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5번째, 개츠비 룩 입고 왔어요”… 제대로 꽂힌 ‘위대한 개츠비’

국민일보

“벌써 5번째, 개츠비 룩 입고 왔어요”… 제대로 꽂힌 ‘위대한 개츠비’

차원 다른 관객참여형 연극 성황

입력 2020-01-13 04:10
국내에 흔치 않은 이머시브(관객참여형) 공연으로 화제를 모으는 연극 ‘위대한 개츠비’. 배우와 관객들이 손을 들고 음악에 맞춰 스윙 댄스를 추고 있다.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연극을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이런 장소가 뜬다. ‘개츠비 맨션’. 찾아가면 더 하다. 서울시청 옆 그레뱅뮤지엄을 가리키고 있는 지도와 달리 개츠비 맨션이라 적힌 큰 간판에 어안이 벙벙해진다. 심지어 1층엔 1920년대 미국 술집을 재현한 바가 있다. 거기서 무료 샴페인을 한잔 홀짝이다 보면 2층에서 내려온 종업원이 손을 건네며 이렇게 말한다. “개츠비씨 파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2층 연회장에 들어서면 관객은 1차 세계대전의 포연이 멎은 당시 미국으로 별수 없이 빨려 들어간다. 이처럼 기분 좋은 혼란을 느끼게 하는 이 극은 ‘위대한 개츠비’. 피츠제럴드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자 지난달부터 국내 초연으로 선보이고 있는 이머시브(관객참여형)극이다. 2015년 영국의 폐업한 술집 건물에서 시작된 이 극은 현지에서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제이 개츠비와 데이지 뷰캐넌이 사랑을 속삭이는 무대 위 한 장면.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극이 관객을 매료시킨 비결은 뭘까. 관객은 여기서 파티에 초대된 ‘손님’이자 공연 주체다. 분위기를 달구는 재즈 속에서 관객들은 마음대로 움직이며 극을 만들어간다. “앞으로, 뒤로, 킥킥(kick, kick)”이라는 구령에 맞춰 배우와 스윙 댄스를 추고, 함께 무대를 꾸미기도 한다. 관객 옆으로 불쑥 등장한 배우들은 관객과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간다. “이름이 뭐죠? 어디서 오셨어요?”

무대와 별개의 다중 서사가 펼쳐지기도 한다. 가령 개츠비나 톰 뷰캐넌 등 인물들이 수시로 “내 얘기 좀 들어보세요”라며 관객들을 별도로 마련된 방에 끌고 간다. 가령 개츠비를 따라가면 그가 투자를 권하면서 명함을 건네는데, 그 번호로 전화를 걸면 정말 어떤 남자의 중후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런 세심한 장치들에서 여타 참여형 공연에 견줘 특출함을 느낄 수 있다.

이 같은 장점에도 독자들이 머뭇거리게 되는 건 어색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큰 걱정은 마시길. 뭉근한 술기운에 몸을 맡겨놓으면 어느새 흥겹게 리듬을 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극이 절반쯤 지나면 관객 대부분이 배우들과 춤을 추고 있는 장관을 볼 수 있다.

입소문을 타면서 같은 공연을 여러 번 반복 관람하는 ‘회전문 관객’도 늘어나고 있다. 공연장에는 플래퍼 룩 등 1920년대 미국을 연상케 하는 옷차림의 관객들 여럿이 눈에 띄었다. ‘개츠비 룩’을 위해 검은 중절모와 정장, 부츠를 50만원어치 구매했다는 학생 임예진(20)씨는 “이번이 다섯 번째 관람”이라며 “내가 등장인물이 되고, 마음껏 무대를 누빌 수 있어 특별하다”고 전했다.

배우들에게도 남다른 경험이다. 약 15명의 배우는 이머시브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즉흥연기를 다졌다. 최경화 책임프로듀서는 “오디션과 연습 모두 일반 극과 달랐다. 5주 동안 애드리브 기술을 철저히 익혔다”며 “배우들도 공연이 거듭될수록 노하우가 쌓인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다만 전체 서사를 한 번에 이해하기엔 어려움이 있는 극이다. 각 방에서 풀어지는 작은 이야기들을 동시에 경험할 수 없어서다. 특별한 추억을 선사하는 작품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공연은 다음 달 28일까지.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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