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배병우] ‘인플레이션 파이터’의 죽음

국민일보

[한마당-배병우] ‘인플레이션 파이터’의 죽음

입력 2019-12-11 04:05

인플레이션은 한때 세계 경제의 재앙이자 미국 대통령들의 최대 골칫거리였다. 특히 극단적 케인스주의자들의 재정확장정책과 유가 충격(오일 쇼크)이 겹쳤던 1970, 80년대가 심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물가와 실업률이 함께 치솟자 1971년 8월 15일 텔레비전 생방송을 통해 미국 내 모든 물가와 임금의 동결을 선언했다. 돌이켜보면 자유시장 경제인 미국에서 이런 ‘무식한’ 가격 통제가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뒤를 이은 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 대통령도 온건한 통화 긴축과 가격 통제를 무기로 인플레이션을 잡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1979년에는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10%를 넘어섰다.

궁지에 몰린 카터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기용한 사람이 폴 볼커다. 볼커는 존 F 케네디, 린든 존슨 행정부에서 재무부 관료로 일했다. 그는 한마디로 ‘악성 인플레이션의 등뼈를 부숴버렸다’. 그의 처방은 인플레이션의 고삐를 잡을 때까지 단기 금리를 올리는 것.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도 신임을 받은 볼커는 1981년 7월 연방기금금리(정책금리)를 최고 22%까지 올렸다. 물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는 미국인들의 기대 인플레이션 심리를 꺾기 위해 경제가 깊은 불황으로 빠져드는 것도 불사한 ‘충격 요법’이었다.

대가는 비쌌지만, 그의 충격 요법은 성공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미국 경제는 안정 궤도에 올라섰고, 이후 10여년간의 장기 호황이 이어졌다. 그 토대를 마련한 최대 공로자가 볼커라는 데 별 이견이 없다. 키가 2m가 넘는 볼커 전 의장은 체구뿐 아니라 금융감독과 통화정책에 남긴 족적으로도 거인이었다. 그 거인이 8일(현지시간) 별세했다. 뉴욕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 등 세계 주요 언론이 장문의 추모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세계 경제의 풍경은 급변했다. 이제 주요 국가 중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곳은 없다. 오히려 물가관리 목표(연간 물가상승률 2%)를 훨씬 밑도는 저물가 때문에 전전긍긍한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지난 10월 인플레이션이 경제지표로서의 의미를 잃었다며 ‘인플레이션의 종언?’이라는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인플레이션 파이터’ 볼커 의장이 세상을 떠난 지금 각국 중앙은행의 사명은 정반대인 셈이다. 기대 인플레이션뿐 아니라 물가도 지속해서 하락하는 새로운 경제 환경에서 어떻게 탈출구를 찾느냐는 것이다.

배병우 논설위원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