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에 맞선 하나님의 의병] (8) 16세 소년도 대기업 다니던 가장도, 동성애자 마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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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에 맞선 하나님의 의병] (8) 16세 소년도 대기업 다니던 가장도, 동성애자 마수에…

입력 2019-12-10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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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안섭 수동연세요양병원장이 2017년 10월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남성 간 성행위와 에이즈의 긴밀한 상관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국회방송 캡처

나이트클럽 청소와 뒷정리는 웨이터와 삐끼 몫이었다. B씨는 그날도 웨이터 형들과 함께 손님이 모두 빠져나간 홀에 청소를 하려고 남았다. 그런데 친형 같던 웨이터 형들이 갑자기 돌변했다. B씨는 디스코 메들리 음악과 번쩍이는 조명 밑에서 동성애자였던 웨이터 형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조금 전까지도 신나게 들렸던 디스코 메들리가 지옥의 떼창으로 변했다. 번쩍이는 조명은 불지옥의 화염과 같이 세포 하나하나를 파괴했다.

이 악하고 더러운 일을 마친 웨이터 형들은 테이블을 닦던 걸레를 B씨에게 던졌다. “네가 흘린 것이니까 네가 닦아. 내일 손님 오시는 데 지장 없게 잘 닦으라고.” B씨는 지시를 거역했다가 또다시 나쁜 일을 당할 것 같아 홀 바닥에 떨어진 피와 대변, 정액을 정신없이 닦았다.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면 이 자리에서 아무 일 없는 듯 사람들은 춤을 추겠지. 과거처럼 평범했던 날이 내게 다시 올 수 있을까.’ 일을 마친 후 밤거리로 나갔는데 싸구려 튀김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는 나이트클럽 손님들의 담배심부름을 해주고 받은 팁으로 튀김 몇 개를 샀다. 숙소까지 걸어가며 먹는데 목구멍으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들었다.

그날 B씨는 에이즈 환자가 됐다. 아무 일 없는 듯한 내일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에이즈로 몸을 못 쓰게 돼 침상에서 지내야 했고 2011년 수동연세요양병원으로 왔다.

입원 후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침상에서 편지를 썼다. 마비증세로 팔을 힘겹게 움직였다. 그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부모님 죄송합니다’라는 문구를 반복했다. 그러나 정말로 사죄할 사람은 16세 소년의 꿈을 앗아간 동성애자 성폭행범이었다. 그들도 동성애가 인권이라고 떠들며 퀴어행사도 다니고 이태원 게이클럽도 다니고 있을 것이다.

C씨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국내 유수 대기업에 취직했다. 업무 능력이 뛰어나고 대인관계도 원만해 입사 동기보다 빠르게 승진했다. 중국 주재원으로 선발됐는데, 중국에서 몇 년만 고생하면 귀국 후 높은 자리가 보장되는 보직이었다. 동료들의 부러움 속에 아내와 함께 가게 된 중국에서 눈코 뜰 새 없이 일에 매진했다.

중요한 성과를 낸 어느 날 C씨는 팀원들과 기분 좋은 회식을 했다. 그런데 너무 분위기가 좋다 보니 고량주를 과하게 마셨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이제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팀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평범한 아저씨같이 생긴 중국인 남자 택시기사의 차에 탔다. 이후 성폭행을 당했다.

C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원장님, 저는 그때 한국의 농촌과 그리 다르지 않은 도시 외곽의 밭길에서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술이 너무 취해 저항할 수도 없었습니다.” 큰 충격을 받는 C씨는 급히 귀국해 여러 검사를 받았는데, 안타깝게도 에이즈에 걸렸다는 진단이 나왔다.

C씨는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 착한 사람이었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착한 사람이라며 봐주지 않고 C씨의 신체를 사정없이 파먹었다. 결국, 실명하고 휠체어까지 타게 돼 2010년 수동연세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아내는 에이즈에 걸린 남편을 끝까지 지키고 싶어했고 남편도 아내를 너무 사랑했다. 남편은 매일 아내를 만나고 싶어했다. 아내도 최대한 시간을 내서 문병을 왔다. 아내가 왔다 가면 남편은 마음이 안정되고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발소리만 들어도 아내인지 알았다. “여보, 왔어? 남양주까지 오느라 수고했네.” 병실에서 환하게 인사하는 남편을 보면서 사랑의 힘을 생각했다. ‘아, 얼마나 사랑하면 그 사람의 발소리까지 기억하는 걸까.’

중국에서 택시를 몰았던 이름 모를 동성애자 성폭행범은 순수한 사랑의 한 원형, 단란했던 가정을 무참히 짓밟고 말았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는 좌절하지 않고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사랑을 지키려고 처절하게 애썼다. 그렇게 6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얘야, 나 좀 보자꾸나.”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만나자고 했다.

염안섭 수동연세요양병원장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