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노석철] 중국의 회색코뿔소와 블랙스완

국민일보

[특파원 코너-노석철] 중국의 회색코뿔소와 블랙스완

입력 2019-12-11 04:05

“우리는 ‘블랙스완’을 고도로 경계하고 ‘회색 코뿔소’를 철저히 예방해야 한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 1월 22일 각 성의 지도자들과 부장(장관)들을 소집한 공산당 중앙당교 세미나에서 한 얘기다. 중국 최고 지도자가 경제 위기를 직접 거론한 것은 이례적이어서 반향이 컸다. 블랙스완은 가능성이 작지만 발생하면 충격이 큰 위험을, 회색 코뿔소는 뻔히 보이지만 무시하다 크게 당하는 위험을 뜻한다. 중국에서는 부채 문제, 부동산 거품, 금융 버블 등이 회색 코뿔소로 꼽힌다.

그 후로 거의 1년이 다 됐지만 상황은 더욱 꼬였다.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로 중국 경제는 휘청이고 있다. 2010년 10.6%를 기록했던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지난 3분기 6%까지 떨어졌다. 내년에는 6%가 깨지는 ‘포류’(破 6%) 시대가 불가피하다. 중국 사회과학원은 내년 성장률을 6%로 예상했지만, 무디스와 골드만삭스는 5.8%로 내다봤다. 류스진 전국정협 경제위원회 부주임은 최근 포럼에서 중국의 2020~25년 잠재성장률을 5~6% 사이로 전망했다. 그는 “한국도 1990년대에 (고성장에서) 곧바로 5%대로 떨어졌고, 대만도 80년대 후반 성장률이 10%대에서 5%대로 추락했다”며 중국이 중속성장으로 접어드는 현상일 뿐이라고 위기론을 일축했다. 하지만 중국 경제는 미·중 무역전쟁으로 심각한 내상을 입고 있다. 중국의 내년 성장률이 5%대로 떨어지면 실업률 상승과 소비침체, 부채 악화 등 연쇄 파장이 우려된다. 중국은 경기부양에 나서고 싶지만 과잉부채라는 회색 코뿔소를 키울 수 있어 진퇴양난이다. 과잉생산 해소, 국유기업 개혁, 디레버리징(부채 축소) 등 ‘공급측 구조개혁’도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주춤해졌다.

반면 미국은 11월 실업률이 3.5%로 69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상대적으로 호황이다. 중국이 농산물 구매만 제대로 해주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큰 걱정이 없어 보인다. 결국, 조급한 쪽은 중국이다. 중국은 지난달 미국산 대두를 전년 대비 더 사들였고, 렌홍빈 중국 상무부 부부장은 “가능한 한 빨리 미국과 중국이 합의하기를 희망한다”며 적극 손을 내밀었다. 미국도 오는 15일 예정된 중국산 추가관세 유예를 내비쳐 ‘1단계 무역 합의’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양측의 최종 타결까지는 여전히 험난하다. 게다가 미국은 무역협상 외에 다른 대중국 공세는 계속 이어가는 투트랙 전략을 쓰고 있다. 중국에 미국이란 코뿔소의 그림자가 계속 커지는 셈이다.

리커창 중국 총리가 최근 시안의 삼성전자 공장을 전격 방문하고, 중국 정부가 LG화학 등 한국 전기차 배터리 업체 규제를 푸는 것은 새로운 출구전략으로 보인다. 미국에 막힌 벽을 한국과 일본, 유럽 등 주변을 통해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기업들에 기회다. 미국의 압박에 다급해진 중국이 각종 규제를 풀면서 현지 여건이 좋아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렇다고 선뜻 중국의 손을 잡기엔 꺼림칙하다. 불신 때문이다. 중국은 국력이 급속하게 커지자 과거 조공을 받던 중화민족의 DNA가 발동해 오만하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오만한 사례는 한국에 사드(THAAD) 보복 등 차고 넘친다. 중국은 내정 간섭이라고 하지만 국내 인권탄압 문제도 서구의 불신 요인이다. 홍콩 시위대를 강경 진압으로 일관하고, 신장 위구르족 사람들을 무더기로 잡아들여 정신교육을 시키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장기집권 구상도 서구의 인식으로는 이해 안 되는 시나리오다. 중국 내에서는 시 주석이 최소한 20년, 길게는 30년간 집권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중국의 거대한 영토와 인구를 관리하려면 강력한 통치력이 필요하다는 게 이유다. 그게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핵심일 수도 있겠다. 조그만 개발도상국이라면 모르지만, 미국을 넘보는 세계 2위 강대국에서 가능할까. 시 주석의 1인 통치체제는 마오쩌둥 시대의 대약진 운동 같은 비극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중국에서도 나온다. 이런 게 시 주석이 말한 블랙스완일지도 모르겠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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