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헌신으로 건축한 성전 내주어야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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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헌신으로 건축한 성전 내주어야 하다니…

이경은 목사의 ‘아스팔트에 핀 부흥의 꽃’ <6>

입력 2019-12-04 00:05 수정 2019-12-04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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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은 순복음진주초대교회 목사가 2014년 8월 충북 청주 청원진주초대교회에서 열린 아바드리더콘퍼런스에서 기도회를 인도하고 있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고 회심했던 사도 바울의 모습이 그랬을까. 1988년 11월 성령세례를 받은 남편은 그토록 좋아하던 세상 것들을 단번에 끊고 주님께 돌아섰다. 과거 남편은 교회를 다니긴 했지만, 세상 사람과 다름없었다. 그런 남편이 변화된 것은 성령세례의 힘이다. 남편은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성령운동을 하는 순복음 교단을 선택했다.

전태식 순복음서울진주초대교회 목사가 신학교를 가기로 했을 때, 가족들은 비웃었고 시아버지의 노여움은 극에 달했다.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더욱 뜨겁게 기도하고 찬양하고 금식하고 전도했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는 찬양가사와 똑같았다. 예수 사랑에 미쳐 매일을 보냈다.

우리 부부는 이미 교회의 허락하에 따로 개척교회를 세워 평신도로서 그곳을 섬긴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직접 주의 길을 가는 것은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마음을 다잡고 남편의 목회 길에 돕는 배필이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1991년 3월, 남편이 신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지 않아 한 목사님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기도원에서 함께 금식하며 알게 된 목사님이었다. “전도사님, 제가 아는 목사님께서 안식년이 돼 히브리어 공부를 하러 가신답니다. 그 교회 담임 전도사로 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교회는 당시 사천읍에 있던 두량삼오교회라는 작은 시골 교회였다. 한 달 사례비가 5만원밖에 되지 않아 아무도 가려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남편은 신학교를 졸업한 것도 아니고, 말도 둔해서 말씀을 전하는 데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순복음 교단 신학생이 장로교 교회 목회자라니…. 그래서 “절대 갈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려고 했다. 그런데 정작 입에선 정반대 말이 나오고 말았다. “네, 제가 가겠습니다.”

그야말로 성령의 강권적인 인도하심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을 추천한 그 목사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두 분이 그 교회에서 성공하면, 세계 어느 곳에 가서 목회해도 성공할 겁니다.”

교회는 마구간을 개조해서 지은 것이었다. 말이 좋아 교회지 한숨이 절로 나올 만한 환경이었다. 마구간 특유의 냄새에, 나무 서까래를 타고 빈대가 쉼 없이 떨어졌다. 구정물이 고인 하수구에 손을 넣어야 수도꼭지를 틀 수 있었다. 에어컨은 꿈도 꿀 수 없고 달달 거리는 선풍기 하나에 의지했다. 그해 여름은 무척 더웠다.

전태식 순복음서울진주초대교회 목사와 이경은 목사가 1990년 6월 평신도 시절 경남 사천에 교회를 개척한 뒤 해변에서 세 자녀와 함께한 모습.

그래도 좋았다. 얼마 되지 않는 숫자였지만 매일 성도들을 심방하며 섬겼다. 밤에는 성도들과 함께 매일 “불로! 불로!”를 외치며 뜨겁게 기도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치유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전도사 주제에 뭘 얼마나 하겠어’하는 눈으로 바라보던 성도들도 점점 존경 어린 눈빛을 보내왔다.

그때 동네 무당이 밤에 자려고 눕기만 하면 “불이야, 불이야”하는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고 한다. 밤마다 성도들과 함께 “주여, 주여”하고 부르짖는 소리가 무당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결국, 그 무당은 밤마다 들리는 “불이야” 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마을을 떠났다.

무더운 여름,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기도하고 찬양했다. 그러노라면 성전 창문에 붙은 청개구리도 팔딱 뛰고 등에 붙은 빈대도 팔딱 뛰고 무릎 꿇고 기도하는 우리도 들썩들썩했다. 지금 돌아보니 그마저도 추억이 된다.

마구간을 개조해서 만든 성전은 한계가 있었다. 악취와 빈대로 고생하던 성도들은 늘 몸을 긁었다. 어린 세 자녀도 마찬가지였다. 하도 긁어서 난 생채기로 작은 몸에 성한 곳이 없었다. 그래서 남편과 성도들은 성전 건축을 결심했다. 하지만 문제는 성전 건축에 필요한 물질이었다.

