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사] “아무렇게나 버려지지 않게…” 무연고 사망자의 유언

국민일보

[이슈&탐사] “아무렇게나 버려지지 않게…” 무연고 사망자의 유언

[빈곤의 종착지, 무연고 죽음 370명의 기록] ④ 빈곤에 떠밀린 무연 인생 (下) 해체

입력 2019-12-23 04:01
지난 1월 무연고자로 숨진 이도형(가명)씨의 장례식에서 지인 전봉기(가명)씨가 영정사진을 들고 시신운구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전씨는 평소 친동생처럼 지낸 이씨의 유언대로 장례를 치러줬다. 그러나 돈이 부족해 장례 도중 시신을 지방자치단체로 넘기고 무연고 장례를 신청했다. 나눔과나눔 제공

고인 부탁 받고 장례 치러준 지인
경제적 어려움에 ‘하루짜리 장례’
부친 시신 포기할뻔 했던 아들, ‘돈 때문에’


“죽으면 강이나 바다에 뿌려 주소.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버려지지 않게. 부탁합니다, 형님.”

이도형(가명·61)씨는 동네에서 친형처럼 따르던 전봉기(가명·72)씨에게 말했다. 제 장례를 치러 달라는 말이다. “야, 나도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하니?” 전씨도 쪽방에서 사는 기초생활수급자다. “죽으면 나라에서 300만원 정도 나온다니까 그 돈으로 해줘요.” 자신이 죽을 걸 알았는지 어디에다 장례지원금 내용을 물어본 모양이다. “알았다. (장례에) 오는 사람 있으면 보태서 니 소원 들어주마.”

이씨는 형의 약속을 받고 열흘 뒤인 올해 1월 1일 오전 9시32분 서울 성북구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5년 전 췌장암 수술을 받았지만 이후 암이 폐까지 전이됐다.

전씨는 약속대로 병원에서 시신을 인수받고 장례식장을 빌렸다. 하지만 이씨가 말한 돈은 들어오지 않았다. 이씨처럼 기초생활수급자가 사망한 경우 최대 75만원의 장제 급여가 지급된다. 하지만 전씨는 연고자가 아니어서 받을 수 없다. 각 지방자치단체 조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타 지역 사람이 서울에서 화장하면 지원금이 얼마씩 나오는데 이씨는 해당되지 않는다. 생전 언급한 300만원 이야기는 잘못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부탁도 받았고, 장례식장도 빌렸으니 하긴 해야 했지.” 조문객들이 얼마라도 올 줄 알았는데 텅텅 비다시피 했다. 젊은 시절 함께 노숙했던 기초생활수급자들이 몇 명 왔는데, 나중에 조의봉투를 열어보니 5만원짜리 2장, 10만원이 다였다. 분위기가 이상했던지 장례식장 측은 중간 정산을 요구했다. “첫날 230만원이고 다음 날까지 하려면 더 든다.”

전씨는 “내가 도저히 감당이 안돼서 장례를 하루만 치러주고 (시신을) 시로 넘겼다”고 말했다. 결국 비용 문제로 1일상만 치르고 다시 무연고 장례를 치르게 됐다.

첫날 이씨 가족도 장례식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전화번호를 찾아서 동생한테 연락을 했어요. 부부가 오더만. 근데 ‘친동생은 몸이 아파서 못 왔다’며 자신을 먼 친척이라고 하더라고. 장례비용 얘기를 꺼내자 ‘미안하다’며 사라졌어.”

전씨는 장례식장에 사정을 구하고 그 돈을 갚고 있다. “수급비를 타면 한 달에 10만원, 20만원 이런 식으로 내고 있어. 이제 절반 남았어. 근데 내가 그걸 안 갚으면 동생은 죽어서도 빚쟁이가 되는 거잖아. 리어카 끌고 파지라도 주어서 버티는데 나도 일흔이 넘어서 어떡하느냐.” 전씨도 무연고자다. 젊었을 때 사업을 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망하고 가족과 헤어졌다.

전씨는 새해 첫날 1년상을 치르려고 이씨 영정 사진을 집에 보관하고 있다. “‘1년상은 해주마’고 말해서 내년 1일이 되면 한 상 차려주려고. 나랑 같이 밥 먹던데 그 앞에서 영정 다 태우고, 그때부터는 잊어버리려고.”



빈곤한 무연자들은 죽을 돈도 없었다. 국가는 망자의 유일한 피붙이에게 ‘시신을 수거해 연을 이어가겠느냐’고 채근하는데 이 물음에 대답을 망설이는 비참함 역시 돈 때문이었다.

공영장례 지원 비영리단체 ‘나눔과나눔’ 사무실로 지난 4월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 중년 남성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교도소에서 갓 출소했다는 아들은 갈림길에 서 있었다. 수중에는 장례를 치를 돈이 한 푼도 없었다. 아버지 역시 기초생활수급자였으니 남긴 재산도 없었다. 구청에서 무연고 사망처리 절차를 들었는데, 마지막까지 아버지를 외롭게 보내자니 마음이 아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사이 아버지는 차가운 병원 장례식장 안치실에 3일간 방치됐다. 그의 어머니는 8년 전 죽었고, 남동생은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들이 망자의 유일한 연이었다.

아들의 전화를 받은 박진옥 상임이사는 장례식장에 대신 사정을 설명하고 75만원 장제급여 내에서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협의를 했다. 그러고선 아들에게 전화를 다시 걸었다.

“구청 앞이라고 하더라고요. 시신포기 위임서를 쓰기 직전이었던 거죠. 조금만 늦었어도 그 아버지는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됐을 겁니다.” 아들은 장례식장과 나눔과나눔 도움으로 아버지 장례를 치렀다. 따로 빈소를 마련할 수는 없었지만 마지막 길을 배웅할 수는 있었다.


이처럼 무연고 사망자와 그의 가족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는 경제적 어려움이다. 박 이사는 2011년부터 1310명의 공영장례를 치르며 접한 사연들 모두가 빈곤 문제로 수렴했다고 22일 말했다.

“처음에는 고인의 장례를 포기하는 가족들이 원망스러웠어요. 하지만 유족들의 어려운 사정을 접하면서 가족만 탓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밉고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다 해도 재정적 여유만 있었다면 피붙이 가족의 장례를 그렇게 포기하진 않았을 겁니다.”

빈곤한 무연 인생의 시작점은 경제적 파국에서 비롯된 경우가 대다수였다. 박 이사는 조심스레 IMF 외환위기를 지목했다. 그는 “IMF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가족들이 해체되는 현상이 발생한 지 20년이 지났다. 그 기간 동안 무연고 사망자와 가족들은 단절된 채 살았다”며 “그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40대가 빈곤에서 탈출하지 못한 채 지금의 60대가 돼 무연고로 사망하고 있고, 30·40대가 된 자녀들도 지금까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연고 사망을 단순히 개인과 가족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박 이사는 삶만큼이나 존엄한 죽음에 대해 국가와 사회가 고민할 시점이라고 했다. 그는 “‘요람에서 무덤까지’가 복지의 기본 이념인데, 삶의 마지막인 죽음을 아직도 개인과 가족의 영역으로만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정현수 임주언 기자 jukebox@kmib.co.kr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