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정지연] 그림을 팝니다

국민일보

[혜윰노트-정지연] 그림을 팝니다

당신 삶에 새로움이 필요할 때, 분투하는 젊은 예술가의 작품에 잠시 머물러 보기를

입력 2019-12-27 04:06

나는 젊은 예술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일 년에 한 번 소규모 아트페어를 열고, 크고 작은 전시회를 기획하는데 2019년에는 150여점의 작품을 판매했다. 가장 가까이에서 예술가의 초기작과 신작을 만나는 건 언제나 설레고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창작과 그에 따르는 여러 어려움을 목격할수록 일에 대한 고민과 진지함은 커진다. 재능과 열정을 가진 예술가들이 예술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며 애태우는 것은 어느새 일상이 됐다.

일을 시작하고 처음 얼마 동안은 그림을 파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다. 공들여 전시를 열어도 그림은 좀처럼 팔리지 않았다. ‘왜 사람들이 그림을 사지 않을까’ 고민하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묻곤 했다. 지난 한 달 동안, 지난 일 년 동안, 아니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그림을 사본 적 있느냐고. 나도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그림을 사본 적이 없었다. 내 주변의 가족과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그림을 사지 않았고 살 계획도 없어 보였다. ‘도대체 누가 어떻게 그림을 사게 되는 걸까’ 매일 궁리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내가 작은 회사를 꾸려 일해 온 지난 9년 동안 국내 미술시장 규모는 연간 4000억원 주변을 맴돌다가 2018년에야 5000억원에 가까워졌다. 신라면의 해외 매출만 6000억원이 넘는 상황이니 국내 미술시장은 매우 작다고 볼 수 있다. 그나마 5000억원 중 2000억원은 소장자 간의 경매 매출인데 또 거기서 500억원가량은 김환기 이우환 두 작가의 작품 거래액이다. 화랑 매출을 보면, 450여곳 중 단 3곳이 전체 매출의 63%, 상위 10위까지의 화랑이 81.6%를 차지하고 있다. 수백 곳의 화랑이 일 년 동안 작품을 한 점도 팔지 못하고, 유명 화랑이나 컬렉터의 선택을 받은 소수의 작가만 작품 활동으로 돈을 번다는 이야기다.

일상이 그저 평화롭기만 했다면 나 역시 예술가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대학에서 프로그래밍을 전공하며 세상에는 나와 맞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자취방에 강도가 들었을 때는 내가 예측하고 대비할 수 없는 불행이 내 삶을 대책 없이 흔들 수 있음을 알았다. 그때마다 나를 위로하고 용기를 준 것은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이었다. 자신의 슬픔이나 고통조차 소중히 쓰다듬고 생의 아름다움을 증명하려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그렇게 예술에 기대어 살아온 시간이 쌓이자 나도 예술가의 어려움과 외로움을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게 되었다.

그림을 잘 팔고 싶어서 종종 다른 물건이나 서비스가 속한 시장을 살펴본다. 세상에 하나씩밖에 없는 예술품과 차이는 있겠지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사게 할까’ 하는 마케팅 관점에서 배울 점이 있다. 스타벅스가 생겨서 사람들이 커피를 즐겨 마시고, 편의점에서 저가 와인을 팔기에 대학생도 와인을 즐기게 됐다고 생각한다. 요가나 필라테스, 명상 프로그램을 예로 들 수도 있겠다. 없어도 살아갈 수 있지만 있어서 더욱 좋은 것의 영역에 예술도 있다. 우리 서비스로 인해 사람들이 그림을 접하고, 언젠가 그림을 사고, 예술가가 사회에서 더욱 주목 받기를 꿈꾼다.

한번은 설문조사를 통해 사람들에게 그림을 사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미술을 잘 몰라서’ ‘너무 비쌀 것 같아서’ ‘어디서 사야 할지 몰라서’란 답변이 가장 많았다. 실마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소수의 판매자와 소수의 구매자만 있던 미술시장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존재감 자체가 없었다. 다수의 신진 예술가와 다수의 잠재적 구매자가 만날 수 있도록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싶었다. 이후로 나는 관람객이 직접 예술가를 만나 대화하고 SNS를 팔로하며 팬이 되도록 연결하고 있다. 작품 가격을 지면에 공개하고 10개월 무이자 할부를 권장한다. 전시장에는 음료와 음악을 준비하고 작품 사진도 자유롭게 찍도록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림 파는 일은 쉽지 않고 미술시장은 매우 작지만, 미술을 즐기고 예술가를 응원하는 사람은 분명 조금씩 늘고 있다. 대중을 위한 미술 서비스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물론 우리에게 예술이 없어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삶에 새로움이 필요하다면, 당연한 것들을 향해 한 번쯤 질문을 던지고 싶다면 고군분투하는 젊은 예술가의 작품 위에 잠시 머물러 보기를 권한다. 미술사나 관련 지식 같은 것은 필요 없다. 2020년에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그림 한 점 만나보기를 바란다.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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