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홍규의 문학스케치] 당신이 사랑한 이야기

국민일보

[손홍규의 문학스케치] 당신이 사랑한 이야기

한 개인의 경험은 다른 사람의 경험과 얽히기 마련… 사랑한 이의 사연이 곧 자신의 이야기

입력 2019-12-14 04:04

소설 창작 강의를 하다 보면 나이 지긋한 분들의 습작소설을 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나 역시 한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이들만이 보여줄 수 있을 법한 삶에 대한 통찰력과 지혜 같은 걸 은근히 기대하게 된다. 이런 기대가 자연스러운 만큼 그런 소설에서 초심자들이 겪는 흔한 실수를 발견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노년에 이르러 소설 쓰기에 자신을 바치려는 이들의 소설에서 내가 느끼게 되는 안타까움은 문학적 완성도와는 무관하다. 무례를 무릅쓰고 달리 표현하자면 그이가 쓸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 그이가 아니고서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낭비되고 있는 듯해 안타까운 경우들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경험은 소중하다. 소중하지 않은 경험이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소유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일 테니까. 한 번 경험한 것을 경험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테니까.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그것들은 우리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경험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사연이 만들어지고 결국에는 그이의 역사가 된다. 한 사람의 역사. 우리가 개인사라 부르는 이 역사도 역사다. 그러니까 역사를 그대로 기술한다고 해서 소설이 되는 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소중한 개인사를 소설로 쓸 때 고려해야 할 점이 많겠지만 그중 두 가지만 말하고 싶다. 첫째는 경험을 진정으로 소유하는 문제이다. 내 경험인데도 내 경험일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주위 환경과 무관하게 스스로의 경험에 몰두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내 경험이기에 내 것이 분명하다고 속단하는 태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내 경험을 가장 자주 오해하는 사람은 나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다가가는 대신 낯선 이에게 그러듯 조심스럽게 그러나 자신의 경험인 것은 분명하므로 애정을 잃지 않은 채 부드럽게 다가가 어루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역사를 다루려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객관화할지를 고민할 게 아니라 어떻게 주관화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다음으로 고려해야 할 점은 말하는 방식이다. 지난 글에서 밤마실을 나와 이야기꽃을 피우던 아주머니들에게는 당신들만의 이야기 방식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미처 언급하지 못한 이야기 방식 가운데 하나는 이런 거였다. 그런 자리에서는 누군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이가 이야기를 끝낼 때까지 잠자코 듣는 법이란 없었다. 온갖 감탄사를 동원해 맞장구를 치고 끼어들며 말을 끊고 자기 생각을 덧붙이고 비슷한 다른 일화를 끌어들이고…. 또한 이런 잦은 훼방에도 불구하고 한번 이야기를 시작한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끝맺지 못한 경우란 없었다. 생각해 보면 기이한 일이다. 듣는 이들이 끊임없이 끼어들어 방해하는데도 말하는 이는 자기가 할 말을 기어이 다 하고야 만다. 그러면 한 사람이 하나의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도 무수히 많은 사람의 사연을 알게 된 듯한 기분이 들었고 조금 과장하자면 인간사 전체를 한꺼번에 보아버린 듯한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이 노련한 이야기꾼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도 듣는 이가 마음껏 끼어들 수 있도록 내버려 둘 줄 아는 이들이었다.

하나의 사연은 다른 사연과 떨어진 채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일은 다른 많은 일과의 관계망 속에 있고 이 관계망을 읽어낼 수 있을 때 그처럼 사소한 일에 담긴 심오한 의미를 알아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관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자기 자신과의 관계이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어느 아주머니가 이건 우리 고향 마을에 살던 사촌 언니 이야기인데 하고 서두를 떼며 그 사촌 언니의 비극적인 연애사를 풀어내면 곧이곧대로 알아들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어쩌면 그 이야기는 사촌 언니의 사연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풀어낸 당사자의 사연일 수도 있음을, 그렇다는 사실을 다 알면서도 듣는 이들이 모른 체했을 수도 있음을 헤아리게 되었다. 다시 말해 소설에서 내가 바라는 건 당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한없이 쓰고 또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당신 이야기를 하지 않았음에도 당신 이야기를 무수히 해왔음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당신 이야기를 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이 소설이 당신 이야기임을 알아보게 될 것이다.

손홍규(소설가)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