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사] 한여름 침낭 안에서 발견된 시신, 주민세 6000원 독촉장

국민일보

[이슈&탐사] 한여름 침낭 안에서 발견된 시신, 주민세 6000원 독촉장

[빈곤의 종착지, 무연고 죽음 370명의 기록] ② 무연사의 마지막을 추적하다

입력 2019-12-17 00:10
지난 10월 무연고자로 세상을 떠난 최규대(가명·61)씨가 서울 강동구 집에 남긴 각종 미납 고지서 모습. 윤성호 기자

전신 부패, 뼈까지 드러나… 주변에는 구더기·번데기
가족과 사회가 외면한 결과 처연한 사연 품고 숨지기도
10년도 지난 구형 휴대전화엔 가족 연락처 하나도 기록 안돼


한창훈(가명·58)씨는 죽은 지 7개월여 만에 발견됐다. 김형식(가명·56)씨는 주택가 1층 주차장에서 죽은 지 4~5일 후 발견됐다. 겨울 차림으로 한여름에 발견된 시신, 사람들이 오가는 골목길에 방치돼 훼손된 시신은 가족과 사회가 외면한 죽음의 극단적 결과물이다. 이른바 ‘도시의 미라’가 된 무연고 사망자들에겐 어떤 비통한 사연이 있는지 생전 마지막 장면들을 추적해봤다.

시신조차 온전치 못했던 외로운 죽음

한씨는 지난 7월 17일 서울의 26년 된 다세대 임대주택 2층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30도까지 오른 뜨거운 열기가 습기를 머금은 후덥지근한 날이었다. 경찰이 닫힌 문을 따고 들어갔더니 거실 한가운데 놓인 두꺼운 겨울 침낭 안에 ‘미라화’된 시신이 있었다. 주변에서 구더기와 번데기가 발견됐고, 전신 부패가 진행됐다. 일부 부위는 뼈까지 드러났다. “운구할 때 관의 무게가 너무 가벼워 두 사람이 들기에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는 게 장례 관계자의 말이다.

한씨가 눈을 감은 건 지난해 12월 20일쯤이다. 정확한 사망 날짜는 알지 못한다. 검안의가 마지막 생활 반응과 부패 상태로 비춰볼 때 발견 시점 6~7개월 전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한 날짜가 그 무렵이다.



지난달 그곳을 찾았다. 골목마다 비슷한 규모의 붉은 벽돌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전형적인 옛날 주택가 모습이었다. 대로변에서 주택가 사이로 들어가자 골목을 휘감는 바람이 스쳤다. ‘1년 전 딱 이런 추위에서 죽었겠구나.’

여러 가구가 사는 집의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빈집처럼 조용했다. “계세요?” 외침에도 인기척이 없었다. 대문 앞에 나온 음식물쓰레기통만이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지하 1층~지상 3층인 집은 6가구가 살고 있었다. 한씨 집은 2층이지만 301호 문패가 달렸다. 치킨, 중국집, 보청기 등 전단 광고지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전단지도 여러 개였다. 새로 사람을 들이지 못한 모양이다.

경찰 조사와 마지막 기록, 주변 이웃의 말을 종합해보면 한씨가 죽은 뒤 그를 찾은 사람은 과거 직장 동료 A씨와 임대료 미납 문제를 해결하려던 B씨뿐이었다. B씨는 2018년 12월, 2019년 1월(두 차례)과 7월 모두 네 차례 그의 집 문을 두드렸지만 문은 닫혔고 답이 없어 그냥 걸음을 돌렸다고 한다. 같은 동네에 살던 전 직장 동료가 ‘연락이 너무 닿지 않아 걱정된다’며 신고해 그제야 죽음이 세상에 알려졌다.

구청은 유일한 가족이던 여동생에게 부고를 알렸고, 그녀는 ‘생활고로 힘들다’며 거절했다. 그녀 집은 한씨 집에서 도보로 15분 거리 다세대주택이었다. 취재에도 응하지 않았다.