사명의 길을 가겠다고 했을 때, 남편에게 요구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여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부모·형제나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요. 만약 그렇게 하면 절대 이 길을 따라가지 않을 거예요.”

맏아들인 남편은 시아버님의 막대한 유산을 포기한 상태였다. 어차피 하나님께 드릴 것, 형제지간의 우애를 위해 시동생이 원하는 대로 다 넘겨줬다. 우리에게 있던 전 재산도 다른 개척교회에 헌금으로 드리고 이 길을 왔다.

당시 우리는 빈털터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믿음으로 성전 건축을 선포했다. 하나님은 기적처럼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고 또 채워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에게 하나님께서 또다시 바치라는 마음의 음성을 주셨다고 한다. “하나님, 아시지 않습니까. 이제는 더 이상 바칠 것이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또 한 번의 음성을 주셨다. “너한테 결혼 패물들이 있지 않으냐.”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결혼 예물까지 마지막으로 바치게 하면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받으셨다.

드디어 성전 건축을 마무리하고 헌당식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마음 아픈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올 남편 목사님의 자리가 없을까 사모님이 걱정하고 계신다는 것이었다.

눈물의 기도와 헌신으로 건축한 성전이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떠나기로 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완공된 성전의 모습을 보고 그곳을 떠났다. 1991년 가을이었다. 그렇게 언약의 말씀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셨다.

▒ 아바드리더시스템이란
신앙은 순종과 불순종의 싸움… 선이 악을 물리치려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을 시작한다.(민 10:11~12) 그들의 광야생활은 영적으로 오늘날의 교회 생활을 의미한다.(행 7:38) 이스라엘 백성의 40여년 광야생활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훈련받는 과정이다. 아바드리더시스템은 그 광야생활을 토대로 오늘날 교회생활 가운데 만날 수 있는 문제와 그 문제를 만났을 때 승리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광야 같은 삶에서 신앙생활은 싸움이다. 어떤 싸움인가. 순종과 불순종의 싸움, 곧 선과 악의 전쟁이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마귀가 온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멸망시키기 위함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복 받을 뿐 아니라, 저 맹세한 땅에 들어가 영생 얻는 복 받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다 천국 가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요 6:39) 이에 하나님은 순종을,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불순종하게 한다. 신앙은 이렇듯 순종과 불순종의 싸움이다. 이를 잘 알면서도 우리는 왜 순종하기가 어려울까.

첫째,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사울왕에게 보내 명하신다.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 그러나 사울은 어떻게 했는가. 칼날로 그 모든 백성을 멸하였으나 아말렉 왕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은 남겨두고 진멸하지 아니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삼상 15:24)

바로 두려움 때문이었다. 사울은 백성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친히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우셨다. 하지만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시고 여호와의 말씀을 버린 그를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신다.

그러나 사르밧의 한 과부는 어떠했는가.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유하라고 말씀하신다. 엘리야는 성문에 이르러 한 과부를 만나고 그에게 물과 떡 한 조각을 청한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왕상 17:12)

과부는 먹고 죽을 만큼의 양식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엘리야는 두려워 말고 먼저 그것으로 자신을 위해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가져오라고 한다.

그때 사르밧 과부는 어떤 마음이었겠는가. ‘마지막 먹을 양식을 그에게 주면 나와 내 아들은 어떻게 될까.’ 분명 두려움이 앞섰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두려움을 물리치고 엘리야의 말에 순종했다. 그렇게 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대로 사르밧 과부의 집은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는 복을 받는다.(왕상 17:16)

사울왕은 두려움에 불순종했지만 사르밧의 이름 없는 한 과부는 순종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어떤 마음인가.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니다.(딤후 1:7) 두려움은 마귀가 우리로 하여금 말씀에 불순종하게 하려고 주는 것이다. 이처럼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가 어렵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주일성수하면 물질적 손해나 핍박이 있지는 않을까’ ‘십일조를 드리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오지는 않을까’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우리는 두려움을 이겨야 한다. 그리고 순종과 불순종의 싸움에서 반드시 이김으로 약속하신 복을 받아 누려야 한다.

이경은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