대학교의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 소장인 정현선(국어교육과) 교수는 “교육부가 지난 7월 미디어 교육 내실화 지원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는 선언적으로 의미가 있다”며 “교육과정에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용어를 도입하고 이를 집중할 수 있는 단원이 만들어져 그 시대에 맞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추천 영상 원리나 그 개념을 파악하는 알고리즘 리터러시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 교수는 “가짜뉴스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팩트체킹을 넘어 플랫폼이 작동되는 원리, 영상 등 정보가 개인에게 흘러오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는 미디어를 제대로 알아가고 그에 관심을 두게 되는 분명한 동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