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잖아 인공지능 로봇이 ‘살인의 추억’ 파헤친다

국민일보

머잖아 인공지능 로봇이 ‘살인의 추억’ 파헤친다

경찰청 치안정책연구소 스마트치안지능센터 가보니…

입력 2019-12-13 04:05
치안정책연구소 스마트치안지능센터 팀원들이 충남 아산 치안정책연구소 회의실에서 스크린에 서울시 범죄지도를 띄워놓고 회의를 하고 있다. 스마트치안지능센터는 미래의 인공지능(AI) 형사를 꿈꾼다. 치안정책연구소 제공

2038년의 어느 날 한 베테랑 형사의 파트너로 인공지능(AI) 로봇이 부임한다. 이 로봇은 현장에서 시신의 상흔을 분석해 용의자 특징과 동기, 살해방법을 분석한다. 주변 환경을 관찰해 용의자의 외양과 도주경로, 시간을 예상하고 형사에게 조언한다. 게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 묘사하는 미래 수사의 모습이다.

시간을 더 건너뛴 2054년의 미래. 이번에는 범죄를 한 발짝 앞서 예측하는 ‘프리크라임’ 시스템이 무고한 한 남성을 미래의 살인 용의자로 지목한다. 남자는 시스템의 예측을 벗어나려 분투하지만 결국 예상된 대로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영화로도 제작된 과학소설(SF) ‘마이너리티리포트’의 줄거리다.

어느덧 미래는 현실에 다가올 채비를 하고 있다. 치안정책연구소 스마트치안지능센터는 지난 6월부터 자체 분석을 활용한 범죄 빅데이터 연구를 하고 있다. 수사에 단서를 제공하는 인공지능 개발이 목표다. 연구결과는 일선에서 참고자료로 이미 시범 활용되는 중이다. 국민일보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치안정책연구소 스마트치안지능센터 팀원들을 지난달 2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만났다.

수사 조언하는 ‘인공지능 형사’ 눈앞에

지난 6월 경기도 오산의 한 야산에서 17세로 추정되는 남성의 백골이 발견됐다. 사망 시점은 1년 전으로 추정됐다. 시신에서 코뼈와 왼쪽 광대 골절이 관찰됐다. 경찰은 폭행으로 인한 사망을 의심했지만 단서는 거기까지였다. 경험과 감만으로는 해결이 막막했기에 수사팀은 스마트치안지능센터에 조언을 의뢰해 왔다.

연구팀은 지난 10년간의 국내 암매장 살인사건 124건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몇 가지 특징이 드러났다. 피의자는 대부분 남성이고, 비계획 범죄에 단독범행인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사실은 매장 장소 가까운 곳에서 벌어진 살인이 많다는 점이었다. 연구팀은 암매장 피해자가 10대 남성인 사건은 또래집단이 피의자인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이들은 ‘남성을 포함한 10대 가출 청소년 무리가 매장지에서 가까운 장소에서 비계획적 범죄를 저지르고 인근 야산에 묻었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어 인근 10대 가출청소년 무리 위주로 탐문후보군을 수사팀에 조언했다. 김희두 경위는 “수사 결과 예상에 정확히 들어맞는 가출한 청소년 용의자들이 경찰에 붙잡혔다”고 말했다. 연구팀의 분석과 수사팀의 노력이 함께 이룬 결과였다.

연구팀은 내년 이 같은 분석을 인공지능의 영역으로 옮길 계획이다. 오산 사건의 경우 한글파일 등으로 작성돼 있던 수사 자료를 일일이 파악하고 분류해 데이터화를 시키는 작업이 필요했다. 스마트치안지능센터 장광호 경정은 “인공지능이 알아서 기록을 세부 파악해 분류하도록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목표는 전화 사기(보이스피싱)다. 장 경정은 “자동화된 단어 패턴 분석으로 추세를 보거나 서류 속 전화번호나 계좌번호를 특정해 동일한 것이 사용된 다른 사건을 찾아보는 방법을 시도하려 한다”고 말했다. 성공한다면 새 사건을 맡겼을 때 인공지능이 유사한 유형을 분석해 수사 단서를 제공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수많은 바둑의 수를 경험적으로 학습해 새 수를 도출하는 ‘알파고’처럼 사건을 학습해 새로운 결과를 도출하는 셈이다.

범죄도 내다보는 인공지능

스마트치안지능센터는 지난 6월부터 매달 자체 분석으로 범죄 발생량을 전망해 왔다. 지역별로 어떤 범죄가 기승을 부리거나 혹은 잠잠해질지 미리 내다보는 식이다. 경찰에 축적된 범죄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분석이다. 경찰이 외부와의 협업으로 비슷한 시도를 한 적은 있지만 자체적으로 시도한 것은 스마트치안지능센터가 유일하다.

스마트치안지능센터 소속 직원들은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코딩을 기초부터 배웠다. 지금의 예측치는 기업 영역에서 널리 쓰이는 비즈니스인텔리전스(BI) 프로그램을 활용한 분석에 페이스북이 사용하는 파이썬 예측 알고리즘을 직접 적용했다. 최근 연평균 경찰에 접수되는 신고 건수는 1300만건이 넘는다. 컴퓨터에 넣어 분석하지 못할 수준의 정보량이라 서버로 전송시키는 방법을 쓴다.

데이터가 많을수록 예상은 정확하다. 장 경정은 “전국 단위, 혹은 신고 접수량이 많은 경기도 예상치는 실제 범죄 발생 수와 편차가 매우 적다”면서 “유형별로는 발생량이 많은 교통사고가 예상에서 0.1% 수준 오차에 머물 정도로 잘 맞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작은 지역 단위나 발생 자체가 적은 범죄의 경우 아직 적중률이 높지 않다.

범죄 발생량 예측은 얼마나 효율적으로 조직 내 자원을 배분할지에 참고 가능하다. 장 경정은 “기동대나 방범순찰대처럼 탄력적 인력운용을 하는 부서는 어느 지구대에 어떤 우선순위로 인력배치를 할지를 정할 수 있다”면서 “중기적으로도 사건 발생 경향을 파악·예측해서 부서 간 인력조정에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측치는 좀 더 세밀한 인력 배치에 활용되기도 한다. 특정시간대 신고량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 장소 가까이에 순찰인력을 대기시키는 식이다. 연구팀은 지난 9월 하루를 6시간씩 4개 단위로 쪼갠 3년간 신고 데이터를 분석, 서울 시내에서 가장 신고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장소를 일선 현장에 제공했다. 그 결과 실제로 경찰의 출동 소요시간이 40초가량 줄었다.

예측치로 새 범죄요인을 탐지할 수도 있다. 김종윤 경사는 “실제로 최근 강원경찰청에서 발생하는 신고량이 예상치보다 45%가량 줄어 원인을 알아봤더니 위수지역 확대에 따른 것이었다”면서 “인천 송도에서는 갑자기 신고량이 증가해 원인을 찾아봤더니 최근 인구 유입과 연관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됐다”고 설명했다.

장 경정은 “치안 활동은 갈수록 많은 자원 투입이 요구될 것”이라면서 “경찰력으로는 한계가 있어 결국 자원투입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경정은 “객관적 근거나 판단 없이 자원을 배치한다면 비합리적 관행에 좌지우지될 수 있다”면서 “우선순위에 사용할 과학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빅데이터 연구는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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