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칼럼] 지지층 정치와 민주주의 타락

국민일보

[박형준 칼럼] 지지층 정치와 민주주의 타락

입력 2019-12-10 04:01

진영정치는 시민들을 정치적 편싸움에 내모는 행태
미움·분노 확대 재생산하는 회로에 갇히게 돼
민주주의의 타락 막으려면 진영 허무는 통합의 정치 필요


탄핵 문제로 시끌시끌한데도 12월 초 이코노미스트의 조사에 의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은 46%로 견조하다. 반면에 같은 조사에서 미국 의회가 잘하고 있다고 평가한 응답자는 16%에 불과하다. 또 미국인들 중 39%는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지만 53%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당 후보들이 트럼프보다 높은 지지율을 보이지만 미국 대통령 선거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그의 재선 가능성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이런 조사 결과는 미국 정치의 패러독스를 반영한다. 웃음꽃이 피는 경제와 눈살이 찌푸려지는 정치, 패권국가의 품격을 갉아먹는 대통령과 현찰을 챙겨주는 대통령의 두 얼굴,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의 절반이 상대 당 지지자와는 사돈 맺기조차 거부하는 정치적 양극화 등 그로테스크한 풍경화를 보는 것 같다.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정치학자들의 인기 있는 주제가 되는 이유다.

정치만 보면 한국도 미국과 닮은꼴이다. 대통령 지지율은 오랫동안 40%대를 유지하고 있다. 국회에 대한 평가가 바닥임은 조사가 필요 없다. 한쪽에서는 나라가 무너질 것을 염려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모든 게 야당 탓’일 정도로 정치적 양극화는 극심하다. 미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미국은 경제는 호조지만 한국은 경제도 바닥이라는 점이다. 덧붙이자면 외교 안보 인사 교육 등 국정의 주요 분야에서 잘한 일을 꼽기가 어려운데, 대통령 지지층은 콘크리트를 구축하고 있는 현상도 특이하다. 누구 말대로 ‘야당 복’일지 모르지만, 정치가 합리적 판단보다는 감정의 포로가 된 ‘정치의 왜곡’을 반영하는 현상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정치의 본질은 국가 공동체의 의사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 의사를 집행하는 힘이 권력이다. 이 의사결정과 권력의 행사 방식을 규정하는 것이 정치체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좋은 국가’(폴리스)는 올바른 정치체제와 최선의 사람들에 의한 국가 경영의 산물이다. 그는 ‘정치학’에서 군주정 귀족정 혼합정의 장단점을 고찰하면서, 이들 체제가 타락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그에게 정치체제는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인 의미만을 지녔다. 그는 체제보다 의사결정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 과연 ‘덕(Arete)‘을 갖추고 있느냐를 더 중시했다. 그 덕이란 역량 지혜 도덕성을 아우르는 탁월함을 의미한다. 이 탁월한 리더십은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국민들을 좋은 삶(행복)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타락한 리더십은 나라를 혼돈에 빠뜨리고 국민들을 적대와 분노로 갈라서게 만든다.

사실 ‘정치한다’는 말은 부정적 이미지로 덧씌워져 있지만 정치하는 일만큼 귀중한 일이 없다. 역사의 위대한 성취들은 위대한 정치의 산물 아닌 것이 없다. 정치는 나라의 흥망성쇠를 결정하고 내 행복의 조건을 구성한다. 그런데 국민들이 정치를 불신하여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야말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타락한 정치’의 부정적 효과다. 정치를 외면한 사람들이 실은 ‘타락한 정치’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된다는 역설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확인된다. 그래서 리더는 물론 시민도 지혜와 덕성을 갖춰야 민주주의는 타락하지 않는다. 그런 덕성은 정치에 고개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참여를 통해 발휘되고 신장된다.

문제는 정치 참여가 활발하다 하더라도 이것이 진영의 정치의 포로가 되면 정치인들끼리 편싸움하듯 시민들도 편싸움하는 결과를 빚는다는 것이다. 정치심리적 내전 상태가 되면 상대의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는다. 참여는 미움과 분노를 확대 재생산하는 회로에 갇히게 된다. 참여를 통해 정치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정치가 자신의 뜻을 잘 반영한다고 믿도록 하는 정치적 효능감(political efficacy)도 진영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진영의 벽을 부수는 통합의 정치보다 지지층만 보고 하는 정치는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에도 고질이 되었다. 보수 진보 정권을 막론한 현상이지만 현 정권에서 이는 유독 심해졌다. 적폐 청산할 때는 검찰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더니, 정권에 칼을 들이대자 검찰을 ‘악의 축’으로 몬다. 심지어 ‘조국 수호’를 검찰 개혁으로 둔갑시켜 지지층을 노골적으로 동원한다. 집권당의 경제 전문가를 총리에 선임하는 것조차 열성 지지자들이 반대하자 ‘앗 뜨거라!’, 없던 일이 된다. 개혁이 될지 개악이 될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공수처법에 왜 이리 목을 매는가? 게임의 규칙인 선거법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공정의 가치’를 왜 스스로 허물고자 하는가? 국회에서 교섭단체 셋 중 둘이 반대하는 사안을 4+1이라는 ‘집권당과 그 친구들’이 강행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모든 일에 지지층만 붙잡으면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지지층에 아부하는 정치, 그것이 민주주의의 타락이다. 이 민주주의의 타락을 막고 위대한 정치를 건져낼 방법은 없는 것일까?

박형준 동아대 교수(전 국회사무총장)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