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나이 수업’] ‘인생 농사’ 추수의 때에 준비해야 할 것들

국민일보

[100세 시대 ‘나이 수업’] ‘인생 농사’ 추수의 때에 준비해야 할 것들

입력 2019-12-13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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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영은>

12월 중순에 접어들면서부터 그동안 여기저기서 맡아 진행하던 어르신들과의 수업을 하나둘씩 마무리하는 중이다. 한두 번으로 끝나는 특강을 제외하고 연속 수업은 짧으면 네 번 정도, 길게는 총 열두 번 이상의 수업을 하게 되는데 이러다 보니 정이 깊게 들어 어르신들과 헤어질 때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함께 눈물을 흘리는 일이 많다.

한 군데 소속돼 있는 강사가 아니니 기관이나 단체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예산을 책정한 후 나를 콕 짚어 지목해서 불러야 어르신들과 다시 만날 수 있으므로 기약 없는 헤어짐이라서 그런지 더욱더 서운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눈물의 이유는 남은 노년을 어떻게 잘 보낼지,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존엄하고 품위 있게 떠나기 위해서는 또 어떻게 해야 할지 울고 웃으며 함께 나눈 그 시간이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했기 때문이 아닐까. 강사인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어르신들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믿고 있다.

마지막 시간에 ‘올 한 해 농사’가 어땠는지 여쭈어보니 다들 희미하게 웃으며 하시는 말씀들이다. “… 나이 먹은 만큼 몸이 좀 더 안 좋아졌지만 이만큼 버틴 것도 어딘가 싶다, 힘든 일도 있었지만, 식구들 무탈하니 됐다, 그 어느 해보다 몸이 많이 아프고 자식들도 일이 잘 안 풀려 마음고생이 많았지만, 새해에는 좀 나아지려니 기대하고 있다, 나이 먹고 보니 한 해 한 해 넘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딱히 재미나고 좋은 일은 없었지만 평범한 게 최고로 잘 산 거라고 생각한다, 자식들이나 주위에 폐 끼치지 않고 잘 살았으니 한 해 농사 잘 지은 것 같다. …”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오늘도 요양원에서 긴 하루를 마감하고 계실 친정어머니와 병약해진 몸으로 아슬아슬하게 일상을 채웠을 시부모님 생각이 났다. 각각 자식 셋을 낳아 먹이고 입히며 공부시켜 가정을 이루도록 뒷바라지하는 수고가 만만찮았지만, 최선을 다해 감당했고, 이제 비로소 그 짐을 내려놓고 쉬어볼까 하는 노년에 이르고 나니 몸도 마음도 말 그대로 성한 곳 없이 약해져 누군가의 도움과 돌봄 없이는 단 하루도 버틸 힘이 남아 있지 않다.

나를 포함해 자식들은 자식들대로 본인들 건강의 적신호와 은퇴, 자식들 독립과 결혼, 손주 양육 등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 끄느라 벅찬 50, 60대인데 노부모님 수발에까지 늘 신경이 곤두서 있는 까닭에 고달프기 짝이 없다.

한 해 농사는 그렇다 치고 어르신들의 ‘인생 농사’는 어떨까. 교회 노인대학 수업에서 ‘내 인생 최고의 농사’라는 제목으로 집단 활동을 했는데, 가장 많이 나온 것은 신앙의 유산, 좋은 관계, 품위 있는 마무리를 위한 준비, 이 세 가지였다.

‘신앙의 유산’은 자손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꼭 남기고 싶고 그러기 위해 늘 기도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죽기까지 노력하겠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좋은 관계’는 신앙을 가진 어른으로 집안에서나 교회에서나 밖에서 올바른 관계를 위해 먼저 본을 보이고 내리사랑을 통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이었다. 또한 ‘품위 있는 마무리’를 위해서는 흔히 웰다잉(well-dying)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하나께서 부르시는 그날 정갈한 몸과 마음으로 떠날 수 있도록 최선의 준비를 하고 싶다고들 하셨다.

나의 인생 농사, 새해 농사는 어떨까. 80, 90대의 부모님과 20대 후반 자식들 사이에서 ‘낀 세대’의 현실을 매일같이 뼈저리게 실감하는 일상은 해가 바뀌어도 계속될 것이다. 쉬지 않고 내 몫의 농사를 열심히 짓는 하루하루가 이어질 것이다. 때론 어깨의 짐이 무거워 한숨을 내쉬기도 하고, 노쇠한 부모님을 위해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는 무력감에 눈물을 흘리기도 할 것이다. 자식들의 작은 성취에도 얼굴 가득 웃음이 피어나고 좋은 사람들과 나누는 따뜻한 밥 한 끼에 다시 힘을 얻기도 할 것이다.

부모님 살아계시니 언제든 달려가 얼굴 뵐 수 있고, 귀가 어두워 힘이 좀 들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아직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함께 어울려 나이 들어갈 친구들이 있으니 또 한 해 살아갈 힘은 충분하리라. 이 무한 긍정의 마음이 기특했을까.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준비하는 이때 이런 성경 말씀을 내게 주셨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새번역, 데살로니가전서 5:16~18)

유경 어르신사랑연구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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