‘사후 부패변성’이라는 검안의 기록, 월세 미납, 이불 없이 침낭을 덮고 사망했다는 사실만이 한씨의 생전 모습을 짐작케 할 뿐이었다. 빈곤과 외로움 속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이후에도 ‘무연고자’로 분류돼 경기도 파주 용미리 추모의집에 봉안됐다.

부패된 시신으로 발견된 ‘귀한 자식’

날이 추웠지만 출입문을 닫을 수 없었다. 한낮인데도 서울 영등포구 한 여인숙 내부는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았다. 여인숙 주인의 말을 수첩에 기록하려다 통 보이지 않아 문을 반쯤 열어 잡은 채 이야기를 건넸다. 그러자 주인이 말했다. “추우니까 얼른 문 닫고 들어와요. 여기 불 안 때니까.”

한낮에도 캄캄한 공간은 대도시 서울에 있다는 사실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여인숙 주인은 어둠이 익숙한 듯 바닥 걸레질을 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것이 무연고 사망자 김형식씨가 마지막 살다 간 여인숙의 첫 장면이었다.

“여기 사는 아저씨들(손님) 우리 집 추운 거 다 알아. 추워도 추운대로 사는 거지. 돈도 안 내고 공짜로 사니까 ‘불 때라’는 소리 못 하는 거야.”

김씨는 처참한 모습으로 자신의 죽음을 세상에 보였다. 한여름 영등포의 한 주택 주차장 구석에서 엎드린 채 방치된 시신은 4~5일이 지나서야 발견됐다.

경찰서에서 28년 만에 헤어진 동생을 사진으로 본 누나는 “한쪽 눈은 이미 사라졌고, 남은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 차라리 동생이 죄를 짓고 교도소에서 살았으면 지금 같은 일은 없었을 텐데….” 흐느낌이 비참했다. 그녀는 아픈 어머니에게 아들 사망 소식을 차마 전할 수 없었다고 했다. 가족은 동생에게 미안했지만 생활고를 이유로 무연고 저소득 장례를 신청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김씨의 마지막 주소지는 하루 2만원을 받는 여인숙이다. 골목을 나오니 뉴타운 공사가 한창이었다. 완공 전인데도 벌써 10억원이 넘는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화려한 도시 속 골목으로 숨어든 거처처럼 그의 삶도 고립됐다.

그는 아들이 귀한 집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지만 20대 때 아버지와 불화를 겪은 뒤 가출했다. 그 뒤의 인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거듭된 실패로 밑바닥까지 추락한 하층 인생 마지막 모습이 단절로 지낸 30년 세월을 추측하게만 할 뿐이다. “어릴 적 고생 한 번 안 했던 동생인데, 마지막 가는 모습을 보니 비참한 인생인 것 같더라고요. 그 얼굴, 그 마지막 모습은 평생 못 잊겠죠.” 누나는 말했다.

“짐은 없었어요?” “어휴, 짐은 무슨. 옷도 없었지.” 인터뷰를 마치고 여인숙을 나서는데 주인의 혼잣말이 들렸다. “차라리 잘 돌아가셨어. 그렇게 힘들게 살면 뭐해.”

최씨가 마지막 머물던 방에는 컵라면 용기와 각종 쓰레기들이 널브러져 있다. 윤성호 기자

쓸모없는 유품처럼 부질없는 삶

주민등록이 말소된 김덕수(가명·61)씨는 강동구의 한 고시원에서 숨진 다음 날 주인에게 발견됐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주소지를 향했더니 불에 그슬린 듯 시커먼 외관을 한 고시원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간판도 없이 ‘고시텔’이라고 적힌 현수막만 1층 현관에 붙어 있었다.

