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박상익] 종교적 가치관의 실천

국민일보

[청사초롱-박상익] 종교적 가치관의 실천

입력 2019-12-11 04:01

미국 사회학자 필 주커먼은 2005년 5월부터 14개월 동안 덴마크에서 살았다. 아내와 두 딸이 함께했고, 그곳에서 아이가 하나 더 태어났다. 아이들은 덴마크 학교에 보내 교육했다. 이 기간에 그는 사회학자로서 수백명의 덴마크인·스웨덴인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해 두 나라의 종교 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물이 ‘신 없는 사회’(마음산책, 2012)다.

덴마크와 스웨덴 두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종교성이 적은 나라다. 대부분의 사람이 종교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예배를 드리지도 않고, 기도도 하지 않는다. 그의 책 제목대로 ‘신 없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주커먼에 따르면, 덴마크는 정치인과 공무원의 청렴도에서 세계 4위, 스웨덴은 6위다. 경제 정의는 어떨까. 지니계수를 바탕으로 한 경제적 평등 면에서 덴마크는 세계 2위, 스웨덴은 4위다. 세계 경제포럼에 따르면 스웨덴의 국가경쟁력은 세계 3위, 덴마크는 4위다. 가난한 나라를 위한 자선 행위에서 덴마크는 2위, 스웨덴은 3위다. 독일의 싱크탱크인 한스-뵈클러 재단은 사회적 정의의 확립이 어느 정도인지를 측정해 순위를 매겼는데, 전 세계에서 가장 비종교적인 나라인 덴마크, 스웨덴이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주커먼은 만약 이 세상에 가장 ‘안전하고 견실한’ 사회가 있다면 덴마크가 바로 그런 곳이라고 단언한다. 세계의 위대한 종교들은 병자와 노인, 가난한 사람, 고아와 약자를 돌보고 자비와 자선을 행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선의를 베풀고, 이기심보다 공동체를 생각하라는 도덕적 가르침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이런 종교적 가르침을 가장 성공적으로 제도화해서 실천하고 있는 곳이 세계에서 가장 비종교적인 나라들이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흔히 기독교는 ‘빛과 소금’으로 자처한다. 그런데 종교성이 가장 약한 덴마크, 스웨덴이 공무원의 청렴도, 경제적 평등, 사회적 정의, 최빈국 원조 등 모든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2011년 세계 1인당 국민소득 순위를 보면 덴마크와 스웨덴은 각각 7위와 8위였다(미국은 15위). 두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이기도 하다. 반면 기독교 국가인 미국은 가장 불평등한 나라에 속하며, 부자 나라임에도 경제적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주커먼의 큰딸이 다니던 초등학교 교사 소니의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종교를 믿지 않아도 내 가치관이 전부 종교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게 중요해요. 성경 이야기들이 우리 가치관의 근본이에요.” 성경이 제시하는 가치관과 사회적 정의, 경제적 평등이 국민 각자에게 내면화되어 삶 속에서 당연한 것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뜻이다.

예수는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했다(마태복음 7장 17절). “말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고도 했다(마 7장 21절). ‘열매’와 ‘실천’을 놓고 보면 종교가 차고 넘치는 미국보다 덴마크와 스웨덴이 예수의 기준에 훨씬 잘 부합하는 모범국가일지도 모르겠다.

월간 ‘기독교사상’ 2003년 3월호에서 서진한 주간은 한국개신교가 ‘그 나라와 그 의’가 아닌 ‘현실의 성공’을 추구하게 되면서 기독교를 바라보는 세상의 눈이 싸늘해졌다고 지적한다. “사회적으로 기독교인을 폄하하는 분위기가 고착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입니다. 예전에는 예수쟁이라고 하면 싫어하면서도 그 신실성은 믿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금융거래에서도 목사, 장로, 교인이라고 하면 절차를 더 까다롭게 만든다고 합니다. 사회적인 신뢰, 도덕적인 신뢰도 완전히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났다. 지금은 더 나아졌을까. 주커먼의 시각으로 보면 현대사회는 둘로 나뉜다. 말로만 주여, 주여 하며 종교가 넘치는 사회 그리고 종교적 가치관을 내면화하여 예수의 정신을 묵묵히 실천하는 사회다. 어떤 선택이 옳은 걸까.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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