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 기자 성기철의 수다] 자녀의 인생을 설계하지 말라는데

국민일보

[아재 기자 성기철의 수다] 자녀의 인생을 설계하지 말라는데

입력 2019-12-10 04:06

격려멘토형 부모가 가장 좋아
사사건건 진로 간여 불행 유발
주도보다 현명한 조언 바람직
관심분야 개발 지원 머물러야


신간 ‘왜 부모는 자녀를 불행하게 만드는가’를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경남 거창고 교장을 지냈으며, 노무현 정부 때 교육혁신위원장을 역임한 전성은이 저자다. 그의 주장은 오랜 교단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기에 확신에 차 있는 듯하다. “41년 동안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를 본 일이 없다. 그런데 학교생활 속에서 고민하고 당황해하며 방황하는 아이들의 원인이 부모가 아닌 경우 또한 본 일이 없다. 문제아라고 불리는 아이들의 원인 제공자가 부모가 아닌 경우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감히 나는 말할 수 있다. 적어도 학교에는 문제아가 없다. 문제 부모가 있을 뿐이다.”

책의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자녀를 불행하게 만드는 존재가 부모임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왜’라고 묻는다. 전성은은 책에서 부모 십계명이란 걸 실었다. 제1계명이 ‘자녀의 인생을 설계하지 마라’다. ‘너 하나만 믿고 산다고 말하지 마라’(제2계명) ‘자녀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마라’(제3계명) 등 다른 모든 계명은 선뜻 이해됐지만 제1계명은 곧바로 와닿지 않았다. 부모가 자녀 인생을 설계해 주면 자녀가 불행해진다고? 꼭 그럴까? 말은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과연 현실성 있는 얘기일까란 의문이 들어서다.

전성은의 주장에 나는 절반만 동의하고자 한다. 책임감 있는 부모라면 자녀의 행복한 삶을 위해 어릴 때부터 적절히 미래를 설계해주는 게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흔히들 아이는 하얀 도화지라고 한다. 순수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언제 어떤 상처를 받고 주저앉을지도 모르는 미숙한 존재이기에 부모의 역할은 참으로 중요하다. 누구나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멘토가 부모일진대 각별히 관심 갖고 앞날을 이끌어주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다.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유형을 자율형(방임형), 코치형(격려멘토형), 주도형(엄격교육형) 세 가지로 분류한다고 치자. 부모들에게 물어보면 아마 대다수가 코치형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주도형이 가장 많지 않을까 싶다. 자녀의 미래 불투명성에 대한 불안감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부모가 학업을 비롯한 자녀의 성장 과정에 간여하는 것은 너무나 정상적인 모습이다. 대학 입시 성공조건이라는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은 그냥 우스갯소리일 뿐이다. 아빠의 무관심이 결코 성공의 조건이 될 수 없을뿐더러 바람직한 것도 아니고 자랑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고, 또 그렇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에서 자녀를 적극 뒷바라지해주는 걸 누가 탓할 수 있겠는가. 자녀가 원할 경우 과외를 시켜줄 능력이 있으면 시켜주는 것이고, 강남에 학원 보내줄 능력이 있으면 보내는 것이다. 매년 이맘때 보도되는 ‘강남학원 밤샘 줄서기’도 손가락질할 일만도 아니다. 보통 사람들에겐 당연히 비정상적인 행태로 비치겠지만 그 부모 입장에선 자녀 사랑의 표현일 수도 있다.

문제는 아이의 타고난 성격이나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부모가 일방적으로 정한 목표에 따라 밀어붙이는 경우다. 초등학생 자녀가 원하지 않는데도 친구가 간다며 자정 넘도록 붙잡아두는 학원에 억지로 보내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경우 많은 아이가 혼돈의 늪에 빠져들게 된다. 언젠가 공익광고에 나왔던 ‘부모와 학부모의 차이’ 멘트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부모는 멀리 보라 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한다.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학부모는 꿈꿀 시간을 주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자녀가 진로를 결정하는 과정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부모 희망 위주로 방향을 잡는 경우다. 음악을 하고 싶은데 굳이 경영학과에 가라, 건축을 전공하고 싶은데 굳이 의대에 가라, 문학을 공부하고 싶은데 굳이 법대에 가라고 강요하는 바람에 괜히 먼 길 돌아가는 사람을 우리는 흔하게 볼 수 있다. 미래의 주인공은 어차피 자녀 본인이기에 부모가 주도자가 되려는 건 금물이다. 현명한 조력자로 머무는 게 좋지 싶다.

극성 부모들은 성인 자녀에게까지 인생을 좌지우지하려 한다. 최고 수준 명문대학에 입학하면 적성과 관계없이 무조건 고등고시 준비하라고 닦달하는 부모가 아직도 있다. 유교문화가 뿌리 깊은 지역 사람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자녀가 한사코 거부할 경우 기업체에 취직하되 특정 그룹에 가야 한다고 압박하는 경우도 있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시대가 가시화되는 시점임을 감안하면 어리석은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전성은의 부모 제1계명을 다시 생각해본다. 자녀 인생 설계와 관련, 예비설계나 기초설계에 관심 갖고 도와주는 것은 좋겠지만 본 설계는 오롯이 자녀한테 맡기는 게 바람직할 것 같다. 다양한 체험기회 제공, 창의력 및 관심분야 개발 지원, 독서 및 외국어 교육 등이 전자에 속한다면 전공 결정과 직업 선택은 후자에 속하겠다. 내가 이 계명에 절반만 동의하는 이유다.

저명 철학자의 조언을 들어보면 자녀의 최종 진로 결정에는 부모가 한 발짝 물러서는 게 확실히 옳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자녀)이 여러분과 함께 있지만 여러분 소유물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들에게 사랑을 줄 수는 있지만 생각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중략) 그들의 영혼은 여러분이 꿈길에서도 가볼 수 없는 내일의 집에 머무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들처럼 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지만 그들이 여러분처럼 되게 하려고 애쓰지는 마십시오.”(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오강남 옮김)


성기철 경영전략실장 겸 논설위원 kcsung@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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