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북핵위기 극복 주역 ‘군림’ 않았던 주한 미 대사

국민일보

1994년 북핵위기 극복 주역 ‘군림’ 않았던 주한 미 대사

세계감리교평화상 수상 제임스 레이니 목사“평화만 꿈꿔야”

입력 2019-12-1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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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레이니 목사(왼쪽 두 번째)가 지난달 21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그레이스연합감리교회에서 박종천 세계감리교협의회 회장(왼쪽 세 번째)에게 ‘2019년 세계 감리교 평화상’을 받고 있다. 세계감리교협의회 제공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제임스 레이니(92) 목사가 지난달 21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그레이스연합감리교회에서 세계감리교협의회(회장 박종천 목사)가 수여하는 ‘2019년 세계 감리교 평화상’을 받았다. 평화와 화해, 정의에 이바지한 개인과 단체에 주는 이 상은 1976년 제정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인종분리정책에 맞서 싸운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세계 평화와 인권을 위해 공헌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냉전체제 종식에 기여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 소련 대통령 등이 수상했다.

수상식에서 레이니 목사는 한국을 언급했다. 그는 “6·25전쟁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끔찍했고 큰 상처를 남겼다”면서 “되풀이돼서는 안 될 일로 이제는 평화만 꿈꿔야 한다”고 했다. 그는 마태복음 5장의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는 구절을 빌려 “모두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일하고 기도하자”고 권했다.

박종천 회장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외교정책을 ‘무시’에서 ‘협력’으로 바꾼 주인공이 바로 레이니 목사”라면서 “미국 언론과 인터뷰할 때도 항상 한반도의 평화를 강조할 정도로 한반도 평화 정착에 관심이 크신 분”이라고 평했다.

주한 미국대사로만 알려진 그와 대한민국의 인연은 해방 직후인 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인에서 목사와 교수, 대학총장, 대사로 이어지는 그의 삶은 여러 지점에서 한국과 만난다.

그는 주한미군으로 처음 한국을 찾았다. 정보 분야에서 활동하던 그는 김구 여운형 송진우 등 정치지도자의 암살 사건을 조사하면서 한국의 갈등상을 경험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미국 예일대로 돌아가 신학을 전공한 그는 미국연합감리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59년 선교사 파송을 받아 가족과 함께 다시 한국을 찾았다.

레이니 목사는 선교사로서 학생들을 만나 교류하는 데 힘썼다. 연세대 신학과에서 기독교윤리학을 강의했고 ‘아가페’라는 기독 학생 동아리를 만들어 학생들의 신앙생활을 도왔다. 민주화운동에 이바지했던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을 조직하는 데도 레이니 목사의 공이 컸다.

60년대 중반 예일대로 돌아간 그는 기독교윤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 밴더빌트대 신학부 교수로 임용됐다. 박봉배 전 목원대 총장과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밴더빌트대 제자들이다.

서 교수는 11일 “밴더빌트에서 유학하던 66~69년 캠퍼스에서 함께 지냈는데 인품과 신앙, 신학이 모두 훌륭하셨다”면서 “신학의 선배이자 교수로서 큰 사랑을 주셨다”고 회상했다. 그는 “한국을 깊이 사랑하는 분이고 늘 우리 가족과 만나 한식을 먹으면서 늘 한국 이야기를 하셨다”면서 “특히 김치를 무척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레이니 목사는 77~93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에머리대 총장을 지냈다. 에머리대는 듀크대 밴더빌트대와 함께 남부의 하버드로 불리는 명문대학이다.

레이니 목사(오른쪽)가 지난해 11월 미국 에모리대 카터센터에서 열린 2018 한반도 평화를 위한 원탁회의에서 지미 카터 미국 전 대통령과 대화하는 모습. 연합감리교뉴스 제공

82년에는 대통령에서 퇴임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에머리대 국제정치학 교수로 초빙했다. 대학에 카터센터를 설립해 카터 전 대통령이 세계평화의 중재자로 활동할 기틀도 마련했다. 이때 인연이 94년 북핵 위기 때 카터 전 대통령을 북한 특사로 파견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친한파였던 레이니 목사는 한국에 친구도 많았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김관석 강원용 문익환 문동환 박형규 목사와도 가까웠다. 이런 우정이 그가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했을 때 큰 자산이 됐다. 그는 93년 10월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해 97년 2월까지 재임했다.

레이니 목사가 1994년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서울 마포구 동교동 자택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국민일보DB

대사로서 그는 ‘총독 같은 미국대사’ 대신 ‘한국의 친구 미국대사’로 한국인들에게 다가갔다. 94년 한반도 북핵 위기를 평화롭게 극복한 건 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다. 북한이 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자 한반도는 전쟁위기에 빠졌다. 미국은 94년 항공모함을 보내 북한의 핵시설을 타격하기 위한 작전을 준비하며 북한을 압박했다. 한반도가 전쟁터가 될 상황이었다.

레이니 목사는 주한 미국대사로서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확고한 소신을 갖고 빌 클린턴 대통령을 설득했다. 군사적 충돌 대신 평화의 길을 모색하자며 카터 전 대통령을 북한에 특사로 보내자고 강력하게 추천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한반도는 전쟁위기를 극복했다.

박 회장은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그의 용기와 창조적 아이디어, 지속성이 94년 북핵 위기를 극복한 동력이 됐다”면서 “세계 감리교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유도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들에 있다”고 전했다.

세계감리교협의회는 전 세계 감리교회의 협력과 신학적 협의를 위해 설립된 협의체로 2016년 미국 휴스턴 총회에서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박 목사를 회장에 선출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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