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이승우] 시간과 체력과 돈과 인내

국민일보

[너섬情談-이승우] 시간과 체력과 돈과 인내

뭔가 해내려면 이 4가지 외에 행운도 필요… 따라서 우린 치열하면서 동시에 겸손해야

입력 2019-12-04 04:04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 32장에는 ‘고래학’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작가는 고래학의 체계에 관한 밑그림을 제시하겠다는 의욕을 가지고 고래를 세밀하게 분류하는 작업을 한다. 대부분의 소설 독자들은 이 장을, 이와 유사한, 고래에 대한 전문적 식견을 뽐내는 몇 개의 장과 함께 건성으로 읽거나 건너뛰거나 한다. 나도 그런 독자 가운데 한 사람인데, 그 부분을 슬쩍슬쩍 넘기며 읽다가 장이 끝나는 부분에서 흥미로운 문장을 발견하고 되돌려 다시 꼼꼼히 읽은 기억이 난다.

이 소설의 서술자는 이슈마엘이라는 선원이다. 그는 고래학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자신의 고래 분류가 미완성이라는 것을 고백한다. 탑 꼭대기에 아직 기중기를 세워둔 채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쾰른 대성당을 언급하며 그는 웅장하고 참된 건물은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는 법이라고 말한다. 이 장의 마지막 문장들은 다음과 같다.

“신이여, 내가 아무것도 완성하지 않도록 보살펴 주소서! 이 책도 전체가 초고, 아니, 초고의 초고일 뿐이다. 오오, 시간과 체력과 돈과 인내를!”

이것은 물론 ‘모비딕’의 소설 속 서술자인 이슈마일의 말이다. 그가 초고의 초고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는 ‘이 책’이 그의 고래학이라는 것도 확실하다. 그런데 그 문장을 읽을 때 내 귀에는 무엇 때문인지 ‘모비딕’의 작가 멜빌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래학의 체계를 세우는 일의 어려움에 대한 서술자 이슈마일의 토로가 아니라 ‘모비딕’이라는 대작을 쓰고 있는 작가 멜빌의 한탄과 염원으로. 그는 대작을 구상했고 집필을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창작의 동력을 잃고 그만 포기해 버리고 싶어진 것이 아닐까. 마지막 문장은 이런 생각에 은근한 무게를 실어준다. ‘오오, 시간과 체력과 돈과 인내를!’

나는 떠올린다. 더딘 집필 속도와 생활에 대한 염려로 지친 작가는 한탄하듯 ‘오오, 시간과 체력과 돈과 인내를!’ 하고 중얼거린 다음, 자기가 내뱉은 그 문장을 무의식적으로 원고의 여백에 연필로 써넣는다.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작가가 원고지의 여백에 쓴 낙서 같은 것이 편집 과정에서 텍스트에 합류해 버린 것이 아닐까. 물론 나의 이런 생각에 무슨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멜빌이 32장 어간에서, 그러니까 한국어 번역본으로 194페이지(김석희 역, 작가정신)를 쓸 무렵에 이 소설을 그만 중단해 버릴까, 고민했을 것만 같다. 거기서 그가 중단해 버렸다면 우리는 이 엄청난 소설을 읽을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위기를 넘어 684페이지짜리 장편소설을 완성했다. 그때까지 쓴 것의 3배가 넘는 분량을 더 쓴 것이다. 그가 ‘모비딕’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3배가 넘는 시간과 체력과 돈과 인내가 필요했을 것이다.

어떤 시점에 어떤 이유인가로 중단해 버린 바람에 독자들이 읽을 수 없게 된 누군가의 어떤 소설을 생각한다. 시간과 체력과 돈과 인내를 얻지 못해 탄생하지 못한 명작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공모전에 수없이 떨어진 어떤 소설지망생이 이번에도 떨어지면 그만두겠다고 마음먹고 마지막으로 응모한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등단 후 그는 좋은 소설을 많이 썼다. 그가 시간이든 체력이든 돈이든 인내든, 그밖에 어떤 것 때문이든 한 발짝 앞에서 포기했다면 작가가 될 수 없었을 것이고, 우리는 그의 좋은 소설들을 읽을 수 없었을 것이다.

멜빌이 멈추지 않고 계속 쓰기 위해 필요하다고 언급한 것들 가운데 어떤 것은 자기 안에서 끌어내야 하는 것이고, 어떤 것은 밖에서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기원문의 형식을 가진 그의 문장은 자기를 향해 다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말해도 내용은 달라지지 않는다. 다짐하는 형식의 이 문장은 밖을 향해 기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간과 체력과 돈과 인내’라는 목록은 철저한 자기 관리를 요구하지만, 동시에 철저한 자기 관리만으로 달성되지 않는 영역을 포함하고 있다. 인간의 의지와 노력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영역에 닿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행운이라고도 하고 은혜라고도 불리는 자리이다. 그래서 나는 멜빌의 이 응원 목록에 행운, 또는 은혜를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무엇보다 치열해야 하지만, 동시에 겸손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것이 비단 소설 쓰는 일에만 국한된 이야기겠는가.

이승우(조선대 교수·문예창작학부)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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