3층으로 올라가자 출입문 한쪽으로 놓인 나무 사물함이 눈에 띄었다. 번호가 붙어 있는 이 사물함은 잠금장치가 없었고 복도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 때문인지 일부는 뒤틀려 이가 맞물리지 않았다. 출입문 정면에 앉아 있던 사장은 “김씨의 무연고 공영장례를 마치고 왔다”는 기자의 말에 종이컵에 믹스커피 봉지로 휘휘 저은 커피 한잔을 건넸다. “커피 하나 타줄 테니까 그거 마시고 그냥 돌아가요. 죽은 사람 흉봐서 뭐해….”

월 20만원을 받는 이 고시원은 김씨에게만 15만원을 받았다. 이곳에 사는 30여명은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일용직 노동을 해서 방세를 내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하지만 김씨는 주민등록이 말소돼 수급비도 받지 못했고 몸이 불편해 일도 할 수 없었다. 낮에는 혼자 방에만 틀어박혀 살다가 밤이 되면 폐지를 주우러 나섰다. 고시원 주인은 “이상한 사람이었다. 사람들과 말도 안 하고 고집도 세고, 흔한 휴대전화 한 대 갖고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6.6㎡(2평) 규모의 방에 폐지와 작은 밥솥, 담배꽁초, 술병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바닥과 벽은 담배를 비벼 끈 흔적들로 온통 새까맣게 그을렸고 메모나 사진은 하나도 없었다. 밤새 폐지를 주어 몇 천원 벌면 그 돈으로 혼자 밥을 먹고 소주를 들이켜다 잤다고 한다. 말소된 주민등록을 회복하라며 주인이 돈을 줬지만 그는 거절했다. “인생을 완전히 포기한 사람 같았어요. 삶의 의욕도 없고…. 아마 본인도 외로웠겠지.”

김씨 장례에는 외조카가 참석했다. 가족 모두 외국으로 이민을 가서 살다가 최근 혼자 서울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외조카는 “외삼촌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어서 모르고 살았다. 슬픈 건지 실감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 10월 마포구의 한 여인숙에서 숨진 신오성(가명·60)씨가 남긴 유품은 출시된 지 10년도 지난 구형 휴대전화였다. 경찰과 주변 이웃의 말을 종합해보면 장기 미납으로 수신과 발신이 정지된 상태였다. 그가 마지막 통화를 했던 시점은 2017년 즈음으로 확인된다고 했다. 휴대전화엔 가족 연락처 하나 저장돼 있지 않았다. 전화통화가 되지 않는 신씨를 만나기 위해 친구는 1주일에 한 번꼴로 여인숙을 찾았다. 마지막 그를 찾은 날 신씨는 TV와 전기매트를 켠 채 숨져 있었다. 그는 보증금 없이 월 30만원을 내고 살았는데, 공사판 막노동 일당으로 비용을 충당했다고 한다. 죽기 며칠 전부터는 일을 나가지 않았다고 이웃이 말했다.

김성태(가명·74)씨는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무연고 사망자다. 췌장암을 앓고 있던 김씨는 자신의 죽음을 예상한 듯 옷가지와 신분증만 남기고 사망했다. 김씨는 사망했지만 주변 이웃은 죽음을 모르고 있었다.

그가 병원에 입원하기 전 거주했던 광진구의 한 주택은 한 층을 3가구가 나눠서 쓰는 구조였다. 대문 앞 우편함에는 더 꽂을 수도 없을 정도로 우편물이 수북했다. 김씨 앞으로 온 우편물도 상당했다. ‘체납’ ‘독촉’이라는 붉은 글씨가 새겨진 고지서가 대부분이었다. 그의 생사를 묻는 건 우편물에 잔뜩 꽂힌 독촉 고지서뿐이었던 셈이다.

김씨 사망 4일 뒤에 날아온 독촉장 고지서는 두 달 가까이 밖에서 방치돼 헐었고 내용이 훤히 보였다. 주민세 6000원과 연체가산금 170원을 내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그 돈을 끝내 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김유나 정현수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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