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 무오류 신화에 갇힌 검찰의 폭주

국민일보

[박정태 칼럼] 무오류 신화에 갇힌 검찰의 폭주

입력 2019-12-25 04:01

부실 기소 인정 않고 재판부에 정면도전한 건 오만함의 극치
가족 비리 아닌 직권남용… 영장은 표적수사란 비판 초래
자기권력화된 조직의 무소불위 검찰권 통제해야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을 쿨하게 인정하고 새로 출발하면 될 일이었다. 그랬다면 전대미문의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겠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재판 이야기다. 검찰이야 부정하고 있지만 원초적 잘못은 백지수표 같은 1차 공소장에 있다고 본다. 앞뒤 서술을 빼면 범죄사실이 어설픈 두 문장이다. 공소시효 만료 1시간여를 앞둔 야밤에 본인 조사도 하지 않은 채 서둘러 표창장 위조 혐의로 기소한 데 따른 중대한 실착이다. 그러니 공소사실이 부실할 수밖에 없었고 공소장 변경은 불가피했다.

한데 범행 날짜·장소·공범·수법·목적 5가지를 완전히 다르게 기재해 재판부의 허가를 받지 못했다. “검사님, 저희 판단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검사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안해 보셨습니까.” 재판부의 불허 결정에 반론을 제기하는 법률가들도 있지만 일단 소송지휘를 하는 재판장의 말을 따르는 게 순리였다. 첫 공소를 취소하고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새로 공소를 제기해 유죄를 이끌어내면 그만이었다.

브레이크는 없었다. 2라운드 공이 울리자 검찰은 작심하고 법정에서 재판부를 공격한다. 예단이나 중립성을 지적한 부분을 되돌아보고 검찰의 이의 제기 내용이 공판조서에 누락돼 있는 부분을 수정하겠다는 뜻을 재판장이 밝혔음에도 근 10명 가까운 검사들이 번갈아 일어나 집단반발한다. “전대미문의 재판을 하고 있다”며 거칠게 몰아붙인다. 재판부 권위에 정면도전하는 전무후무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신성한 법정은 거의 난장판이 됐다.

언론플레이를 하려는 의도성이 짙다. 1심을 포기하더라도 재판부의 편향성과 불공정성을 부각시켜 여론을 유리하게 끌고 가겠다는 전략이 아니라면 감히 엄두도 못낼 일이다. 재판 진행에 문제가 있으면 법적인 불복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재판장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는 장면까지 연출했다. 검찰이 왜 이렇게 됐을까. 사법농단 사건을 수사하며 수많은 판사를 조사하고 전직 대법원장까지 구속시킨 검찰의 오만함이 배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대목에서 검찰 수뇌부와의 갈등으로 옷을 벗은 임수빈 변호사가 떠올려진다. 그는 2008년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 재직 당시 미국산 소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PD수첩’ 사건을 맡아 제작진을 기소하라는 수뇌부의 지시를 거부한 뒤 이듬해 검찰을 떠났다. 임 변호사는 검찰이 ‘잘못했다’는 자기반성을 절대로 하지 않는 이유로 “검찰은 자신들의 방식에 오류가 없다고 믿고 있다. 무오류의 신화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거기서 검찰권 남용이 비롯된다고 했다(임수빈 저서 ‘검사는 문관이다’). 오·남용의 심각성이 드러난 게 바로 정경심 첫 공소장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어떤 잘못도 없다고 버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공소를 취하할 경우 부실 수사를 자인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당초 정치적 판단을 했다는 세간의 의혹을 방증하는 것이니 이 무슨 망신살인가.

임 변호사는 대표적인 검찰권 남용으로 표적 수사를 꼽는다. “먼저 어떤 사람을 대상으로 삼아 무슨 혐의가 없는지 수사하는 경우도 있다. 검찰은 표적이 된 사람의 범죄 혐의를 찾아내기 전까지 수사를 종결하지 않는 집요함을 보이기도 한다”고 말한다. 조 전 장관이 딱 그 대상자다. 8월 말 일가족 비리 수사에 전격 착수한 서울중앙지검은 지금까지 본인 비리에 관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2016년 말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3개월간 수사를 벌여 방대한 결과를 내놓았는데 그보다 긴 4개월간을 탈탈 털고도 말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당시 특검팀의 ‘수사팀장’이었다. 그런데 정작 조 전 장관에 대해 23일 청구한 구속영장 혐의는 서울동부지검의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사건’ 직권남용이다. 1년 전 폭로되고 올 2월 고발된 이후 잠잠하던 사건이 최근 갑자기 수사의 급물살을 타더니 조국 잡기에 성공한 것이다. 타깃 제거를 위한 방향 전환이 맞아떨어졌다.

검찰이 주장하는 대로 혐의가 중하다면 구속은 불가피할 듯하다. 불법행위를 저질렀으면 그에 대한 사법적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은 혐의 사실을 논하려는 게 아니다. 조자룡 헌 칼 쓰듯 무소불위 검찰권을 제 마음대로 휘두르는 행위가 적절하냐는 지적을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구속된다 해도 수사 과정의 정당성까지 부여될 수는 없다. 이젠 낡고 부적절한 수사 관행을 떨쳐내야 한다. 하지만 조직만 사랑하는 ‘검찰주의자’가 너무 많아 검찰은 변할 기색이 없다. 과거에는 정권에 빌붙었다면 지금은 자기권력화로 신적 존재처럼 군림하니 더욱 그렇다. 대한민국 사회를 좌지우지한다는 자만심에 폭주가 예사다. 정치는 물론 국가 운영까지 넘본다. 검찰 개혁은 무오류의 신화를 깨뜨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임 변호사의 말이 와닿는다. 그러려면 우선 검찰 권력을 견제하고 분산해야 한다. 검찰 개혁 법안의 국회 통과가 얼마 남지 않았다.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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