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구 칼럼] 또다시 풍기는 적폐의 냄새

국민일보

[김의구 칼럼] 또다시 풍기는 적폐의 냄새

입력 2019-12-04 04:01

촛불 정권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집권 3년차 증후군
공직기강 중추 靑 민정수석실 권력남용 의혹의 중심에 서
범죄 있는 곳에 수사 있는 게 당연… 실체 규명에 충실해야


최근 청와대를 겨냥하고 있는 검찰 수사를 지켜보는 이들로부터 종종 듣는 말이 있다. “촛불 정권도 3년 차 증후군의 예외는 결국 아닌가 보네.” 3년 차 증후군이란 대통령 취임 3년째 해에 권력 심층부와 관련된 스캔들이 본격적으로 불거져 나오는 현상이다. 이명박 정권의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 박근혜 정권 때는 문고리 권력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게 이즈음이었다. 그저 시점을 놓고 단순하게 견주니, 촛불을 지지했던 사람들에게는 지나치게 값싼 대접으로 느껴질 터이다. 하지만 반대자들에겐 너무도 당연한 비교로 여겨질 것이다.

이번 스캔들의 중심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올랐다. 전 정권 때도 우병우 민정수석을 둘러싸고 갖가지 시비가 일었지만, 당시는 비서실장을 필두로 한 청와대 전체가 국정농단 시비에 휩싸였으니 사정이 좀 다르다. 민정수석실은 청와대에서도 가장 힘이 센 부서다. 소속 비서관이나 행정관들은 청와대 기자들도 접촉하기 힘들다. 언론사 간부들이라도 청와대 비서실장은 얼굴을 대할 기회가 없지 않지만, 민정수석은 대면하기 쉽지 않다. 힘이 센 만큼 민원의 대상이 되기 쉬우니 불필요한 만남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그만큼 서릿발같이 엄정하게 처신해야 하는 자리다.

그런 민정수석실이 의혹에 휩싸인 것은 범상치 않다. 공직 기강의 중추가 흔들리는 모양새다. 그런데 결코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난 8월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으로 내정된 뒤부터 현 정부의 국정운영이 본격적으로 꼬인 것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 후보자가 온갖 불공정으로 칭칭 싸매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현 정권은 그를 지키기 위해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긴 국론의 분열 과정을 거쳐 검찰이 수사를 통해 그의 자격 없음을 입증하자 조 장관은 물러났다. 하지만 이후에도 검찰 개혁을 완수해 달라는 그의 사퇴의 변은 여권의 최우선 국정과제가 됐다. 검찰이 최근 청와대를 겨냥한 것을 조국 사태의 제2라운드라고 부른다면 아마 이런 광경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정치공학적 접근이 전부일 수는 없다. 검찰에게 정치적 노림수가 있느냐 없느냐와 별도로 수사대상의 실체 유무와 유죄 성립 여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울산시장 비위와 관련한 경찰 수사가 선거 개입에 해당하는지, 청와대가 간여했는지 등은 검찰의 의도보다 더 중대한 문제다. 사실로 드러난다면 민주주의 기본 원리 훼손이자 민주주의 제도에 정면 도전한 사안이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과 관련된 사안도 청와대가 제 식구를 감싸면서 권력형 비리를 비호한 중차대한 문제다.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가 있듯, 범죄가 있는 곳에는 수사가 있는 게 당연하다. 의도를 부각시켜 수사를 무력화하는 것은 빈대를 잡으려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다.

국민들이 현 정부의 권력형 비위와 레임덕에 큰 아쉬움을 표시하는 것은 그만큼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촛불집회를 통해 전 정권의 실세 대부분을 사장시킬 정도로 혁명적인 탄핵과 사법처리 과정을 거쳤고, 촛불혁명을 계승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며 국정의 쇄신을 약속했다. 대선에서 41%가 넘는 표가 몰렸고 집권 내내 높은 지지를 보였다. 그런데도 정권 3년 차의 상황이 별반 차이가 없고, 익숙한 권력 적폐의 체취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면 국민들로서는 갑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역사가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기를 고대했던 시민들로서는 촛불의 정신이 쇠퇴한 것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촛불 때문에 무리를 한 것인지, 혹은 반대파의 궤멸이 독주를 불러 신 적폐를 부른 것인지 의아해 할 것이다.

민정수석실에 근무했다 복귀한 검찰 수사관이 급기야 지난 1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한창 나이 공직자의 죽음은 2015년 해킹프로그램 구입 관련한 유서를 남기고 빨간 마티즈 안에서 숨진 국정원 과장을 비롯해 그간 검경 수사와 관련해 목숨을 끊은 여러 인사들을 떠올리게 한다. 검찰과 경찰은 사망 배경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검찰은 담당 경찰서를 이례적으로 압수수색해 사망 사건 수사에 직접 개입했다. 청와대와 여당도 가세해 저마다 진실이라며 그의 죽음과 관련한 주장들을 쏟아내고 있다.

어느 주장이 옳든, 혹은 둘 다 틀렸건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거기 있지 않은 듯하다.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71년 전 일이고, 1987년 민주화 이후 32년이나 흘렀다. 이제 권력의 악취가 풀풀 나는 지긋지긋한 권한남용이 반복되지 않고, 그 사이에 끼어든 안타까운 희생이 더 이상 생기지 않을 수는 없는가? 공무원들이 소신대로 일하고, 임무를 마치면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오는 게 당연한 사회를 모두 학수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사직서가 아니라 유서를 쓸 각오가 돼야 권력의 핵심에서 일할 수 있는 풍토는 이제 제발 그만 없어져야 할 것이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