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2019년, 이대로 지나가게 할 순 없다

국민일보

[김명호 칼럼] 2019년, 이대로 지나가게 할 순 없다

입력 2019-12-30 04:01

진보 위선 드러난 건 올해의 정치적 수확…
악착같은 진영 기득권 챙기기 결과인 박근혜·조국 사태는 위장된 축복
울산·감찰 무마·패트 수사로 권력과 정치권 책임 묻고 정치 개혁 환경 조성 필요…
검찰 개혁 위한 입법도 반드시 해야


2019년, 가장 큰 정치적 수확은 진보의 위선이 드러난 것이다. 최악의 20대 국회라고 하지만 그래도 건질 건 건져야 한다. 위선이 물 위로 건져진 것에 진보 진영은 곤혹스럽겠지만, 국민으로선 좋은 일이다. 진보가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좋은데, 그 동력인 도덕적 우월감이 비정상으로 작동해 ‘내 눈 안의 들보’에는 아주 둔감했다. 전 법무부 장관 조국과 조국 사태 대응 과정으로 그들이 신념윤리는 있는지 몰라도 책임윤리는 거의 없다는 게 증명됐다. 그건 정치인, 정치세력으로 상당한 흠결이자 대단한 자격미달 요소다.

전 대통령 박근혜와 주변 간신들이 벌인 국정농단과 탄핵 과정을 보며 ‘위장된 축복’이란 표현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음습하게 돌아가던 국가통치 행위,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정치 행위, 군주 시대로 역행하는 비공식적 행위 등이 드러난 건 그들의 공이다. 곪던 것은 터져야 상처 회복이 빠르다. 국민에겐 위장된 축복이다. 물론 이후 수습 과정에서 보인 보수의 성찰 없음과 천박함, 그래서 점점 낮아지는 품격은 별도로 다룰 문제다.

조국 사태도 위장된 축복이다. 박근혜와 조국의 사태를 단순·수평 비교하는 건 맞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의 본질은 같다. 정의와 공정에서는 둘째라면 서러울 법한 조국의 언행불일치, 대응 과정에서 보여준 진보 진영의 닥치고 지지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진보 진영의 생각과 민낯, 무능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두 쪽으로 갈라진 정서적 내전은 대다수 상식적인 국민으로 하여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점을 각인시켰다.

대통령과 여당이 주장하는 정의와 공정이 얼마나 공허한 정치적 수사인지, 야당의 반대가 얼마나 변화를 싫어하는 것인지, 검찰이 얼마나 오만하며 철저한 개혁이 왜 필요한지를 종합적으로 알게 됐다. 조국 사태 아니었으면 여든 야든 결국 기득권끼리 나눠 먹는 구조를 생생히 인식할 수 있었을까 싶다. 이런 것들이 박근혜와 조국이 준 위장된 축복이다.

위장된 축복으로만 끝낼 순 없다. 매듭을 지어야 할 일들이 있다. 그 일들이 결국 수사를 통해서 이뤄지고, 그 수사를 개혁 대상인 검찰이 해야 하며, 그 최종 판단 역시 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중심이 흐트러진 사법부가 해야 한다는 점에서 심히 유감스럽고 안타깝기는 하다. 그러나 박근혜, 조국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치적 사태에서 정치권이 스스로 개혁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 외부 힘이 작동해야 할 시점이다.

우선 정치 권력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검찰은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백원우 등을 조사했다. 첩보 생산, 이첩, 가공과 경찰의 불법적인 실행 의혹까지 자세하게 봐야 한다. 당시 검찰의 관여 의혹도 생긴 만큼 똑같은 강도로 수사해야 한다. 대법원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비박계 인사 공천 배제의 목적으로 청와대 정무수석 등의 친박 리스트 작성, 불법 여론조사, 경쟁 후보 출마 포기 종용 같은 선거법 위반 혐의를 인정했다. 박근혜의 연관성도 인정돼 징역 2년이 확정됐다. 이 수사를 한 것도 윤석열 검찰팀이고, 지금도 그렇다. 수사 기준을 달리한다면 그것도 검찰이 정치하는 거다.

둘째, 전 부산시 부시장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역시 조국, 백원우 등 청와대와 정권 핵심 실세들이 등장한다. 정치 권력이 자기편이라는 이유로 고위 공무원 비위 의혹을 봐주는 건 선거 개입만큼이나 죄질이 나쁘다. 사실이라면 그들의 도덕성은 설 땅이 없다. 정치할 이유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셋째, 패스트트랙 관련 의원 수사. 검찰의 정치적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사가 진척되지 않는 이유가 정말 궁금하다. 검찰이 조국 수사를 먼지떨이 식으로 했다는 주장도 많다. 그렇다면 이 수사도 그렇게 해야 한다. 여야가 패트 관련 의원을 좀 봐주는 조치와 선거법 처리라는 정치적 합의를 시도했었다는 설도 있다. 지난주 선거법 일방 처리로 없던 일이 됐지만, 국회 상황으로 봐 앞으로도 여야의 음험한 거래가 가능하다. 용납할 수 없다. 내년 총선 당선 무효자가 아무리 많이 나와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게 오히려 정치 개혁의 계기가 될 것이다. 자기들이 만들어 놓고 지키지 않는 게 말이 되나.

세 가지 수사의 확실한 결과로 권력과 정치권 개혁의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진보와 보수의 기득권이 악착같이 권력을 유지하려다 스스로 만든 일이다. 재수 없어서 걸리는 게 아니라, 걸릴 사람과 걸릴 비위는 나중에라도 꼭 걸린다는 걸 명백히 해야 한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차도살인(借刀殺人)으로 진보·보수 기득권의 적폐를 제거하고 권력과 정치권의 근본적 개혁의 조건을 마련한다면 국민 입장에서 참 괜찮은 방법 아닌가. 자기성찰과 개혁이 불가능한 정치권을 일단 검찰과 사법부를 도구 삼아 개혁의 조건과 환경을 만들면 된다. 동시에 합리적인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입법 절차로 검찰 개혁도 진행해야 함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포토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