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균·임경섭의 같이 읽는 마음] 드러냄의 용기, 몸에 관한 한 못할 말은 없다

국민일보

[김필균·임경섭의 같이 읽는 마음] 드러냄의 용기, 몸에 관한 한 못할 말은 없다

은밀한 몸, 옐 아들러 지음, 배명자 옮김, 북레시피, 412쪽, 1만8000원

입력 2019-12-07 04:03
독일 피부과 전문의가 펴낸 ‘은밀한 몸’에 담긴 인체의 신비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저 그림은 책에 담긴 일러스트 중 하나로 인간의 노화를 다룬 페이지에 실려 있다. 저자는 “책임감 있는 생활이 최고의 안티에이징 효과를 낸다”고 썼다. 북레시피 제공

재미 삼아 가끔 타로점을 봐주던 지인이 있었다. 몇 가지 크고 결정적인 일들에 대해 의미 있는 조언을 듣기도 했던 터라, 나는 그를 꽤 신뢰했다. 내가 너무 믿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을까. 나는 작은 일에도 그가 뭐라고 할지 궁금했지만, 그는 선뜻 그것을 꺼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모처럼 점을 봐주겠다고 했고, 나는 기회는 이때다 하고 그간 궁금했던 것들을 줄줄이 물어보았다. 연애 금전 사회생활 인간관계…. 몇 번이나 카드를 섞었다 펼쳤다 한 그가 조금 지친 기색으로 더 궁금한 것이 없냐고 물었을 때, 나는 마지막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요즘 몸이 좀 안 좋은데, 건강은 괜찮을지 좀 봐주세요.” 그러자 그가 카드를 섞던 손을 멈추고, 걱정과(그가 걱정하는 것이 나의 몸 건강인지 정신 건강인지 알 수 없었다) 어이없음이 담긴 말투로 대답했다. “몸이 아프면 병원엘 가. 점보지 말고.” 역시나 의미 있는 조언을 해주는 그였다.

지인의 일침에 뜨끔했던 그날 이후로 더는 타로로 건강 상담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는 그 단순 명쾌한 정답은 알면서도 실천이 잘 안 됐다. 요즘은 몸에 이상 신호가 감지될 때 포털사이트의 검색창을 찾는다. 물론 감기에 걸리거나 뼈에 이상이 생겼을 때와 같이 일반적이고 명확한 증상이 있을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 말하기는 애매하지만 나는 분명히 불편한, 어디가 가렵다든지 피부에 뭐가 났다든지 하는, 그런 ‘은밀한’ 증상들을 주로 검색창에 쳐보는 것이다. 놀랍게도 비슷한 증상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늘 있다. 그러면 아무런 치료를 받지도 않았는데, 당연히 내 증상은 낫지도 않았는데, 그쯤에서 안심하기도 한다. ‘아, 크게 위험한 건 아니구나’, ‘피곤해서 그렇구나’(어떤 증상에 대한 원인은 늘 여러 가지인데, 그중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스트레스고, 믿고 싶은 원인도 늘 스트레스이다) 하는 식으로 자가진단을 끝내고 처방까지 내리기에 이른다. ‘가만히 두면 저절로 괜찮아지겠지.’


독일 베를린에서 피부과 병원을 운영하는 피부 및 비뇨기과 전문의 옐 아들러는 ‘은밀한 몸’을 시작하는 글에서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던져준다. “드러내놓고 얘기하기 곤란한 병일수록 사람들은 병이 저절로 나을 거로 생각한다. 저절로 생겼으니 저절로 없어질 거야. 애석하게도 많은 경우 그렇지 않다. 이런 병들은 병원에 오기까지가 힘들지, 정작 치료는 전혀 힘들지 않다”고. 은밀한 곳에 말하기 부끄러운 증상들이 나타나면, 홀로 괴로워하지 말고 의사를 만나 원인을 찾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의사들은 늘 당신 편이고 당신의 신뢰를 소망한다”고 덧붙인다.

저자는 자신의 몸과 정신을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데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아는 사람이다. 또한 그는 그런데도 그러한 용기를 낼 때 비로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은밀한 몸’은 바로 그 용기를 주기 위해 쓰였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몸에 관한 한 못할 말은 없다’라는 문장이 눈길을 사로잡는 표지를 열면, 입 냄새와 방귀, 땀 냄새, 발 냄새 등 신체 곳곳에서 나는 체취에서부터 생식기 및 항문과 관련한 여러 가지 문제, 무좀, 탈모, 점뿐만 아니라 노화와 우울증, 코골이까지 사람들이 터부시하는 신체의 여러 가지 현상과 문제가 실제 환자의 사례와 함께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그 해결 방법까지 엿볼 수 있다. 물론 의사를 찾거나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것이 해결책으로 주로 제시되지만, 재미있고 정확한 설명을 듣고 나면 실천 의지가 좀 더 불끈 솟는다. 타로점으로도, 포털사이트 검색에서도 들을 수 없는, 너무 솔직한 진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관심 있게 본 것은 노화와 안티에이징. 내년이면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니 괜히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도 하거니와 하루가 다르게 몸과 마음에서 변화가 생기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역시나 나는 참 부단히도 노화를 촉진하는 생활을 해왔고,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서 이것저것 사들이는 화장품은 결코 내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 책에서 뼈아프게 확인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책에서 제시한 방법을 실천해보는 것. 이렇게 새해 결심이 하나 늘었다.

<김필균·출판 편집자>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